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에서 찾고 문장속에서 선택한 나의 자유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고 매사 의욕을 상실한 진공의 시공간에서, 그 표류하는 바다에서 걸으며 쓰는 글은 하나의 나침판이 되어주고 지친 자의 삶을 토닥이며 바라봐 주는 친구가 됩니다. 글쓰기를 통해 소소한 일상을 반짝이는 순간으로 이끌며, 긴 터널에서도 별을 바라보게 됩니다.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는 행위로써의 글쓰기는 자유를 찾아 떠나는 여리지만 약하지 않은 몸짓이고 춤사위입니다. 지친 자, 넘어진 자 누구나가 그런 각자의 나침판과 친구가 되어줄 어떤 무언가가 있겠으나 글쓰기의 효능은 사뭇 주체적인 방향으로 그 길을 안내합니다.
쓰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상실한 건 그간 이룬 모든 것이 아니라 정작 나 자신이었다는 것을. 모든 것이 있었지만 그 전체의 중심인 선명한 우주. 반짝이는 눈동자. 내가 빠진 삶은 아무것도 없는 허무의 세계, 진공의 시간이었다는 것을."
냉정한 세상에 꺾이고, 무정한 사랑이 떠나간 이후로는 관심이 없었다. 세상에게도 사랑에게도. 일상은 무기력이 이끌고 무의미가 뒤따르니 흐르는 건 오직 허름한 시간뿐. 고장 난 나의 시계는 오래도록 멈춰 있었다. 어느 깊은 새벽, 시계가 멈춤을 멈추고 다시 뛰기 시작한다. 느리지만 또렷이.
작은 노트에 내 마음을 조금씩 옮기면서부터다.
쓰면서 눈치챈 것은, 모든 관심과 사랑의 출발점은 바깥세상도 어느 타인도 아닌 내 마음의 깊은 우물이라는 점이다. 밖에서 안으로 가 아니라, 안에서 밖으로다. 방향을 착각하고 길을 잃은 이유를 알게 되었다. 짧은 한 문장은 한 줌의 마중물이 되어 깊이 잠든 우물에 파도를 일으키고 바다의 의미가 되며, 그 의미는 한걸음 한걸음 회복과 전진을 이끈다.
나로부터의 사랑과 관심으로 쓰는 보통의 일상은 문장의 힘을 키우고, 용기는 문장대로 사는 삶을 이끈다. 용기 있는 자가 의미 있는 시간도 새로운 행복도 얻는 거겠지. 매일 문장공부를 하고 쓰려는 이유다. 이제 겨우다시 뛰는 시간을 나만의 속도와 리듬에 맞추고 용기 있게 살고 싶기 때문이다.
끝날 때까지는 정녕 끝난 게 아니니.
“우리는 단어를 읽지만 그 단어를 살아낸다.”
정혜윤 작가가 <아무튼, 메모>에서 인용한 보르헤스의 문장이다.
출처 : 마음건강 길(https://www.mindgil.com)
나를 찾아서가 끝이 아니라, 결국은 내가 읽고 써온 문장대로 살아가라는 보르헤스의 선명한 나침판처럼, 읽고 쓰는 과정은 나를 찾는 과정 자체이며 궁극의 결과로서 되고 싶은 나, 바라는 모습으로 한걸음 한걸음 생생히 살아가는 삶의 역사,
그 모든 과정을 의미하리라.
+ 알파를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