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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선 Sep 19. 2024

걱정 말고 살아가야 할 이유

논객닷컴 <세상 돌아보기>[이주선 칼럼](2024.09.19)

추석이 지나갔다. 늘 그렇듯이 많은 사람이 부모·동기간·친척을 찾아가고, 성묘하거나 여행을 하는 등 대이동이 있었다. 그러나 어머니가 6월에 소천하신 내게 이번 추석 연휴는 어머니가 등 뒤에서 “아범” 하고 부르시는 것 같은 날들이었다. 아들들과 며느리, 동생들과 조카들이 모두 모였는데도 어머니의 빈자리는 너무 커서 전 한 점, 송편 한 개를 집을 때도 어머니 생각에 목이 메었다. 누구나 그런 것처럼 어머니는 내 인생의 가장 큰 버팀목이셨기에.


아내가 “추석(秋夕)이 아니라 하석(夏夕)”이라고 한 말이 적절해 보일 만큼 사우나 같은 무더위가 온종일 맹위를 떨치는 이상기후 속에 추석이 지나갔다. 이 추석 연휴에 지금까지 보지 못한 여러 태풍이 중국과 유럽을 강타하여 수많은 생명과 재산 피해를 냈다. 또 국내외를 막론하고 정치 지도자라는 사람들은 대립과 반목, 상식 이하의 담론으로 뉴스 미디어를 어지럽히고, 대중은 편을 짜서 싸움을 선동하는 정상배들을 맹목적으로 추종하고 있음이 매일 뉴스를 도배하고 있다. 또 하루도 빠짐없이 기술혁신에 따른 정치·경제·사회 전반의 불확실성 증폭과 관련된 우려들이 미디어와 SNS들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다.


이런 불확실성의 증폭과 관련된 핵심 요인은 기술혁신과 그 대처를 위한 정치·경제·사회적 대응 사이의 속도 차이 때문이다. 기술혁신은 ‘지수적으로(exponentially)’ 급격한데, 그 대응은 ‘선형적으로(linearly)’ 더디기 때문이다. 인공지능 포함 ‘판갈이(game changer)’ 기술들은 2010년대 대중에게 보편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후, 불과 10년도 되지 않아 많은 부문에서 사람을 능가하는 지능적 역량을 보이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사람에 고유하다.”고 주장하던 추론·감정 표현 등도 인공지능이 잘 해내기 시작했고, 특정 영역에서 사람과 견주어 현격한 역량 우위를 내는 것은 더 이상 뉴스도 아니다. 예컨대, 인공지능이 수험생 중 단 몇 명만 푼다는 최고난도 대입 수학 문제를 수십 초 내에 푸는 추론 능력을 보이고 있다. 게다가 한 인공지능이 보는 것·말하는 것 포함 여러 일을 동시에 하는 역량도 기하급수적으로 향상되고 있다.


2005년에 “2029년 인공지능이 특이점(singularity)에 도달할 것”이라고 예언했던 구글의 수석과학자이자 미래학 연구의 최고봉 레이 커즈와일(Rey Kurzweil)은 이를 재확인했다. 그는 금년 5월 발간한 책 ‘특이점이 더 가까워졌다(The Singularity Is Nearer)’에서 변화의 핵심인 기술영역에서의 혁신이 동시에 가속적으로(accelerating) 일어나고 있어서 그럴 것이라고 봤다. 특히 이 혁신은 나노기술과 결합해서 사람 두뇌를 클라우드에 있는 인공 뇌와 연결함으로써, 사람에게 생물학적 지능의 수백만 배에 달하는 역량을 줄 것이다. 그는 이것이 우리의 지능과 의식(consciousness)을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심오하게 확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심지어 그의 예측은 뇌를 컴퓨터에 업로드하는 연구의 진보로 ‘제2의 자신(you 2)’이 만들어지고, 장기를 비롯한 육체의 여러 곳이 갈아 끼워지거나 새로 만들어져서 사실상 죽지 않는 상황이 궁극적으로 실현될 수 있다는 데 이르고 있다.

레이 커즈와일의 신간 ‘특이점이 더 가까워졌다’.


