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와의 화해
ㅣ어제 제대했습니다ㅣ
아직도 가끔 입대하는 꿈을 몇 년에 한 번씩 꾸곤 한다. 그만큼 군대는 대한민국 보통 남자들의 삶에서 임팩트 있는 경험 중 하나다. "남자는 군대를 다녀와야 철이 든다"라고 주변에서 말들 한다. 이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사바사' 즉 사람에 따라 다르다.
군을 떠나는 건 내게 2가지 의미였다. 하나는 '일상으로의 복귀', 다른 하나는 '잃어버린 2년 메꾸기'
제대 다음 날, 기쁨의 술자리가 아닌 국토대장정의 길에 몸을 실었다. 일주일 간 걷고 또 걸으며 '예전의 나'와 소소한 작별의 시간을 가졌다.
국토대장정을 통해 잠깐의 워밍업(?)을 하고 제대로 처음 도전한 분야는 '학생기자'였다. 딱히 기자를 하겠다는 목표가 있었던 건 아니다. 제대 후 읽게 된 '젊은 구글러의 편지'라는 책에서 저자 김태원 씨가 학생기자를 했다는 이력이 마음을 움직였다.
"나도 구글러가 되면 나중에 강연도 다니고 멋있을 것 같은데..."
'강연 다니는 나'라는 '미래의 나'에 제대로 동기부여 되어 면접의 문을 두드리다 결국 '캠퍼스 OOO'이라는 잡지사의 학생기자가 된다.
그땐 몰랐다. 내가 글을 오지게(?) 못 쓴다는 사실을.
경험치에 비추어볼 때 글쓰기는 꽤 고난도의 도전이었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글쓰기'는 어릴 적 일기와 독후감 쓰기가 전부였다. (그 흔한 입시 논술도 하지 않고 대학도 무논술전형으로 들어갔다.)
당시 교정 업무를 봐주었던 선배기자 S가 고생 꽤나 했다. 꼼꼼하고 섬세한 성격을 가진 S는 온화한 성격의 소유자지만 피드백은 날카롭기로 유명했다.
내가 한 페이지 원고를 작업해 넘기면 두 페이지 넘게 피드백이 돌아왔다. 그의 전담마크(?) 덕분에 시간이 흐르면서 나의 글쓰기에도 기본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기자로서의 묘미는 '마감'에 있다. 월간지였던 잡지 특성상 월초에 기획 회의가 진행되고 인터뷰 및 기사작성-마감이 당월 20일까지는 완료되어야 했다.
학생 때는 왜 그랬던 건지... 꼭 마감일에 가까워져서야 글을 쓰기 시작했다. 마감 전날에는 밤을 새우는 게 기본이었다.
문제는 시험기간이었다. 다음날 전공 시험을 앞두고 있는데 마감일자와 겹치면 어쩔 수 없이 기사를 쓰고 있는 나 자신을 바라보며...
"학생이 공부를 안 하고... 부캐인 학생기자에 더 열심히라고?"
현타가 올 때도 있었지만 마감 원고를 넘기고 맞이하는 휴식의 달콤함과 성취감은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큰 기쁨이었다.
그렇게 난 1년 학생기자를 하고, 6개월 교정기자 활동을 하게 된다. 맞춤법은 물론 주술 호응이 맞지 않는 비문들만 쓰던 내가 1년이 지나고 오히려 후배 기자들을 코칭하게 되었다.
그때 알게 되었다.
"처음엔 느리거나 부족할지라도.. 난 누구보다도 임팩트 있게 성장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러고도 대학생활 2년 반은 참 치열하게 살았던 것 같다. 물론 그땐 스스로를 몰아붙이기만 했을 뿐...
변화된 나의 모습을 칭찬해 주기보다는 '아직 만족하면 안 돼', '멀었어', '정신 차려'라며 스스로에게 인색했다.
이제는 나의 그림자에게도 말하고 싶다.
그때의 네가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고.
참 고생 많았고 고마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