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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호섭 Mar 05. 2023

알바와 세상물정 (3)

느닷없이 To be continued 만난 구독자님들은 적잖이 당황하신다. '미완결 글을 마무리하자며 (2) 편을 시작한다더니 쑥딱 끊어버리고 휘리릭 도망쳐 버린 이 희한한 인간은 뭐지? 이거 뭐 하자는 수작이지?'

 

자이가르닉 효과에 의거하여,  

(2) 편의 시작은 "인간은 벌려놓은 일을 어떻게든 마무리하려는 속성이 있다." 즉, 쓰는 자의 입장이었고

(2) 편을 다시 미완결의 미궁으로 빠뜨려버린 의도는 구독자님들의 입장에서 더 자주 오래 기억되는지, 자이가르닉 효과나 그런 속성이 과연 있는지 생각해보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함이다.

한편으로는, 그 궁금증을 증폭시켜서 (3) 편으로 이끌어보려는 얄팍한 입장도 살짝 있고.

그렇다고 그리 얄팍하지만은 않다. 알바이야기를 쓰다 보니 알게 된 세상물정 중, 하나이기도 하니까.


이미 수많은 드라마에서 써오고 있는 기법  "To be continued"이지만 이 수법의 근저에는 역설적이게도, 도도히 흐르는 자이가르닉 효과가 있다는 걸 간파하고 본인의 어설픈 글에 이론을 실천해보려는 갸륵한 도전정신의 발로이다. 가히 칭찬할 만하다고 격려해 주시면 대단히 고마운 일이겠다.


말이 길어지는 걸 보니, 비겁한 변명이다. 비겁한 변명은 그만하고 계속 이어가 보자.




(2편에 이어서...) 대단지아파트에 배정받아 경비원 일을 시작한 기쁨도 잠시, 어느 날 밤 교대근무를 마치고, 경비실뒤켠의 창고 구석에서 잠시의 쪽잠을 청하는 사이, 우당탕탕 굉음이 들려온다.  

후다닥 뛰쳐나가보니, SUV 차량이 경비초소 앞, 경계석과 화단에 걸쳐 공중에 떠있고 사방은 온통 돌, 나무의 파편들로 어질러져 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입주민으로 보이는 남자와 경비원이 언성을 높이며 싸우고 있다. 주차금지구역에 주차를 자주 해서 동료 경비원이 불법주차 스티커를 척척 붙여놓아 이에 분개한 입주민이 자신의 차량을 경비초소로 돌진시킨 사건이다. 경찰이 출동하고 사태가 진정되었지만, 놀란 가슴은 진정이 안 된다. 이후로 입주민들과 경비원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사건사고는 이루 글로서 말할 수가 없다. 두 달 만에 그만둔다.

알게 된 세상물정 : 불법주차 스티커를 붙일 때는 차유리에 너무 찰싹 붙이지 말고, 한 면 구석을 느슨히 살짝 붙여 화딱지난 차주가 떼어낼 만큼 정도는 그나마 화를 덜어주는 지혜를 발휘하자. 화가 증폭되어 제어가 안 되면 허름한 경비초소가 날아갈 수도 있다.

 



떠오르는 Ep 위주로 간략히 요점만 쓰기는 했지만, 이렇게 가다간 한도 끝도 없겠다. 고만하자.

이쯤에서 마무리 함이 구독자님들이나 쓰는 자나 서로 간에 무난하다. 차후에 더 기억을 정리해 보고 이 주제로 책을 내보자는 엉뚱하거나 야무진 생각도 해본다.

그 책에는 브런치글에서 못다 한 이야기들을 담아보리라.  

미스터리 스릴러, 최강멜로, 로맨틱코미디, 다큐예능, 액션누아르... 장르는 넘나들며 서사는 흐른다.

눈물 없인 읽을 수 없는 한 개인의 알바사다.

  

 

호된 알바의 세상에서 어설픔과 허당스러움이 서로 만나 증폭되니, 자주 잘리거나 다치는 난. 이 인간 세상에 한 줌의 쓸모도 없는 존재인가라는 존재 부정감에도 시달린다. 그동안 직장이라는 안전하고 탄탄한 울타리 안에서 보호받고 자라온 한 마리 어린양, 한 줌의 화초였음을 알바를 하면서 알게 되었다. 관심을 두지 않았고 알려 하지도 않았으나, 울타리 너머의 세상은 치열했으며 세상물정은 단호했다. 당황했지만 그래도 차츰 괜찮아진다. 시간의 힘과 스스로 선택한 마음의 힘이 나이든 알바생의 지친 몸을 다시 일으킨다. 모든 처음과 새로움은 낯섬이고 배움이니. 익숙하지 않을 뿐이다. 하다 보니, 자꾸 잘리는 건 또 다른 기회로 나를 내모는 일이거늘, 의도치 않게 알바만랩 이라는 또 하나의 캐릭터를 얻지 않았는가.



오늘도 현장에서 분투하고 있는 이 땅의 8백만 알바생들이여. 알바는 천국도 지옥도 아니다. 우리네 삶이 배우러 왔듯이, 알바도 엄연한 배움의 현장이다. 시급 9천620원 (2023년기준). 최저임금만 받으면 내 알바 아니요.라고 스스로의 노동과 시간을 폄하해서는 안된다. 세상물정도 배우고 마주하는 사람들의 관계 속에서 반짝이는 진주같은 가르침을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온몸과 마음에 축적된 경험치는 살아가면서 언제 어디서든 활용하게 되고, 그 피땀눈물은 DNA에 스며들어 몸과 마음의 생계형 근육을 단단히 키울 것이다. 야무진 눈빛과 생을 이어가는 다부진 어깨는 덤이다. 그 시간을 허투루 보내선 안된다. 박노해 시인의 말처럼.















아일랜드출신 영미작가 오스카와일드는 이런 말을 한다.

We are all in the gutter, but some of us are looking at the stars.
시궁창 속에서도 우리 중 누군가는 별을 바라본다.      
[출처] 네이버 블로거 라이크헤븐


이 형님은 보면 볼수록 힙하다 !











두 거장의 명언에 살짝 숟가락 얹으며,

어느 이름 모를 알바만랩 경비아저씨는 구석진 창고 한켠에 누워 찰칵 한 장의 사진을 남겼고

이런 말을 덧붙인다.


흐린 새벽,
보이지 않는 별을 바라본다.
저 너머에 별이 있다.
언젠간 올 것이다.
별의 시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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