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사랑하는 그리고 고마운
불과 2주 전 일이다. 그날 이후 나의 일상이 무너졌다.
3월 26일 저녁 8시, 퇴근 후 페이스톡이 울린다.
손주들을 보고 싶어 하는 아버지, 어머니의 전화다.
평상시와 다른 점이 있다면 매번 연락하던 엄마가 아닌 아빠의 전화라는 거.
최근 아빠의 연락이 잦아졌다. 태생이 무뚝뚝한 경상도남자라 먼저 연락하는 것도 어색해했는데,
몇 주전부터 먼저 전화하는 게 잦아졌다. 딱히 별다른 얘기는 없다.
그저 “퇴근은 했니? 밥은 잘 챙겨 먹었니?”라는 부모와 자식 간 으레 할 수 있는 대화다.
엄마 아빠는 최근 제주도 여행을 다녀오셨다. 10년 전 제주도에 정착한 누나의 집에 다녀온 후였다.
한라산도 오르고 바다도 가고. 제주도에서 좋은 시간을 보내고 온 게 미안해서인지 여행기간 동안 전화를 이틀 걸러 한번씩은 하셨다.
이번 통화도 손주들의 선물을 한 보따리를 사 오시곤, 선물을 핑계로 아이들의 애정공세를 랜선으로나마 듬뿍 받아보고자 하는 마음이었으리. 한바탕 통화를 끝내고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제주도에서 부모님이 보내준 천혜향을 아이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여줬어야 했는데 깜빡했다.
서둘러 나는 통화버튼을 눌렀다. (뚜뚜뚜)
이상했다… 분명 1분 전 통화를 했는데 연락이 되지 않다니..
그 통화가 마지막이었다. 향년 74세. 그렇게 아버지가 '나'의 곁을 떠났다.
가까운 가족의 죽음은 처음이 아니다. 할아버지는 내가 한창 취업 준비를 하던 스무 살 초반에, 그리고 할머니는 첫 취업에 성공한 첫 해에 하늘나라로 가셨다.
죽음에는 3가지 유형이 있다고 한다.
‘나'의 죽음, '너'의 죽음, '그들의' 죽음. 지금껏 나는 그들의 죽음을 옆에서 또는 먼발치서 보아왔다. 할아버지, 할머니도 분명 가족이긴 했으나 내겐 '그들'이라 칭하는 '타인의 영역'에 가까웠으리. 나의 죽음은 잠깐의 고통만 내게 있을 뿐, 결국 남은 슬픔은 나를 사랑했던 사람들의 몫이다.
세 가지 죽음 중 가장 슬픈 건 결국, 사랑하는 '너'의 죽음이다. 아버지는 내게 철저한 '너'였다.
우리 집 둘째로 태어난 난 누나와 8살 터울이다. 내가 태어날 당시 아버지의 나이가 서른여덟. 지금의 내 나이쯤이었다.
말로는 '사랑'을 잘 표현하지 못했지만, '행동' 하나하나에서 사랑을 느낄 수 있었던.
그렇다. 아버지는 그런 사람이었다. 가족에게 살가운 말 한마디 제대로 못 건네던 사람. 어릴 땐 그런 아버지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같다. 아직도 어렴풋이 기억나는 건 "난 크면 아빠랑 다르게... 자상한 남편이 되어야지!"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서른이 넘고 결혼을 하게 되면서 아버지를 조금씩 이해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나 역시 아빠가 되면서 ‘아빠’라는 역할이 쉽지 않은 걸 느낀다.
서른일곱이 되었지만,, 지금도 흔들리는 나의 면면을 볼 때면 아버지의 지난날도 쉬이 보낸 시간이 아니었으리.
그리고 어릴 적 마음에 들지 않았던 아빠의 모습들이 내 일상에서 틈틈이 발견된다.
“와,,, 내가 정말 아빠를 많이 닮았구나... “
알게 되고 진심으로 그를 이해하게 되었다. 듣기 좋은 말 한마디보다도, 꾸준히 변함없이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든 자리는 몰라도 난자리는 안다'라고 했던가.
아버지의 부재로 그가 얼마나 큰 존재였는지 새삼 알아가는 요즘이다.
내 삶의 시작이자, 우리 가족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셨던 나의 아버지.
오늘 밤 당신의 목소리가 무척이나 그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