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사는 없다! 이슬과 함께라면.

그럴 리가. 제보 바랍니다.

by 김호섭

나의 음주 스타일 (또는 주사 스타일?)을 분석해보자. 아니, 오픈해보자.

술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본인의 스타일을 먼저 고백하지 않음은 독자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몇 가지 사례를 통해서 이 인간의 꽐라스런 진상을 들여다보자.




사례 1 (과거 1) : 대학시절. 어느 날.

졸업하신 서클 선배가 학교에 놀러 왔다. 이런저런 얘기 중에, 후배들 각자 돌아가면서 대학생활의 희망사항을 한 마디씩 얘기하고 선배가 조언해주는 그런 자리다.

어쩌고 저쩌고. 근사한 희망들이 있었고 더 근사 한 선배의 멘트가 오간다. 희망의 총 천역색 무지개가 저녁 어스름, 민속주점 [마당]의 고즈넉한 천정 사이로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내 차례가 왔다. 두근두근. '난 뭘 말하지? 그런 희망이 없는데' 에라 모르겠다.

"양주 먹고 취하고 싶어요. 이슬과 막걸리는 이제 지긋지긋하거든요" 선배에게 막걸리 말고 제발 양주 좀

사달라는 담담하면서도 도발발칙한 멘트에 선배는 화장실 간다 하고는 사라졌다.





기자들이 기자수첩을 가지고 다니며 그날의 기사를 적듯이, 나도 품속에 음주 수첩을 가지고 다녔다.

오늘은 누구랑 한잔했다. 그가 나에게 뭐라 했다. 난 그에게 너나 잘하세요라고 했다.

후배의 연애상담을 해주느라 한잔했다. 연애경험이라곤 1도 없는 내가 무슨 조언을 했는가 보다

그런 나에게 상담을 요청해온 여학생들이 더 희한했다.

대충 이러한 이런저런 메모들이 기록된다. 음주 일기 또는 취중 메모라 보면 되시겠다.

중요한 건, 그 빈도다. 세보니 1년 동안 330 일에 가깝다. 인하대 3대 주당으로 슬슬 명성을 날리던 시절이다.

현충일과 집안 제사, 어머니의 극대노 호출. 그런 며칠을 빼고는 매일 그대(이슬)와 였다.

도서관 공부, 버스 끊김, 학술회의 등등의 다양하면서도 합리적인 핑계로 귀가는 안 하고 천안 출신 내 친구

박은철의 하숙집에서 거의 얹혀살았다. (미안했다. 친구야)

왜 그렇게 마셔댄 건지는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시대의 아픔과 개인의 결핍이 빚어낸 환상의 콜레보다.

더 이상의 언급은 위험하거나 구차하다. 80년대 시절의 아픔은 생략하자. 다들 아시는 그런 시절이니...

그럼 개인의 결핍은 무엇인가. 메슬로의 인간의 5대 욕구(생리, 안전, 사랑, 존중, 자아실현) 중 거의 모든 욕구가 해결되지 않거나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불만의 느낌에서 오는 결핍이다. 이런 표현은 너무 고급지다.

한마디로, 사는 게 아무 의미도 재미도 의욕도 없다는 뜻이다.

그 욕구를 해결할 힘도 의지도 능력마저 없으니 절망 속에 할 수 있는 건 술. 이슬이었다.

이슬은 그 당시 나에게 물과 같았다. 사람이 물 없이 살 수 있는가? 살기 위해 마실 수밖에. (하여튼 합리화의 대마왕이다.)


그런데 희한한 건 절대로 혼자서는 마시지 않았다는 것이다. 혼술은 내가 더 이상 넘어서는 안될 폴리스라인. 이 선을 넘으면 나 스스로 나를 지탱하지 못할 그런 요단의 강. 스무 살의 나는 그렇게 인식했다. (지금은 혼술 대마왕이다. 이 무슨 아이러니인가.)

그 선을 넘지 않으려는 나의 절절한 발버둥에 희생양이 된 건 거의 대부분 토목과 상남자 박은철이었다.

(미안했다*2. 친구야)


군대 가기 전, 여자 친구가 생기기 전까지의 일상이었다.

사회도 학교도 마음 둘 곳이 없었다. 집안은 늘 어려운 상황이었고.

다소 시니컬하고 반항아적인 내면의 어둠은 켜켜이 깊어만 갔으나 외부로 표현되는 일은 없었다. 그 내적 동기를 예술로 승화시킬 힘이나 혼. 그런 것은 나에겐 어울리지 않는 사치였고.

사람들은 나를 그저 조용하고 순둥순둥 하고 별 탈 없고 별 개성 없는 그런 아이로 알고 있었다.

술만 잘 먹는...




사례 2 (과거 2) : 직장인 또는 기업인 시절. 어느 날,

라고 쓰고 다음 사례로 넘어가려다가 다시 박은철로 돌아간다. 그와의 청춘시절이 어찌 사례 하나로 정리될 일이던가. 그 청춘에는 낭만이 있었고, 고뇌가 있었으며, 시대정신이 오롯이 새겨져 우리의 정체성을 대변한다. 그 와의 시간은 조금 더 설명이 필요하다.

학창 시절 그와의 새털 같은 수많은 밤에 학교 후문 술 거리에서 다른 인간들 모두 저세상으로 보내고,

은철과 나는 외쳤다. "See you at the Top!"

