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te bloomers
일 년 동안 방치해서 엉망진창이던 눈썹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집 근처 왁싱샵을 찾았다.
왁싱샵을 많이 가보지는 못했지만, 왁싱은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중요한 영역이라 대부분 작은 공간에 1인 침대를 놓고 운영한다고 알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 찾은 곳은 다른 데 비해 공간이 세 배 정도는 넓고 햇볕도 잘 들어 깜짝 놀랐다. 무엇보다도 하얀 얼굴이 반짝반짝 빛나고 눈썹이 정갈하게 잘 정리된 남자 원장님이 맞아 주어 신기했다. 왁싱샵의 주 고객이 여성이라, 당연히 여성 원장님이 나오실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분은 나보다 훨씬 더 ‘아름답게’ 꾸미고 계셨는데, 나의 푸석푸석한 맨얼굴과 츄리닝 차림과 더 대조되었다. 이른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깔끔하고 단정한 옷차림과, 잡티 하나 없는 피부 상태가 감탄을 자아냈다. 만화처럼 대화창이 표시된다면, 속마음으로 ‘우와, 진짜 부지런하고 대단하다’라는 대사가 들어갔을 것 같다.
원장님은 나를 상담실로 데리고 가더니 이것저것 물어보시고 15분간 맞춤 상담을 해주셨다. 어떤 이유에서 여기를 찾았는지, 앞으로 기대하는 것은 무엇인지 꼼꼼하게 물어보셨다. 그러고 나서 시작된 본격적인 왁싱은, 실제 왁싱 시간보다 준비 시간이 훨씬 더 길었다. 상담으로 1차 관문이 끝난 줄 알았는데, 추가로 눈썹 상태까지 정밀하게 관찰하셨다. 눈썹모가 얇고, 부분적으로 눈썹이 안 난 부분이 있고, 눈썹산에 과밀되서 이쪽은 과감하게 정리해야 될 거고 등등의 이야기를 해주셨다. 그러나 나는 평소에도 미용이나 외모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어떤 말을 하시던 ‘그래요? 아, 원장님이 보시고 괜찮은 방법으로 해주세요.’로 꾸준히 답했다. 그는 나의 무관심과 대답을 진심으로 안타까워하셨다. 그리고 앞으로 이런 식으로 관리하면 좋다는 말을 하며, 계속 시술을 이어나갔다.
한 시간 남짓한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동안, 우리는 눈썹 말고도 많은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눈썹 관리를 평소 제대로 하지 못했고, 앞으로도 귀차니즘 때문에 영영 그러지 못할 걸 빤히 아는 내가, 회피의 수단을 동원해 다른 주제의 질문을 던졌기 때문이다.
“원장님은 몇 년이나 이 일을 하셨어요?”
그는 뚜렷한 숫자를 말하지 않고 얼버무리며, 자신은 원래 직장인이었다가 이쪽을 뒤늦게 배워서 시작했다는 답변을 덧붙였다. 이때부터 호기심이 확 발동해, 그 대답을 놓치지 않고 질문을 계속 이어갔다. 어떤 계기로 이쪽 일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묻자, 자신은 원래 백화점 판매원을 하다가 회사로 옮겨 마케팅을 하던 사람이었는데, 우연한 계기로 미용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회사에서 과장으로 있던 시절, 옆자리 후배가 자신의 표정이 항상 어둡다고 얘기했다고 한다. 생각해 보니 회사에서 자신은 일이 안 풀리면 늘 화가 나 있었고, 옆 부서의 누군가가 맘에 들지 않으면 술로 그 스트레스를 풀곤 했다. 그러다가 자신의 표정에 대한 얘기를 해준 옆자리 후배가 앞으로의 커리어를 위해 국가자격증을 위해 따는 것을 보고, 많은 걸 깨달았다고 했다. 회사에 있으면 부정적인 나로 살게 되는데,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살기는 싫어 다른 걸 시작해 봐야 결심을 하고 자신을 돌아본 순간, 미용이 보였다고 했다. 20대에 뒤늦게 나기 시작한 여드름을 가리기 위해 시작한 화장과, 화장품의 세계가 그에게는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주변에서는 남자가 무슨 화장이냐는 이야기를 들어, 사회인이 되어서는 감히 꿈도 꾸지 못했단다. 그러다가 직장인 사춘기에서 시작된 인생 고민이, 앞으로 좋아하던 그 일을 하고 싶다는 결심으로 바뀌기까지는 무려 3년이나 걸렸다고 했다.