커즈와일의 이러한 예언이 흔히 회자되는 사이파이(Si-Fi) 속 상상과 다른 것은 이 기술들이 과학과 기술의 혁신으로 이미 현실 속에 실현되고 있고, 그 실현 속도가 지수적 가속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데 있다. 그는 이런 상황을 설명하면서 인류의 미래는 현재보다 더욱 낙관적이고 궁극적으로 현실의 다양한 문제들을 극복하여 사람은 온 우주로 그 문명을 확산하는 데로 향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칼럼을 추석에 대한 회고로 시작해서 현재 당면한 심각한 위협인 기후변화와 기술혁신의 오남용에 대한 큰 걱정을 지나 커즈와일의 책 이야기로 넘어온 것은 우리의 미래가 희망과 낙관을 가질 만한 충분한 과학적·현실적·논리적 근거가 있다고 생각해서다.


그냥 미디어의 뉴스나 SNS 등 디지털 매체의 소식만 접하다 보면 이 세상은 거의 종말을 향해 치닫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잘 아시다시피 이러한 경향은 우리가 지나온 세월과 역사만 반추해 봐도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불과 한 세기 전 35년간 일제의 식민지였던 나라, 불과 70여 년 전 3년간 온 국토가 초토화된 전쟁을 겪은 나라, ‘초근목피’와 ‘보릿고개’로 세계에서 가장 가난했던 나라, 스스로 ‘엽전,’ ‘한국놈 근성’ 등 자조를 내뱉던 사람들, 저급 자동차와 전자제품들을 수출하던 개발도상국, 군사독재와 데모로 인권유린과 무질서가 판치던 우파 전체주의 나라, 유력자들이 이민 가는 것을 자랑하던 나라, 문화적 종속이 두려워 선진문화에 대한 검열과 규제를 켜켜이 쌓았던 나라. 이런 말 뒤 결론은 “우리는 안 돼!”였다.

1960년대의 청계천@사진 연합뉴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가? 지금 우리는 선진국 사람들은 이래서 다르다고 게거품을 물던 모든 것을 다 가지고 다 해가며 산다. 그렇게 노래를 부르던 선진국이자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산다. 심지어 이미 경제적으로 우리를 식민지배했던 일본보다 1인당 국민소득이 더 높은 나라의 국민으로 산다. 전 세계에 첨단산업과 방위산업 제품, 세계인이 부러워하는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파는 나라에 산다. 그것들을 창조하고 제조하고 서비스하는 나라에 산다.

지금 청계천 풍경@사진 연합뉴스


또 여러 걱정거리와 문제들이 우리 앞에 놓여 있어도 우리는 과거보다 월등하게 공고한 토대 위에서 여러 문제를 해결할 우월한 역량을 가졌다. 우리는 지금까지 잘 몰랐지만 어느새 군사력은 세계 5~6위를 견줄 수준이 되었고, 세계적인 하이테크·방위산업을 가진 것은 물론 문화적 선도국가다. 북핵 위협에도 불구하고 한미동맹과 우리의 국제협력 수준은 평화를 수호하고, 열강의 각축에도 안보를 확보할 수 있는 역량을 보여주고 있다. 개인·기업·정부의 역량과 문화 역량도 세계적인 각축에서 뒤지지 않을 만한 수준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주의와 합리적 대처가 필요하지만 지나치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더구나 인류가 아프리카 케냐의 세렝게티 초원에서 발원하여 온 지구에 퍼진 지난 수백만 년 역사에 대한 통찰은 지금 같은 지수적 기술혁신의 실현이 가시화되기 시작한 게 200여 년 전이고, 이제 이것이 최근 본격화해서 인류의 상상조차 불가능한 변형(transformation)으로 치달을 특이점에 수년 내에 도달할 것임을 알려주고 있다. 그러므로 현존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이 특이점을 지나서 이 인류의 변형을 처음으로 경험하는 ‘신인류’의 모습을 가질 것으로 보인다. 이미 유발 하라리(Yuval Harari)는 이들을 ‘호모 데우스(Homo Deus)’라고 불렀다. 이런 세상에 사는 것은 놀라운 일이고 축복된 일이 아닌가. 카르페 디엠(Carpe Di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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