이다음에 우리 서로 정상에서 만나자.라는 의미다. 그래서 이 멍텅구리 같은 세상을 멋지게 바꿔보자.

캬~ 호기 패기 짱짱 넘치는 환상의 짝꿍이다. 그 구호를 끝으로 은철은 내 등에 업힌다.

나는 묵묵히 걸음을 옮긴다. 그의 세평도 안 되는 하숙집으로.

거기에는 이미 깨진 벽돌처럼 쓰러져 있는 토목과 친구들이 한 무더기이다. 꽐라 천국이다.

그 벽돌들을 한쪽으로 치우고 은철을 눕힌다. 술자리의 마무리 또는 정리라 함은 술자리에서만 끝나는 게

아니다. 이것이 진정한 주당의 품격이다.

나는 방에서 나와 하숙집 대문 앞 계단에 몸을 누인다. (당연히 계절적 배경은 여름이었으리라.)

"이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희망 없던 시절의 어느 새벽, 김 헤롱의 노래는 추억의 책장을 넘긴다.




은철은 나의 대학시절 영어회화반 서클 동기였고,

그해 여름, 17박 18일. 전국 자전거 일주를 함께한 한계령 눈물고개 친구였으며...

S그룹 입사동기이다. (그 시절엔 그룹공채로 신입을 채용하고 연수원에서 한 달간 엄청난 세뇌 교육 후에

계열사로 뿌려진다. 군대 신병교육대에서 자대 배치하듯이. 나는 S전자로, 그는 S건설로)

나는 10년 정도 근무하고 다른 곳으로 옮겼지만 그는 아직도 S건설에서 상무로 근무한다. 그해, 전국에서 모인 수많은 입사동기 (약 5백 명 정도?) 내로라하는 인재, 수재들 중 오늘날까지 살아남은 유일한 생존자다.

완앤온리. 그는 드디어 Top에 오른 것이다. 직장인의 별이 된 것이다. 그가 내 친구라는 것이 더없이 자랑스럽다.




이런저런 사업을 후루룩 다 말아먹고 약 3년 전쯤인가 홀로 바다로 떠난 적이 있다. 강릉. 정동진이다.

흐릿했지만 압도적인 파도와 모래시계 소나무를 벗하며 근처 허름한 여관방에 자리 잡고 은철에게 전화를 했다. 외국 건설 프로젝트만 돌던 그는 화력발전소 건설 총책으로 강릉에 잠시 와 있었다.

다른 저녁 약속이 있다던 그는 이슬한병이 채 비워지기도 전에 달려왔다. 대학 졸업 후 삼십 년 만의 해후다.

옛 친구들로부터 대충 내 얘기를 들은 듯, 그의 불안한 눈빛은 혹여나 내가 무슨 나쁜 마음이라도 먹은 거 아닌가? 반가운 마음보다는 걱정의 눈빛이 가득하다. 그런 걱정은 나와의 뜨거운 포옹으로 바로 확인했으리라. 악수만 해도 안다. 그 사람의 에너지를. 눈빛만 봐도 감 잡는다. 서로 30여년이 넘어가는 사회생활의 미덕이리라.

그렇게 여관의 짐을 다시 싸고 그의 사택으로 갔다. 회사에서 내준 거란다.

3평 하숙집에서 40평 사택이라니. 장하다. 내 친구! 근사한 아파트 사택에서 그는 혼자 살고 있었다. 가족들은 경기도에서 살고 자기는 주말에만 오간다는 얘기를 듣다 나는 그만 눈물이 차올랐다.

그의 치아가 참 많이도 망가져서 성한 이가 거의 없다. 사하라 사막의 모래바람에 그리 된 거란다.

그의 얼굴이 상처 투성이다. 토목 노가다일이 다 그렇지 뭐. 허허 웃고 만다.

길 가다 봤으면 몰라 봤겠다.라고 농담을 했지만 가장으로서의 치열했던 그의 삶이 보여, 눈물을 참기에 무척이나 애를 먹었다. 그러나, 여전히 총명한 그의 눈은 내 친구 박은철이 분명했다. 또렷하다.

은철은 이렇게 말한다.

"은퇴가 곧 얼마 남지 않았지만 나중에 내 고향 천안에 가서 낚시터나 하나 만들고 너랑 같이 고기나 잡고 놀련다, 너랑 거기서 이슬 한잔 할 생각에 벌써 즐겁다!" 하... 이 정겨운 녀석을 어쩌란 말인가.

새벽에 일찍 일어난 김 헤롱은 친구가 깰까 봐 살며시 문을 열고 나선다.

"See you at the 어디선가"라는 메모를 남기고.


치열하게 살고 있는 친구를 봤으니 그 여행은 바다보다 충만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다시 다짐해 본다. 'Top은 내가 못 이뤘지만 만나자는 약속은 꼭 지키마'

나는 그를 친구라 부른다.




김 헤롱에게 주사는 없다.

영롱한 이슬은 우주의 물이다.

생명의 물이다.

진실에 다가서는

사랑에 다가서는

신의 손이다.

그 은혜를 입고 주사라니요. 님들아...

은혜를 입은 자는 또렷이 보아야 할 일이다.

그 시간의 친구도, 사랑도, 그 아픔도, 일도, 언어도.

그 순간 모두가

함께 나눈 역사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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