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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호섭 Mar 05. 2023

알바와 세상물정 (2)

마무리가 안 된 글은 어떻게든 매듭 지어야 한다. 파르라니 예민스러운 강박이라기보다는, 벌려놓은 일들은 어떻게든 마무리 지으려는 인간의 속성에 충실하자는 의미이다. 인류 보편적으로 갖고 있는 속성이라는데 

이를 자이가르닉 효과라 한다.


자이가르닉 이펙트!

러시아 심리학자 블루마 자이가르닉(Bluma Zeigarnik)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완결되지 않은 문제는 계속해서 기억회로에서 떨쳐내지 못하고 되뇌고 있기 때문에, 완결 지은 일보다 더 기억을 잘 해낸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과업이 끝나 소용이 없어진 문제는 기억회로에서 깨끗이 사라집니다." 이 원리는 그녀의 이름을 따서 자이가르닉 효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 자이가르닉 효과 [Zeigarnik effect] - 시험만 보고 나면 깡그리 잊어버리는 심리 (사람을 움직이는 100가지 심리법칙, 2011. 10. 20., 정성훈)


자꾸 기억나니, 그러니 쓸 수밖에. 별다른 도리가 없다. 미완성은 완성으로 미결은 완결로 미생은 완생으로 이끎이 인간의  한 속성이라니 그 속성에 충실할 수밖에. 

1편만 써놓고 완결을 못 지은, 알바이야기. <알바와 세상물정> 2편이다.


별로 재미없어도 그려려니 해주시는 구독자님들은, 이 인간이 지금 처한 상황이, 자이가르닉 오르가르닉 자일리톨 속성의 발동이려니 하시며 이해해 주시니 고매한 호모사피엔스가 분명하시다.




"알바의 꽃"하면 뭐니 뭐니 해도 요식업이다. 굳이 통계를 찾아보지 않아도 이 땅의 자영업 대다수는 요식업일 거다. 우리 동네 시장통만 가봐도 대충 80%의 가게가 먹는 가게다. 술집, 밥집, 커피집, 호떡집, 불난 집...먹을 수 있는 건 다 판다. (이웃나라 중국보다야 덜하지만.)

다시 추억해 보니 참으로 다양한 요식업 알바를 경험해 보았다. 너무 많으니 핵심사례, Key Word 위주로 추려서 정리해 보자. (요식업 이외의 업종은 간단히~)

  



이래저래 인천 신포동으로 스며들어온 이유이기도 하다. 예전 명성이긴 하나, 신포동은 서울의 명동에 빗대어 인천의 명동이라 불렸으니 요식업소가 널리고 널려있어 50대 아저씨도 알바나 일자리 찾기에 수월하리라. 

이 생각이었다.


Ep1.

신포동에서의 첫 일자리는 동네에 스며들자마자 바로 얻었다. 일식집 주방보조다. 요리는 할 줄 모르니 주방의 이런저런 허드렛일을 맡아하게 된다. 주임무는 튀김이다. 팔팔 뜨거운 기름통에 새우도 두부도 어묵도 오징어도 그러다가 손가락도 튀긴다. 너무 빨개지고 먹음직스럽고 기름지게 튀겨진 손가락을 찬물에 식히려다 설거지거리가 가득 쌓여있어 손가락을 식힐 수 없으니 설거지를 먼저 실시한다. 설거지는 집에서 늘 해오던 일이니 자신 있게 돌입한다. 잠시 후, 한 여사님이 오시더니 설거지는 본인일인데 왜 당신이 하냐며 타박하시고는 다시 튀김기 앞으로 나를 내몬다. 손가락이 튀겨졌으니 더는 튀길 수 없다. 사장님이 한숨을 쉬더니 그만 집에 가보라 하신다. 반나절만에 잘렸다. (손가락이 잘린 건 아니고...)

알게 된 세상 물정 :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담당자가 있다. 함부로 선을 넘어선 안된다. 남의 밥그릇을 넘본다고 오해받을 수 있다. 손가락을 튀겨도 챙겨할 건 눈치다.


Ep2. 

포차에서의 일자리도 역시 주방보조다. 이번 임무는 전부침이다. 동그랑땡, 어묵, 호박, 생선살 온갖 것을 다 부친다. 한참을 부치고 있는데 한 손님이 꽐라 되어서 울며불며 신세타령을 한다. 젊은이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센세타령이 한 시간을 넘어가니, 안타깝고 측은한 마음을 지나 정신이 어질어질한 상황으로 치닫는다. (오픈형 주방이다.) 거의 세 시간을 참다가 전부침 도구를 살며시 내려놓고 젊은이 앞으로 나선다. "손님. 안타까운 상황이겠지만 이제 그만했으면 좋겠어요. 다른 손님들에게 민폐를 주니, 보세요. 앉아있던 손님도 나가버리고 새로 들어오려던 손님도 그냥 가버리잖아요. 남의 영업장에서 이거 너무 심한 거 아니요?" 젊은이는 더 큰 소리로 막무가내를 부린다. 난동 직전이라 밖으로 잡아끄는데 사장님이 손님대신 내 멱살을 끌고 주방으로 몰아세운다. "당신이 뭔데 나서고 OO이야. 전이나 부치라니까. 당신이 사장이야?" 그 손님은 10년 차 단골손님이란다. 1일 차 알바생은 당일차 하루 만에 잘렸다.

