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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행과 완행

by 김호섭


어지간해서는 서울로, IT 분야로 다시 돌아가지 않으려 했습니다.
격하게 고되었던 젊은 날의 기억이 있기에,

몸과 마음에 깊은 흉터로 자리한 대미지가 아직 뻐근하기에,

기회가 있을 때에도 애써 외면하고 멀리해 왔습니다.

그 수년 간의 공백을 깨고, 동인천발 용산행 급행열차에 올라탑니다.
무작정 걷고 마냥 쓰며 버텨온 그 시간들이,
달 빛 아래서도 춤추던 그 새벽들이 아스라 합니다.

절벽 끝에서 길은 다시 시작된다고 하나요?
넘어진 곳에서 일어나 다시 도전해 보자는 마음이 여러 고민보다 앞장섭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각성이 게으른 몸을 일으킵니다.

전국구로. 오대양 육대주로.
오로지 앞만 보고 급행으로 특급으로만 내달리다 고꾸라진 열차가 나의 젊은 날이었다면 이제는 전후 좌우 눈 밝혀 돌아보며 시골길, 오솔길 걷듯 가 보렵니다.
<길 위의 문장들>도 살뜰히 챙기고 돌봐가면서 말이죠.

인파 가득한 새로운 출근길.
얼마나 힘들지, 과연 오래 버틸지 알 수 없지만 미리 걱정하진 않습니다. 이 여행길에서 난 또 무엇을 보고 무엇을 담게 될지 그저 오늘에 집중하려니까요.

천천히 꼼꼼히 새로운 시선과 걸음으로 출발하는 이번 열차는 길가의 미미한 흔적일지언정 끝내 피워 낼 나만의 꽃, 그 꽃구경 가는 완행열차이어도 좋겠습니다.

마침,
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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