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에 임하는 자세

두 개의 달과 하루키

by 김호섭

밤하늘에 달이 두 개 떠있었다.

김헤롱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분명한 사실이었다고 박박 우긴다.


학교는 축제기간. 1980년대. 엄혹한 군사정권 시절이지만 그해의 축제는 그런대로 캠퍼스의 낭만과 젊음의 열기가 흘러넘치는 그런 반짝이는 이벤트였다. 잠깐이었지만.


이런저런 행사와 모임에 초청? 아니 쫓아다니느라 대낮부터 술판은 시작되었다. 행사와 모임은 그저 축제 파트너 있는 커플이 주인공이었고 나머지 깍두기 시커먼스 남학생들이 할 일이라곤 그저 이슬과 막걸리와 마주하는 일. 마시는 일. 그것뿐이다.

시간이 갈수록 비슷한 처지의 과친구, 서클 친구는 물론 원정 축제 즐기러 온 동네 친구, 중고등 동창 등등이 합세하면서 그야말로 솔로 대축제 대동단결의 장이 펼쳐진 것이다. 지금이야 과묵 9단이지만 그때의 김헤롱은 요즘 말로 핵인싸!


이런 식이다.

A와 B 는 초면이다.

김헤롱 : "A야. 너는 내 친구지?"

A :"그럼 그럼."

김헤롱: "B야. 너는 내 친구 아이가?"

B: "뭐라카노.벌써취했능가?"

김헤롱 : "그러므로 이제부터 A와 B는 친구다. 자. 한잔씩들 해."

이효리의 텐미닛이다. 서로가 친구가 되는 시간.




부어라 마셔라. 술병은 나뒹굴며 산처럼 쌓이고 시간은 저녁으로 치달은다.

잔디밭에 앉아 하늘을 쳐다보니 달이 두 개다.

'이럴 리가. 달이 두 개라니...

내가 취한 건가? 그럴 리가. 천하의 김헤롱이.'

"얘들아. 달이... 달이 두 개야! "

김혜롱은 무지개를 쫓는 동화 속 소년처럼 방방 뛰며

친구들을 찾아본다. 이미 생존자는 없다.

사방팔방 흩어져서 엎어지고 고꾸라진 전우들은 이 세상 불쌍한 자세로 저세상을 들락거린다. 줄잡아

(약간 과장해서...) 수십 명이 쓰러져 있다. 일으켜 보아도 다시 쓰러진다.

할 수 없이 어여쁜 여학생과 함께 지나가던 다른 친구를 불러 세우며 외친다. 달이 두 개라고.

그 친구는 말한다.

C : "헤롱아. 너... 너도 취하는구나. 하나는 달이고 하나는 애드벌룬이야. 축제 기념으로 학교에서 띄운.

얼른 집에 가."

헤롱은 친구의 말을 무시하고 방방 뛰어간다.

두 개의 달을 잡으러...



천하의 김헤롱이 평생 손꼽을 정도로 몇 안 되는 대취의 날 중 하나인 그날의 발단은 이러하다.

서클 동기 여학생이 축제 파트너를 데려와 모두에게 인사를 시켰다. S대생이라는 그 녀석이 서울 자랑, 학교 자랑, 자기 자랑 한참을 늘어놓자, 가뜩이나 패배감에 젖어있던 김헤롱이 꺼내 든 카드는 이슬이었다.

'그래? 그리 잘났어? 너 오늘 잘 걸렸다.'

맥주컵 가득 찬 이슬 한잔에 녀석은 초장에 도망갔지만.,

꽁꽁 싸매 두어 열어서는 안 될 뚜껑이 열려버린 헤롱의 열등감은 브레이크 터진 천리마처럼, 조자룡의 헌 칼처럼, 이슬을 무기로 캠퍼스 이곳저곳을 내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마음의 상처를 이슬을 앞세워 친구들을 희생시키며 치유하려는 얄팍한 이기심이자 객기였음에 틀림없다.

(즐거운 축제였지. 그랬으면 됐다. 어쨌든 미안했다. 친구들아.)

그렇게 급기야 두 개의 달까지 만난 것이다.


이 열등감은 꽤나 오래도록 나를 괴롭혔지만

대신에 얻은 교훈은 겸손이다. 이슬 앞에 조자룡 없고, 이슬 앞에 열등감은 초대해서는 안될 손님이다.

이슬은 오롯이 이슬로 맞이하고 그 풍미에 겸손히 임해야 할 자세인 것이다.


훌륭한 교훈과 함께 한 가지 보태진 다짐도 있다.

그 유명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 현실과 상념 속의 두 세상을 오가는 스토리텔링의 중심에 있는 것은 두 개의 달이다. 각각의 세계관을 구분 짓는 유일한 징표로서의 구분자이다.

합리적 상상이지만, 그도 분명히 언제인가 어디선가 사케에 대취해 두 개의 달을 보았으리라. 스무 살의 나처럼 말이다.

차이가 있다면 그는 그 이야기를 애저녁에 소설로 승화시켜 글로벌 베이스의 대작가가 되었고,

나는 그 이야기를 이제사 브런치에 끄적여 조회수 50 넘기기를 바란다는 점. 그것뿐이다.

아주 미미한 차이다. 아무렴. 그럼 그럼.

집중할 것은 그와의 동질감이다. 대상을 바라보는 감성이겠다.

두 개의 달이다. 이게 어디 길거리에 흔하디 흔한 사건인가 말이다.




모두가 웃어버릴 어처구니없는 객기이고 패기이다만, 이번엔 열등감은 초대하지 않는다.

"뭐 어때. 나는 나에요. 상관 말아요요요~"

글쓰기에 임하는 나의 자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