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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호섭 Mar 15. 2023

에드리언은 내 이름. 에드리언이라 불러다오.

아직도 내 이름은 에드리언.

3년 전, 공원 산책길에서 어여쁜 고양이를 만났다.

(그 시절에는 브런치라는 플랫폼을 몰랐고, 글쓰기를 하던 시절이 아니라 SNS - Facebook에 그날그날의 마음을 기록해 오곤 했다.)

그 당시 무슨 일이 있었고, 그때의 내 마음은 어떠했는가 들여다보자.




공원 벤치에 앉아 있는데 새로운 친구가 다가왔습니다.

공원 내 주력세력인 산고양이 들고양이들은

[한미수교 백주년 기념탑] 인근 야산에서 주로 서식하며 무리를 이루는데 희한한 이 녀석은 사람들 출입이 잦은 공원 출입로에서 주로 홀연히 출몰합니다.

다른 고양이들과 다르게 사람들을 피하지도 않고

간식거리를 주면 냉큼냉큼 잘도 받아먹지요.

사진촬영에도 흔쾌히 응합니다. 쎌럽인 줄.^^


필경 최근까지 누군가 키우다가 유기한 유기냥인 게 분명합니다.




저에게 다가오던 날 이아이를 보면서 거의 세 시간 고민했습니다. '데리고 가서 키울까?'


그러다 온 동네 어르신들, 어린이들의 귀여움 듬뿍 받는 모습보고 마음을 접었답니다. 내가 혼자 독차지할 아이가 아니구나. 싶었습니다.


이름만 지어주고 왔습니다. "에드리언"


------




거의 한 달 만에 만난 에드리언은 조금 수척해 보였지만 조금 더 강단 있는 모습입니다.


공원의 주축세력 고양이들에게 할퀴고 얻어맞았는지 귀에 상처도 났고요. 마음이 더욱 흔들렸지만...

먹이만 주고 헤어졌습니다. 그녀가 거칠고 험난한 이 야생에서 잘 버티고 극복해 내리라 기대합니다.

그것이 자연스럽겠다는 마음입니다. 혹시나를 대비 해서 일단 겨울 전까지는 지켜보려고요.




저도 멍멍이나 냥이들을 키워본 적 없는 인간이거든요. 일단 집사로서의 역할과 자세부터 알아봐야겠지요?

아무튼 신비로운 눈빛의 에드리언. 당분간 눈에 밟힐듯합니다.


#고양이 #나 2_데려가서키울까 #나 1_너나 잘 건사해라 

#반려견 #반려묘

#유기냥집사되는 법 #알려주세요
 



3년 후, 공원 산책을 마치고 귀갓길에 다시 만났다.

(지금은 어엿한 브런치 작가이니 만큼, 일상의 쨍한 느낌과 마음을 직접 브런치에 기록해 보기로 하자.)




에드리언을 직접 키워본다거나 함께 살아간다거나 실제로 그런 갸륵한 생각을 했었고, 3년 전 바로 그해 초겨울에 과감한 함께 살기 시도를 하긴 했었다. 굶주린 모습으로 길가에서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던 에드리언을

발견하고 차마 더 이상은 놔둘 수 없어 양팔과 가슴에 끌어안았다.

"그래 상처받은 영혼끼리 나누자. 뭘? 사랑을." 이러면서 집으로 향했다. 가만히 내 품에 안겨있던 에드리언은 막상 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려 하자, 강력히 발버둥을 치며 저항을 한다. 팔과 가슴을 할퀸다.


잠시 안정을 시키고 대문을 넘어서려 서너 번을 더 시도하는데 품에서 화들짝 떨어져 나가며 다시 공원 쪽으로 냅다 사라진다. 그 때야 알듯했다.

'집구석을 이렇게 싫어하는 걸 보니, 어느 인간에게 깊은 상처를 받았구나... 네가 나를 받아줄 준비가 안 되었다면 기다릴게. 천천히 마음 열으렴.'


