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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선 Oct 23. 2024

인공지능 시대를 인증한 노벨상

논객닷컴 <세상 돌아보기> [이주선 칼럼] (2024.10.23)

스웨덴 한림원은 10월 7일부터 14일까지 2024년도 부문별 노벨상 수상자를 발표했다.


10일 발표된 문학상은 한강 작가가 받아서 한국인인 내가 특별한 기쁨을 만끽할 수 있었다. 오랜 세월 염원했던 숙원 중 하나의 실현을 보는 것은 경이와 희열과 감탄을 자아낸다. 좀 시간이 지났지만 먼저 한강 작가에게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축하를 보낸다.


늘 그렇듯이 호의적이지 않은 이야기들도 오가지만, 나는 노벨문학상을 탄 작가가 있는 나라가 되었다는 것을 우리글과 말, 문학 그리고 나아가 문화의 격조를 온 세계가 인증한 것으로 본다. 과거 영국과 프랑스 사람들이 독일어는 문학어가 되지 못한다고 할 때 괴테와 실러 등이 독일어와 독일 문학을 영·불의 반열에 올려세운 것과 그리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포니정 혁신상 시상식에 참석한 소설가 한강@사진 연합뉴스


이번 노벨상이 내 이목을 집중시킨 또 한 가지 이유는 6개 분야 중 물리학상과 화학상, 그리고 경제학상 수상자들이 ‘인공지능(AI) 연구자들’이었기 때문이다.


8일 발표된 물리학상은 미 프린스턴대 존 홉필드(John Hopfield) 명예교수와 토론토대 제프리 힌튼(Geoffrey Hinton) 교수가 받았다. 9일 발표된 화학상 수상자 중에는 구글 자회사 딥마인드(Deep Mind)의 데미스 허사비스(Demis Hassabis) CEO와 존 점퍼(John Jumper) 연구원 등 2명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인 14일에 발표된 경제학상은 MIT대의 대런 아세모글루(Daron Acemoglu) 교수와 사이먼 존슨(Simon Johnson) 교수, 그리고 하버드대의 제임스 로빈슨(James Robinson) 교수가 받았다.

화학상 수상자인 딥마인드의 데미스 허사비스@사진 연합뉴스


이렇게 노벨상 3개 과학 분야인 생리의학·물리학·화학 부문 중 물리학과 화학 2개 부문 상을 인공지능 연구자들이 석권했고, 경제학상도 인공지능을 포함한 과학과 기술 혁신이 국가와 인간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오랫동안 연구한 경제학자들이 수상했다.


이는 더 이상 인공지능이 그저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토픽이 아니라, 농업혁명·산업혁명·정보혁명을 이어 인류를 또 다른 차원으로 이끌어갈 새 ‘판(setting)’이 될 것임을 명백하게 한 의미가 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MIT대의 대런 아세모글루 교수와 사이먼 존슨 교수,그리고 하버드대의 제임스 로빈슨 교수(왼쪽부터)@사진 연합뉴스


이미 필자는 2021년 졸저 ‘AI 임팩트’에서 이들 수상자의 구체적인 연구 성과와 공적을 포함하는 인공지능 발전의 역사와 현재 핵심 기술이 된 기계학습과 딥러닝, 그리고 이 기술들이 앞으로 어떻게 가장 뛰어난 사람의 지능을 가진 범용인공지능(AGI)과 인류의 모든 지능의 총화를 넘어서는 초지능(super-intelligence)으로 발전할지를 개관한 바 있다.


또한 인공지능의 발전이 향후 일자리, 경제성장, 무역과 투자, 소득분배와 경쟁·소득분배·무역·투자·경쟁정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다양한 논의도 망라한 바 있다. 이 책을 출간한 지 불과 3년 반이 지난 지금도 이 책에서 설명한 시나리오를 벗어난 어떤 새로운 난관도 발생하지 않았다. 도리어 가장 낙관적인 예측조차 추월할 기세로 인공지능의 혁신이 질주하고 있음을 본다.

필자의 졸저 ‘AI 임팩트’ 표지


그런데 인류의 역사시대 5천년만 돌아보아도 인류는 끊임없는 존망의 위기에 직면해왔다. 그래서 늘 인류는 자연 대 인간, 인간 대 인간의 투쟁으로 인한 존망의 위협이라는 인간의 굴레(human bondage)를 벗어나지 못한 채 살아왔다. 오늘도 이러한 투쟁은 계속되고 있다. 우리는 다시 우크라이나-러시아전쟁, 이스라엘-하마스전쟁을 필두로 전쟁의 참화 속으로 들어가 있고, 기후변화는 다시 자연이 인류의 삶에 심각한 불안과 공포의 대상이 되게 하고 있다. 우리나라만 봐도 핵무기 사용을 수시로 위협하는 김정은 독재왕조의 도발에 직면하고 있다.


더 나쁜 것은 이런 공멸의 위기가 닥쳐오고 있는데 인류가 이미 구축한 협력체계는 점점 더 허물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약육강식의 논리가 국제질서를 무너뜨리고 있고, 개인의 자유와 권리, 그리고 번영의 토대였던 자유와 민주주의가 거의 모든 나라에서 쇠퇴하고 있다. 지도자로 선택받는 사람들이 대부분 선동가이거나 거짓말쟁이들인 것도 놀랍게 유사하고, 권력을 차지하면 이를 오남용하고 국민과 시민은 안중에 없는 것도 같다. 이에 더해 기대를 모으고 있는 인공지능 기술조차 이미 상당한 사회경제적 문제점을 보이고 있다고 이번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들은 경고하고 있다.


물론 이런 위험과 불확실성은 증폭되고 있고 심지어 인류가 건설한 문명도 일시적으로 퇴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류는 비록 지연될지언정 결코 진보를 중단한 적이 없다. 사실 아세모글루와 존슨이 ‘권력과 진보(Power and Progress)’, 유발 하라리(Yuval Harari)가 ‘넥서스(Nexus)’에서 한 경고는, 지난 세기 초중반 조지 오웰(George Orwell)의 ‘동물농장(Animal Farm)’과 올더스 헉슬리(Aldous Huxley)의 ‘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의 경고와 별반 다르지 않다.

출처:교보문고

출처:민음사, 알라딘


왜 문제를 드러내고 이견을 표명하는 것이 중요한가? 그래야 문제가 해결되고 이견이 수용·조정되어 부작용과 위험을 제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시대에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가 최후까지 지켜야 할 보루인 이유는 이런 문제를 드러내고 이견을 표명하는 다양성을 용납하는 제도적 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늬만 민주주의와 자유, 그리고 시장’을 지켜내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런 길항작용을 용납하고 수용하여 조정하는 능력이 있는 진정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를 어떻게 수호할 것인가가 지금도 끊임없이 고민해야 할 최고의 과제이다.


필자는 지난 칼럼(9월 19일 ‘걱정 말고 살아야 할 이유’)에서 수년 내지 수십 년 내, 적어도 필자가 죽기 전, 인공지능을 주축으로 하는 새로운 판이 설정되고 ‘호모 데우스’라 불리는 차세대 인류가 탄생할 것이며 이 세대를 사는 것을 즐겁게 생각해야 한다고 썼다.


그 이유는 인류의 지난 수백만 년 역사가 인류의 미래에 대한 긍정을 증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질곡과 난관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늘도 낙관적으로 미래를 보고 ‘사과나무를 심는 자’가 되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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