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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깔콘의 가르침

by 김호섭


뚜껑은 벗겨지고 속알머리와 주변머리 사이로 젊음은 빠져나간다. 여름 땡볕에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하고, 문장이라는 테두리 붙잡고 겨우 버티고 있는 나는,

길 가의 꼬깔콘을 닮았다.

나의 역할은 무엇이고, 나의 쓸모는 남아 있는가. 아직은 뒷방 영감님 되기 싫은데, 아직은 라면도 과자도 철근처럼 씹어 먹을 수 있는데...

세상에나, 꼬깔콘이 말한다. 너의 쓸모는 네가 만드는 거라고. 낡아지는 몸에 울적 거리지 말고 꾸준히 비우고 채우고 통하면 세상 숨통 틔우는 역할이 있을 거라고.

자기를 보라고. 보고도 못 보냐고 타박한다.




쓰는 자들의 선생님, 은유 작가님은 <쓰기의 말들>에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문득, 김밥 같은 글을 쓰고 싶어진다. 결과물을 남기지 않고 먹어 치우는 글. 좋은 음악과 기분으로 몸 상태를 조율하고 내 맛있는 김밥을 남에게도 먹여 주고픈 마음으로 쓴다면, 한 편의 글이 김밥 한 줄의 구원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꼬깔콘 같은 글을 쓰고 싶다.
고소하거나 소박하고,
짭조름하다가도 옥수수 맛도 나니 심심할 때 찾게 되고
마음 헛헛할 때 옆에 있으면 괜스레 다정하고
다섯 손가락에 끼워 쏙쏙 빼먹으면 재미나고
자꾸만 손이 가는 새우깡 보다야 아니겠지만
넉넉히 배 부르지 않아도 어쩌면 든든한
까칠 꺼끌한데 맛있는
꼬깔콘 같은 글을 쓰고 싶다.

사람과 사람의 마음에서 안전한 거리를 알려주고
그 사이에서 사랑하는 일, 살아가는 법을 일깨우고
사물과 사람의 경계에서 꽃이 되어주고
사람과 사물 그 누구도 상처받지 말라는 구원의 메신저.
길가의 꼬깔콘 같은 글도 쓰고 싶다.

내가,
나의 글이
그런 쓸모가 있었으면 좋겠다.

욕심이 과한 걸 보니, 나는 아직 초보다. 그러니 아직 젊다는 거겠지? 아프니까 환자고 초보니까 젊은 거다. 하늘땅 별땅. 땅땅땅.

애초에 채운 게 없으니 비울 게 없고, 비울 게 없으니 우선은 채워야겠지? 꼬깔콘 할아버지께 감사 인사 올리고, 나는 지금 도서관에 간다. 김밥 먹으러 간다.

#꼬깔콘 #은유 #작가님 #쓰기의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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