그렇게 헤어지고는 에드리언은 홀연히 종적을 감췄다. 온 공원을 돌아다니며 찾아 헤매었지만 그녀의 행방은 알 길이 없었다. 여기저기 수소문도 해보았으나 공원사람들도 도통 본 적이 없다고 하니, 아예 이 동네를 떠났구나 생각했다. 무정한 녀석...

'이래서 사람이건 동물이건 함부로 정을 주면 안 되는 거야. 바보 같으니라고...'

본인의 얄궂은 뒤통수만 쥐어박았다.




그녀를 다시 만난 건, 엊그제 꽃집을 지나가는 길에서다.


입간판 사이에서, 꽃사이에서 또렷한 눈빛이 발걸음을 붙든다. 이 쨍한 느낌은 보통의 에너지가 아니다. 꽃사이의 눈빛은 에드리언이 분명했다.

"너어 ~~~ 에드리언 너어~~~"

얼마나 반가웠는지 덥석 안을 뻔했다.

그런데 녀석은 사뭇 경계의 눈빛을 풀지 않는다.

하기사 지난 세월이 벌써 몇 년이냐. 고양이 타임으로 치자면 근 10년도 넘었을 테니. 이해한다.

가만히 마주 앉아서 연예인들의 그 유명한 눈빛교환의 시간을 가져본다. 5초만 해봐도 알 법하다. 덩치는 제법 커졌고 얼굴도 어른처럼 많이 커졌지만 그 신묘한 눈빛만은 여전했다. 에드리언이 분명하다.


"에드리언, 내가 널 얼마나 찾아 헤매었는지 아니? 그동안 어디서 살았어? 잘 지낸 거야? 하 이 녀석."

열심히 혼잣말하는 희한한 아저씨 생생 주변으로 하굣길의 여고생, 남고생들의 모여든다. 창피해졌는지 이

상황을 뒤로하고 에드리언은 슬그머니 자리를 피하고는 바로 옆의 미용실로 향한다.

아... 그 미용실은 동네 고양이들의 천국, 냥이들의 천사엄마로 유명한 원장님의 가게다.


"그래 여기에 자리를 잡았구나. 탁월한 선택이다. 진작에 여길 와볼걸. 어라? 그런데 옆에 재는 남자친구?

어허 멋지고 근사한 녀석이로구나.

그새 연애도 하고.

제법인걸?"












그렇다고 한걸음에 쫓아가서 원장님께 이렇게 여쭤보는 우를 범하진 않는다.

"원장님, 얘가 재죠?" 옛 사진을 들이밀며 실물검증을 하려는 의도는 가설과 증명에 익숙한 과학도일 때나 할 처사다. 나는 지금 어였한 브런치 작가이니 마음자세부터 달라진다.


얘가 재가 맞는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예전의 에드리언이 지금 저 아이라고 확신하고 인정하고 사랑해 주면 될 일이다.

정확히 얘가 재가 아니더라도 다시 명명하고 내 마음속에 품으면 좋은 일.

그리워하던 대상의 은유.

함께 나누는 반려.


이 얼마나 멋지고 근사한 일인가.

가끔 와서 잘 지내나 들여다 보고, 먹을 거 챙겨주고, 한두 마디 근황토크 나누면 될 일이다.




지난 일요일에도 거의 한마디 말없이 지냈다. 말이 필요 없는 방구석이니까.

반려견이나 반려묘는 없어도 나에겐 반려주가 있어 왔으니 그리 외롭진 않았지만, 반려주는 일주일에 한두 번이지 매일 만날 수는 없다. (눈치채셨겠지만, 여기서 반려주는 이슬이다. 영롱한 눈빛으로 집사의 영혼을

치료해 주는 이슬에게도 마땅히 반려의 왕관을!)


이제 에드리언을 다시 만났으니, 가끔 미용실에 가보고, 더 가끔 원장님께 양해를 구해 에드리언을 데리고

산책에 나서는 기쁨도 누려보려 한다. 찬란한 햇살아래 눈부신 석양아래 이 얼마나 근사한 일인가.


미리 써본다.

에드리언과 함께 걷는 산책길은 따스했다. 함께하는 따스한 계절은 우리가 만났던 계절. 다시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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