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사로 본 우리 기업 현주소
데일리 임팩트 <세상 돌아보기> 칼럼(2024.2.14)
사람의 인센티브 구조는 가르쳐 주지 않아도 거래할 때 정보비용, 협상비용, 계약작성·이행비용 등을 포함한 ‘거래비용(transaction cost)’을 최소화하려 한다. 혁신은 시장에서 이를 낮추려고 네트워크 형성과 확장에 초점을 맞춘다. 기업사(企業史)는 모험적 투자와 혁신이 해운에서 시작되고, 철도·도로망 확대와 고속화에 집중되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에 수반해서 정보통신(전신·전화·인터넷), 유통경로(제조·유통·물류), 금융 혁신도 이루어졌음을 알려준다. 기업들의 성공과 진화가 이런 분야에서 먼저 이뤄진 게 우연이 아니다.
경제에서 거래비용 최소화의 핵심 수단으로 등장한 것이 기업이다. 1937년 로널드 코즈(Ronald Coase)가 그의 선구적 논문 ‘기업의 본질(The Nature of the Firm)’에서 설파한 것처럼 기업과 시장의 경계는 거래비용에 따라 결정된다. 즉, 거래비용이 크면 사람들은 스스로 만들고, 거래비용이 작으면 시장에서 산다. 오늘날 전형적 기업 형태인 ‘주식회사(corporation)’는 거래비용 축소로 이익을 보려는 네트워크 구축에 따른 위험 축소 노력과 부작용에 대한 대안 모색 및 보완 과정에서 생성된 혁신이다.
초기 주식회사는 위험 분산과 회피로 투자자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모험적 투자수단으로 시작되었다. 그때까지 불가능했던 위험을 나누어 감당할 수 있어, 고위험-고이윤 기대 투자가 가능해졌다. 그러나 기업사는 한 국가의 경제가 주식회사 제도 도입에서 멈추고, 규모의 경제를 비롯한 기업 효율성 제고 없이는 획기적 도약이 불가능함을 보여준다. 부의 축적에 따른 부의 집중은 기업이 효율성 제고 수단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한다. 예컨대, 미국의 인수·합병을 통한 거대기업의 탄생과 일본과 독일의 개인 또는 기업 간 협력의 담합적 성격에 대한 국가 보장은 둘 다 대기업을 통한 19~20세기 경제성장을 실현했다. 그러나 20세기 말 이래 기업사는 일본과 독일 방식의 지속가능성이 상대적으로 취약함을 보여줬다.
또한 기업사는 미국 국가체제의 기반인 ‘분권화된 연방주의(decentralized federalism)’의 기업 버전인 ‘사업부제(division structure)’가 거대기업이 효율성을 유지하면서 시장보다 거래비용을 낮추는 가장 좋은 수단임을 보여준다. 미국이 영국 식민지로 출발해서 단기간 내 도약한 요인 가운데 이 제도적 선택이 핵심 역할을 했다. GM(General Motors) CEO인 알프레드 슬론(Alfred Sloan)이 시작한 이 사업부제의 모방과 도입으로 미국 거대기업들은 세계를 제패했고,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 세계 각국 선도기업들은 이를 모방·개량하는 데 각축해 왔다.
기업은 수직적 구조로 돼 있다. 그러므로 이윤을 극대화하려면 이 위계구조의 효율성이 필수적인데, 통상적으로 그 효율성과 지속가능성은 계급 간 상호협력과 상호이익을 어떻게 보장할 수 있는가에 달렸다. 만일 이것이 불가능하면 장기적 위계 유지 비용이 그 이득보다 커서 거래를 시장으로 돌려야 한다.
최근 소유지배구조(corporate governance) 논쟁과 입법 등 제도화가 시작된 것도 이 구조와 관련되어 있다. 처음 주식회사가 등장할 때는 대개 왕실이나 정부가 보장하는 동인도회사(East India Company) 같은 특허회사(Chartered Company)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므로 실질적 대주주인 왕실이 대리인(경영자, 당시 항해책임자)을 공권력으로 임의 제재할 수 있었다. 당연히 소유지배구조 관련 쟁점이 적었을 것이다.
그러나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미국 거대 철도회사들과 거대기업들의 주식이 상장되어 소액주주들이 1000만 명을 넘어섰다. 그러자 주주와 전문경영인 간 심각한 이해관계 상충 발생 가능성이 밝혀지고 제도적 보완 논의가 시작되었다. 기업사에 따르면 1932년 아돌프 벌리와 가디너 민즈(Adolf Berle and Gardiner Means)가 제기한 주인 대리인 문제 해결책 논의 과정에서 현대적 소유지배구조 관련 논쟁과 제도화가 출발했다.
우리나라 기업사를 이런 관점에서 보면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기업을 통한 경제적 도약을 잘 관리해 왔다. 경제발전 과정 초기 독일과 일본이 채택한 협력적 방식의 대기업화로 신속 추격(catch-up)에 나선 것은 시장이 발달하지 않고 부존자원이 없는 경제에서 엄청나게 성공적인 의사결정이었다. 또 경제가 중진국 수준에 도달하자, 민주화와 지방자치, 민간과 시장 역할 강화에 성공하고, 민간의 거대기업 운영 부작용을 미국식 기업정책·경쟁정책으로 대응하는 정책기조 전환을 택했다. 1997년 발생한 외환위기 이후 미흡하나마 담합구조 와해 방향으로 경제운용 방식 전환을 시도해 왔고, 큰 틀에서 기업지배구조·공정거래·노사관계 모두 긍정적으로 진화해왔다.
다만 큰 걱정은 최근 주요 정치세력과 그 지지자들 가운데 민간과 시장의 역할을 왜곡 또는 부정하고 사회주의적 관점을 경제제도화하려는 극단 세력이 강해지고 있는 점이다. 그런데 이런 기업환경 문제는 특정 정부의 친시장·친기업 정책만으로 극복할 수 없고, 대응에 기업들의 적극적 시장경제 옹호 노력이 필수적이다.
예컨대 시장에서 주주는 자신의 실질적 이익을 중시하는데, 지금처럼 주식거래 자본이득 과세를 제한적으로 시행하는 동안은, 배당보다 시세차익에 관심이 커서 기업의 저율 배당에 저항이 크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자본이득 과세가 점차 보편화하고 강화되면, 배당성향이 낮을 경우 투자를 축소하려 할 것이다. 이런 인센티브 구조를 현재 정부가 추진 중인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한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등 관련 정책 개선에 적극 반영하고, 기업들은 배당 강화 등 주주친화적 정책들을 장기적 핵심전략으로 채택해야 한다. 그러면 이런 인센티브-일치적(incentive-compatible) 제도들의 정착이 다시 사회주의적 제도를 억제하는 방파제 역할을 할 것이다. 그러므로 기업들은 이런 근원적 대책이 더 많이 더 다양하게 시행되게 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