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호섭 May 14. 2024

까치와 둥지

인천 자유공원에는 여러 종류의 새가 산다. 절반 이상의  압도적 우세종은 비둘기다. 나머지는 다양한 조류들로 구성되는데 새, 큰 까마귀, 뻐꾸기 두 마리, 이름 모를 새 세 마리 그리고 '오늘의 주인공' 까치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아먹는다거나, 그런 새는 피곤하다"라는 속담이나 농담은 적절치 않다. 이런 말은 존재의 다양성을 무시한, 인간의 제한된 사고  안에서 만든 말일 터. 이곳에서는 "일찍 일어나는 새가 춤추거나 망본다"가 좀 더 어울린다. 맥아더 장군 동상의 모자 위는 최고의 전망대이자 기상대이며 척후병의 최전선 진지다.


이른 새벽의 척후병은 비둘기가 담당한다. 맥장군의 진지는 최소 한 마리에서 최대 세 마리까지 비둘기를 수용한다. 배고픈 이들은 긴 밤 잠 못 이루고 구구구 일어나 비좁은 모자 위에 올라서 인간이 흘린 먹잇감을 찾거나, 월미, 팔미, 영종도 까지만 망을 본다. 얼마 후, 본진의 무사들이 깨어난다. 까치다.


예민, 날렵, 까칠로 무장한 까치무사들은 배퉁머리 통통한 맥둘기와 달리, 푸르라니 빛나는 고고한 꽁지깃털 자랑하며, 날렵하게 공원 광장을 가로질러 매끄럽게 춤추듯 비행한다. 슬그머니 비둘기는 사라지고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임무교대가 이루어진다. 단 한 마리만 척후병으로서 초연히 근무한다. 까치의 전방 주시 각도와 거리는 비둘기의 몇 배에 달하니, 멀리 서해 바다와 더 멀리 중국 웨이하이 앞바다까지 한 시야에서 조망한다. 위험한 천적 새가 나타나거나, 서쪽하늘에 갑작스러운 폭우와 폭설, 황사가 밀려오면 척후병 까치는 이 소식을 신속히 전파하고 까치 본진은 즉시 행동에 돌입한다.


높고 곧은 나무마다 어김없이 하나씩 있는 까치집들에게 진돗개 하나, 둘, 셋을 발령하고 <둥지 사수 대작전>에 돌입한다. 아빠까치, 엄마까치뿐 아니라 삼촌, 누나, 언니, 이모, 사돈, 팔촌까치, 슈퍼마켓까치까지 둥지에 모여 부산하다. 그렇다. 까치는 이곳 공원의 다양한 새들 중에 유일하게 자가다. 전세, 월세란 구조나 개념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사기당할 염려도 없이 모두 자가다. 스스로 짓고 부수고 다시 재건하는 건, 오로지 자가를 삶의 둥지로 선택한 자신들이 감당할 몫이다. 그러니 까치는 자기 생애에 오롯이 당당하다.


비상사태가 곧 예정된다면, 둥지 어딘가 부실한 구석 없는지, 물 새고 비 샐 위험 없는지, 거센 항구의 비바람에 혹여나 무너지지나 않을지 대비하고 보수하고 재 구축한다. 이들의 목표와 목적은 단 하나. 여리디 여린 그들의 '알'을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함이다. 이들은 폭우 속에서도 비바람 속에서도 나뭇가지를 찾아 물고 기꺼이 쉼 없이 둥지를 채우고 보수해 나간다. 풍파의 세월이 지날수록 둥지는 견고해지고 튼튼해진다. 까치와 둥지를 보다 보면 "나뭇가지와 돌 뿐만 아니라, 비와 바람도 둥지의 재료이다." 이기주 작가의  (<언어의 온도> 중에서) 이  문장진하게 생각난다.  


인천 기상대가 자유공원 바로 옆에 버젓이 있음에도, 자유공원 서식 7년 차 인간인 나는 기상대를 신뢰하지 않는다. 높고 곧은 나무 위 까치들의 움직임을 보는 듯 안 보는 듯 세밀하게 관찰하며 그날의 복장과 세차, 빨래 그리고 마음의 메뉴를 결정한다. 이 정도면 가히 아메리카 인디언 추장급 레벨이려나.   


