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처음을 열어주는 아버지

by 김호섭

대한민국에서 정치 9단, 바둑 9단. 이런 호칭은 그 분야 최고의 경지에 오른 이에게 부여된다.

10단은 쓰지 않는다. 완벽을 의미하기에, 완벽한 인간은 없기에 이 레벨은 신의 영역으로 바라봄직하다.


그렇다면,

내 주변 사람들에게 각자의 장점에 맞게 설거지 9단, 에세이 9단, 야부리 9단, 육아 9단, 과묵 9단 등등의 호칭으로 부르거나 불려지는 상상을 해보면 어떨까. 재미가 예상된다.

이렇게 말이다.

"네. 다음은 엄청난 내공의 과묵 9단 김호섭 님을 소개합니다. 이번에 《안녕, 이슬아》출간 기념으로 수백 명의 독자들과 제주도에서 1박 2일에 걸쳐 수다 한판 벌이셨다는데 어떠셨나요?"


과묵 9단을 보태니 멘트가 훨씬 맛깔나고 윤기가 흐르지 않는가?

그나저나, 이처럼 희망사항 또는 바라는 미래의 모습을 자주 상상해보는 건 꽤나 유쾌하고 재미난 일이다.

(출간! 독자와의 만남! 이라니.)

상상의 한계는 없고 나 홀로의 마음이니까.

유언비어 날포죄로 구속될 일은 없으니까.




사실, 과묵 9단보다는 이슬 9단, 주당 9단이 좀 더 나의 특성에 가까운 호칭이다. 어디 가서 주량 자랑은 하지 않는 것이 술꾼들의 ABC이다만, 어찌나 마셔댔는지... 얼마나 많은 술꾼들을 고이 잠재웠는지... 이 정도면 가히 9단의 레벨에 충족되지 않겠나 자평해본다.

심지어, 대학 4학년말 졸업도 하기 전에 취업이 결정된 회사는 영등포에 있던 '크라운맥주'였다. 하지만,

곧이어 합격통보가 온 S그룹으로 (눈물을 머금고) 입사를 하는 바람에 크라운맥주 원액을 원 없이 마실 기회는 사라졌다만, 지금도 기억난다. 전설의 CM송.

"크라운 흰 거품은 우리들의 낭만.

가득히 부어요. 크라운맥주~"




약간 논란이 예상되지만, 맥주는 술로 쳐주지 않는다. 음료다. (청춘별곡 시절 얘기다. 오해 없으시길)

본격적으로,

이슬아가 내 인생에 들어온 날은 좀 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봐야 한다. 대학 입학을 앞둔 어느 날로 기억된다. (여기서 이슬아는 유명 작가이신 '이슬아'작가님을 칭하는 게 아니고 참진 이슬로 할 때의 그 아이다. '이슬아 작가님과 아는 사이세요?' 글 제목만 보고, 기대 가득한 독자께서 물으신다면, '설마요 그럴 리가요.'라고 답한다. 실망한 독자들이 일거에 썰물같이 빠져나간다면, 제주도!라고 외치며 애절하게 발목을 잡아본다.)

역시 첫 술잔은 아버지다.

첫 양복, 첫 구두, 첫 술잔... 아버지들은 그렇게 아들의 처음을 열어주신다.

아버지와의 첫 술자리 이전에 친구들과 홀짝홀짝 마셨는지는 기억이 가물가물하니, 가물가물한 기억은 없던 걸로 하는 게 세상사 편하다.

그래서 나의 공식적인 인생 첫술 잔은 아버지와 함께한 그날의 술잔이다.

예나 지금이나 대입을 앞둔 학생들 선망의 대상은 대부분 SKY. 몇십 년이 흘러도 크게 변함이 없는 듯하다.

대한민국 교육이 다양성을 수용하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이다. 내가 그렇게 생각한다 해도 세상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너나 잘하세요 한다. 친절하다.

어쨌거나 그 당시 전교에서 제법 Top 랭킹 안에서 놀던 나 또한 당연히 그중에 한 곳에는 가겠지라는 기대는 의심하지 않았고 대학 가면 미팅도 열심히 하고 재미나게 놀아야지 같은 야무진 희망에 부풀었지만 그 희망은 오래가지 않았다.

