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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인천역에 뜬 달

by 김호섭

해 떨어지자마자 주섬주섬 술복장으로 챙겨 입는다. 술시에는 술복장을 갖춰 입어야 한다. 술꾼들의 기본적인 예의다. 술복장이라 해봐야 평상시 복장과 크게 다를 바 없지만, 같은 옷도 명명하는 자의 의도에 따라 재정의되고 변조된다. 슬리퍼에 츄리닝은 가급적 피한다. 주님을 영접하러 가는데 그건 예의가 아니다.

동인천에서 제일로 시끄러운 호프집. 그 이름만 들어도 전통과 역사가 시원하게 넘쳐흐르는 <은진 생맥주>. 동인천역 4번 출구 근처에 있다. 초저녁 호프집은 야금야금 슬금슬금 모여든 술꾼들로 이미 가득하다. 대충 봐도 평균연령 72.5세. 살아가는 일에 무슨 하소연들이 그리 많은 지, 수많은 이야기는 좁은 공간 속에 천둥 친다. 여기에 노인은 없다. 자신의 이야기를 목놓아 쏟아내는 자, 그들 모두 <젊은 그대>들이다. 내가 나에게 하는 말이 들리지 않을 정도로 그들의 목소리는 우렁차다.

이 집의 시그니처 메뉴는 단언컨대 치킨이다. 젠슨황 이재용 정의선의 깐부치킨에 비한다면 초라하고 소박한 만오천 원짜리 동네치킨이지만, 나는 치킨의 본질에 가장 근접한 치킨이라 감히 선언한다. 왜냐하면 어릴 적, 아버지가 퇴근길에 사들고 오신 그 옛날치킨 맛에 가장 근접하기 때문이다. 그 치킨은 잊을 수 없는 사랑이기 때문이다. 아버지 그리울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찾게 되니 이 집 치킨은 사랑의 다른 이름이고, 그러니 아들인 내가 사랑의 본질에 부지런히 다가서야 함은 마땅하다.

오늘은 내 생일이다. 셀프 축하 파티지만 혼자가 아니다. 앞자리에 아버지가 앉아계시다. 나는 엄니를 편히 모시지 못해 죄송하다 말했고 아버지는 괜찮다. 잘해왔고 잘하고 있고 잘할 것이다. 말씀하셨다.

죄스런 마음도 보듬어 주시니 아버지는 예나 지금이나 품이 넓으시다. 어지러운 마음 서서히 가라앉고 이제야 나는 보고 드렸다. 쓰는 자가 되었다고. 잘 쓰는 자는 아니지만 오래도록 쓰는 자가 되고 싶다고.


아버지께서 흐뭇하게 웃으셨다. 이미 예정하신 듯, 알고 계신 듯, 환하게 미소 지으셨다. 동인천역에 뜬 달처럼.


너무 일찍 돌아가신 내 아버지께 한 잔 올렸다.
근사한 생일날이다.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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