 

어느 맑은 날에는, 펄떡이던 두 날개마저 접고, 오롯이 바람과 공기의 기류와 구름과 햇살의 밀도에 자신의 모든 것을 맡긴 채 까치는 솟아 오른다. 이 비상의 본질은 버겁고 고독하지만 당당한 용기이고, 스스로를 스스로가 규제한 자만이 누리는 구체적 자유다. 서투른 자신을 이해하고 오랜 연습과 경험을 통해 단련된 자신을 믿고, 책임져야 할 둥지를 견고히 지키면서도 미지의 세계로 선뜻 유유히 날아오른다. “깃털의 가벼움이 아니라 새의 가벼움! 그래야 비상할 수 있고, 정신의 자유를 누릴 수 있고, 높은 곳에서 멀리 볼 수 있다. 깃털처럼 중심도 방향도 없이 이리저리 부유하는 것이 아니라 새처럼 가볍게 날 수 있어야 한다.” 류시화 시인의 문장처럼.


영민한 그들은 사람으로부터도 자유롭다. 사람들이 뿌려주는 모이에 오로지 의존하는 비둘기와는 다르게 야생의 자연 속에서 생생한 먹이를 구하고 취하는 주체적 조류다. 인간도 그저 한동네 같이 서식하는 동물 중에 하나로 보는 모양새인데, 비둘기처럼 일부러 인간 가까이 다가가진 않는다. 소통 안 되는 인간과 굳이 너무 깊거나 시끄러운 관계는 원치 않고 서로의 거리에서, 영역에서 함께 잘 살아가면 그만이라는 듯, 쿨하기까지 하다.

 




자가는 아니다만 좁고 허름한 월세방에서, 모두의 소유인 광장 한복판에 멍하니 서서, 까치를 생각한다.

나는 그렇게 주체적인 까치 아니... 인간은 아니지만, 까치 한 마리의 세상만큼만, 딱 그만큼만 자유롭고 싶은 마음으로 근 삼 년을 품어온 나의 알을, 아니...나의 글을 이제 세상에 시집, 장가보내려 한다.



생경하고 복잡한 심경의 5월이다.

며칠 전에 출판사에서, 꿈결에도 소망하던 출간 계약서를 보내왔을 때, 기쁨은 잠시고 덜컥 겁부터 났다. 진돗개 하나다. 급하게 아이들을 돌아보고 둥지를 살핀다.

아이고... 이 미약하고 여린 글들을 세상에 내보내도 정녕 되는 일인가. 그래도 된다고 스스로 확신하는가.


먹먹과 막막, 설렘과 당황. 그 사이 어디쯤엔가 놓인 어중간한 마음 안은 채, 다시 최종 퇴고의 언덕으로 올라선다. 내 둥지의 알들이, 글들이 다소 미약하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자. 오만가지 걱정과 불안으로 그저 품고만 있으면 아이들은 건강히, 자유롭게 비상하지 못한다. 내가 낳은 나의 글은, 지금 나의 최선이다.




자유공원과 방구석은 나의 둥지다.


아픈 무늬와 어설픈 매듭으로

굽이굽이 말 없는 인천 앞바다와

구석구석 발자국 뜨거운 공원광장에서

눈물 나게 이어진 나의 둥지로

운동화 끈 바짝 조여 매고

여린 문장 하나 기꺼이 물어

다시 날아오른다.


까까머리 중학생 때부터 꿈꿔온 일.

먹고 사느라 애써 잊어온 꿈.

걷다 보니 쓰다 보니 다가온 날.

이제야 하나의 작은 매듭을 짓게 될 것이고

또 다른 미지의 여행이 시작될 것이다.

비가 와도 괜찮다. 바람 불면 어떠리.


나는 나를 믿는다.  

새벽을 거닐고 문장을 노니는 문학소년.

둥지 곁을 따수이 지켜내는 파수꾼.

꾸준히 오래도록 쓰는 자.

빗속에서도 춤추려 애쓰는

그런 나를.



#인천 #자유공원 #방구석 #까치 #둥지 #출간계약 #멈춤을멈추려합니다 #걷기 #쓰기 #그리기 #고맙습니다

#권수호대장님 #안희정작가님 #라라크루 #글벗님들 #책강대학 #전유정작가님 #최별작가님 #세종사이버대 #문예창작학과 #조은희선배님 #박서연학우님 #최은하선배님 #고수리교수님 #인스타 #브런치스토리 #벗님들 #모두모두 #감사합니다 #덕분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에드리언은 내 이름. 에드리언이라 불러다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