가족, 선생님, 친구들의 기대를 한 순간에 무너뜨리고 나는 대입학력고사 (지금의 수능)에서 완전 폭망 한 것이다. 2교시부터 갑자기 배탈이 났다는 내 설명은 모두가 곧이 받아들이지 않는 눈치였다... 사실인데 말이다.


그날부터 집안을 내리누르는 무거운 기운은, 아무리 햇살이 따사로운 어느 맑은 날도 나를 저 깊은 바다의 심연 같은 나날로 이끌었다. (재수를 하고 싶었지만, 형편상 I 대학 - 인천의 하버드-으로 결정된 상태였다.)

몇 날 며칠 방구석에 늘러 붙어서 무기력에 빠져있던 나를 아버지가 부르신다.

아버지 : "한잔하자"

김폭망 : "저, 술 안 마셔 봤는데요."

아버지 : '여태 술도 안 마셔보고 뭐했어? 공부는 제대로 안 한 것 같은데..'(라고 생각하셨으리라는 나의상상)

김폭망 :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마개는 : "야자자..자자작"경쾌음과 함께 손쉽게 열리는 병마개가 아니다. 그 시절에는 오프너 또는 치아가

동원된다.

술잔에 : "똑똑 똘똘~또르르르" (아...무리다. 이 순간에 대한 김혼비 작가님의 기가막힌 표현에는 따라갈 길

이 없다. 그의 섬세한 감성에 존경을 보낸다.)

김폭망 : (첫 이슬이 나에게 온 순간이다.) '오호라. 너로구나. 안녕! 이슬아'

아버지 : "......"

김폭망 : "......"

아버지 : "너무 많이 마시고 다니지는 말아라"

김폭망 : "네"

끝이다. 다른 대화는 없다. 전설의 빨간딱지 진로 두꺼비 세 병 정도를 나눠 마시고 과묵 부자간의 첫 술자리는 그렇게 역사의 뒤안길로 흘러갔다. 술을 마시면 정신이 몽롱해지거나, 자아가 한없이 Up 되고, 우주가 뒤섞이고, 인간사 고통이 없어지거나 또는 생기거나 한다던데 아무런 심신의 변화가 없는 것이다.

김폭망 : '어라? 뭐지? 그냥 물 마신 거랑 다를 바가 없는데? 쉬만 마려운데?'

아버지 : '이녀석보게. 에휴. 앞으로 술값꽤나 들어가겠구먼. (라고 생각하셨으리라는 나의 상상)


무기력을 걷어차고 발견한 찬란한 순간이다. 재능 발견이다. 이슬은 그렇게 진짜 이슬 같은 느낌으로 나에게 왔다. 맑고 투명했다. 처음엔 정녕 그랬다.

파란만장한 내 술역사의 그 시작은 이슬시 영롱역에서 출발했다.



이렇게 나의 술 이야기를 시작해본다. 어떤 이야기가 될지 지금은 아무런 생각도 계획도 없다.

찬찬히 지난날의 기억 조각들을 모아 모아야 할 것이고, 사실관계 확인을 위해 생존해 있는 관계자들과 모여 (한잔하며) 회의도 해야 하겠지.


이슬과의 함께한 그 새털 같은 나날들이, 그 과정 속의 반짝였거나 좌절했던 모든 순간들이

궁극의 목표인 인생 9단으로 가는 기나긴 여정 속에 과연 어떤 자양분이 되었는지 아니면 어떤 낭패를 이끌었는지 행복했는지 슬펐는지 중간 결산하고, 앞길을 나아가는 발걸음에 조금이나마 이정표로 삼으려는 것이 주요 목적이다.


다소 어수선한 출발이지만 어디 첫술에 배부르랴.

일단 한잔하고 시작하자.

* "이슬. 그대의 눈동자에 건배를..."




* 이 글에서 마지막 문장은 영화 <카사블랑카> 험프리 보가트의 명대사에서 인용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