그는 회사를 다니며 밤마다, 주말마다 자격증을 따기 위해 학원을 다니고, 학원비와 재료비 등으로 천만 원이 넘는 돈을 배움과 경험에 썼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 기간 동안 엄청난 보람을 느꼈기 때문에 선택 자체에 후회한 적은 거의 없다고 했다. 물론 그 과정이 쉽지는 않았고 남들에게는 가시밭길로 비칠 수 있지만, 자신은 좋아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리 힘들 게만은 느껴지지 않았다고 얘기한다. 오히려 20대 때는 막연하게 동경하던 분야를, 배우고 익혀 나가니 너무 재미있어 시간 가는 줄 몰랐다고 했다. 남들 눈치 보느냐 이 일을 꿈도 꿔본 적 없는데, 이 일을 하는 지금이 진심으로 행복하다고 말했다. 바닥부터 시작해 자격증도 따고 인턴 생활을 하며 돈을 모아, 지금은 자신의 가게를 냈고 휴일도 없이 일한다고 했다. 거의 일중독 수준이다. 워라밸은 언감생심, 일에 모든 걸 걸었다. 그러나 꿈을 말하는 그의 눈은 유독 반짝이며 빛나 보인다. 그의 표정에서는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읽을 수 있었다. 누가 뭐라 하던, 내가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눈빛과 낯꽃이다.
'Late bloomer'라는 단어를 들어보신 적이 있는지 궁금하다.
우리나라말로 굳이 번역하자면 늦게 꽃을 피운 대기만성형 정도가 되려나. 글쓰기 수업에서 알게 된 리사 콩던의 '우리는 매일 새로워진다'라는 책에, late bloomer가 아래와 같이 묘사되었다.
The flowers don't know they're late bloomers. They're right in season.
이 책을 번역한, 43세의 나이에 번역을 시작해 늦깎이 번역가로 활동하는 박찬원 님의 번역을 인용해 본다.
'꽃들은 자신이 늦게 피운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그 꽃들은 바야흐로 한창때다.'
이 문장을 처음 봤을 때는 울컥하는 감정이 차올라,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아이들도 각자 뒤집기를 하는 속도가 다르고, 말을 할 수 있는 시기가 다 있다. 다만 옆집 애는 뛰어다니는데, 우리 애는 아직 못 걷는다면, 부모로서 걱정이 될 수밖에 없다. 우리 아이가 이러다가 자신의 꽃을 피우지 못하고 꽃봉오리 상태로 있을까 봐. 이 불안은 아이에게도 전이되어, 학창 시절 남들보다 공부를 못하면 인생을 망칠까 봐 좌절하기도 한다. 회사원은 또 어떻고. 승진이 느리다고, 직장에서 인정을 못 받는다고 끊임없이 괴로워하며, 스트레스를 받는다. 저마다의 꽃이 피는 시기가 다를 터인데, 우리는 쉽게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왁싱샵 원장님을 보며 late bloomer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나를 포함해 하루의 70%를 넘는 시간을 보내는 직장에서 만난 사람들은, 좀비같이 회사에 관성적으로 매일 출퇴근을 하고, 월급을 받고, 또 퇴사하고 싶다 노래를 부른다. 자신의 일을 하는 그와 같이, 회사를 즐거운 마음으로 다니는 동료를 만나기는 힘들다. 아니, 동료까지 갈 것도 없이 내가 그렇다. 특히나 요즘은 긍정이라고는 하나도 없이 입에 욕을 달고 회사를 다니고 있다.
잘은 모르겠지만 왁싱샵 원장님은, 남들의 조언보다는 자신의 내면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고, 행동을 시작해서 그 자리까지 간 것 같다. 그가 불안하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내가 기꺼이 하고 싶은 일이니 계속 노력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거겠지. 남들이 뭐라하던 40살이 넘어서, 자신만의 길을 찾고 묵묵히 나아가고 있는거다. 여태까지 살아온 시간보다, 앞으로의 인생이 소중하기 때문에.
그를 보면서, 남들이 정해진 성공 방정식의 인생을 살던 나도, 새로운 나만의 길을 찾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기는 했지만, 그 일로 꽃을 피우지 못할까 봐 두려워하는 마음은 살짝 내려놓고, 나만의 속도로 나만의 꽃을 피워야겠다 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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