알게 된 세상 물정 : 알바는 사장도 아니고 사장의 가족도 아니다. 맡은 일만 해라. 엄한 일을 굳이 하게 되면 그건 대부분 오지랖이다.


Ep3.

해장국집에서는 홀서빙이다. 마침 주말인데 세상의 모든 아저씨가 다 쏟아져 온 줄 알았다. 단 5분도 쉴 틈 없이 신발도 못 신고 맨발로 뛰어다녔다. 무슨 특별한 단체회식이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거의 매일 이런 수준이라고 사장님의 젊은 아들이 자랑스레 뻐긴다. 골골 거리는 내 모습을 보고 혀를 끌끌 차며 "아저씨, 세상 고생 더 하셔야겠어요."라고 말한다. 부르튼 발을 절뚝이며 하루 만에 때려치웠다. '이런 싸가지...'라는 혼잣말을 남기고.

알게 된 세상 물정 : 힘든 일보다 더 힘든 건 사장님 아들의 금수저빛 비아냥이다. 자존심 긁는 소리로 스크래치를 내도 웃어넘겨라.


Ep4.

터키식 밀병전문점에서도 홀 서빙이다. 사장님은 이란사람, 가게에 손님이 없자 새로 부여된 임무는 길거리 판매다. 가게문 앞에서 팔아보다가, 시장통으로 전격 진출한다. 반나절만에 30 여개 시식품 (한 개에 5천 원)을 호떡집에 불난 듯 죄다 팔아치웠다. 창업 이래 이런 알바생은 처음 본다며 사장님은 흥분한다. 어라? 내가 장사에 소질이 있는 건가? 해볼 만한데?... 그런데 얼마 가지 않아 사장님이 다른 사업관계로 가게를 접었다. 장사의 신이 어나기도 전에 접혔다.

알게 된 세상 물정 : 알바를 하다 보면 자신의 잠재능력을 어쩌다 발견하기도 한다.


Ep5.

양말 길거리 판매에 도전한다. 양말 OEM제조공장에서 따끈따끈한 짝퉁 폴로 양말을 받아다가 길거리 가판에서 판매하는 일이다. 판매가는 만원에 네 켤레다. 구매가는 영업비밀이니 프로선수들은 이를 오픈해서는 안된다. 알바라기보다는 거금 50만 원을 투자한 어엿한 사업에 가깝지만 형색은 가련하니 성냥팔이 소녀처럼 "성냥이나 양말 사세요"를 외쳐야 한다. 겨울 내내 두 손에 양말을 신고 호호 불며 버텼으나 봄이 오니 시민들이 양말을 안 사간다. 한 계절만에 접었다.

남은 양말과 가판대는 근처 동사무소 노인복지과에 흔쾌히 기증했다. 어르신들의 따수한 양발을 위하여.

알게 된 세상 물정 : 안데르센의 <성냥팔이 소녀>는 사실 잔혹동화다. 아름답고 동화 같은 세상은 현실에 없다. 정신 단단히 차려야 한다. 그래도 가끔은 약한 자를 위해 산타클로스처럼 착한 일도 하면서...


Ep6.

인천연안부두 냉동창고 두 군데서는 이고 지고 나르는 일이다. 한 군데서는 냉동이 너무 과하게 (영하 25도 이하로) 관리되니 머리가 동강 날 지경이라 보름 만에 그만두었다. 회사이름은 동강물산이었나 그랬다.

다른 한 군데 창고에서는 러시아산 방어 30Kg 냉동포대를 이고 지고 나르다가 허리를 삐끗했다. 3 일반에 방어허리 잘리듯 잘렸다. 연안부두 남항부두에서는 낚시 뱃일이었다. 항구에서 배의 운항에 필요한 기름, 쌀, 부식 등을 이고 지고 나르는 일이다. 배는 한번도 못 타보고 한 달 정도 버티다 그만둔다. 

말해다오. 말해다오. 연안부두 떠나는 배야.

알게 된 세상 물정 : 인천 연안부두는 마계인천의 상남자들이나 버텨내는 터프한 삶의 현장이다. 힘 좀 쓴다고 함부로 들이대면 머리나 허리가 동강 날 수도 있다.


Ep7.

예전과 달리, 아파트경비원이 되려면 국가와 지자체에서 지정한 학원에서 일정교육을 이수해야 한다. 2주~3주 동안의 한차수에 참여한 교육생은 200여 명. 마무리에는 시험을 치르고 일정점수가 안 되면 재교육을 받아야 한다. 생생은 힘을 쓰는 일은 순삭으로 잘리는 일머리 없는 알바생이지만 공부머리는 그나마 괜찮은 편이다. 당당히 1등을 거머쥐고 부상으로 주어진 혁대버클마저 거머쥔다. (그 버클은 지금도 차고 다닌다. 그 계절을 잊지 않으려는 나름의 징표로서)

대단지아파트에 배정받아 경비원 일을 시작한 기쁨도 잠시, 어느 날 밤 교대근무를 마치고, 경비실뒤켠의 창고 구석에서 잠시의 쪽잠을 청하는 사이, 우당탕탕 굉음이 들려온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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