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생에서 어엿한 사회인으로
대학원 졸업은 눈앞인데, 나는 캄캄한 터널 안에 갇힌 기분이었다.
운 좋게 졸업 논문이 통과가 된다 하더라도, 그 이후에 어떤 직업을 갖고 살 수 있을까, 박사를 위해 실험실 박제가 된 선배들처럼 나도 살아야 되나... 나는 공부도 못하고 실험 설계도 못하는데, 아니, 너무 끔찍해서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데....
그렇게 걱정만 늘어놓고 살던 중 A형 간염에 걸려 일주일간 병원 신세를 졌다. 입원한 나를 위해 지방까지 찾아와 주신 교수님과 선배들에게 고마운 마음과 불편한 마음이 교차했다.
그건 아마 내가 그분들과는 다른 마음으로 대학원 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나는 대학원을 비하하거나 가지 말라는 목적으로 지금 이 글을 쓰는 게 아니다.
선배들과 동료들 대다수는 연구와 공부, 실험이 너무 재미있고 앞으로도 계속 이 연구를 해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대학원과 그 이후의 커리어 패스를 밟는다. 그분들은 자기 자신이 왜 대학원에 왔는지 스스로 너무 잘 알았고, 힘든 대학원 생활이지만 동기를 계속 찾아갔다.
하지만 나는... 아니었다...
간절함 가득 입학해도 학위를 따기 어려울 수 있는 곳이 대학원인데, 나는 회피형 동기로 대학원에 입학했으니 과연 내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었을까.
졸업을 앞둔 나에게 회사에 다니던 옆 실험실 대학원 선배가 찾아와, 같은 회사로의 면접 제안을 했고, 결국 그렇게 나는 3년간의 실험실 생활에서 탈출을 하게 되었다.
요즘 인기 웹툰 중 하나인 '대학원 탈출일지'를 보면, 다양한 군상의 대학원 빌런들과 대학원 생활의 지뢰밭길을 묘사해 놨는데, 단언컨대 나는 내 의식만 똑바로 박혀 있었다면 다른 건 전혀 문제 되지 않을, 아니 배울 것이 너무나 많았을 실험실에서 생활을 했다.
젊고 합리적이고 똑똑한 교수님과, 자율적인 연구 분위기, 다양한 연구 기회, 좋은 선배들과 가난한 학생들을 위한 먹을 것에 넉넉했던 인심까지...
꿈과 동기가 부족했던 나는, 그곳에서 헤매고 가라앉았다가 결국 사회로 탈출했다.
나의 첫 회사는 서울 소재의 바이오 관련 중소기업이었다. 난생처음 입사 면접을 보는데, 나보다 나이가 엄청 많아 보이는 아저씨들과 어떻게 일해야 하나 살짝 걱정은 되었지만, 대학원에 계속 남아 있는 건 더 싫었기 때문에 합격 통보 이후 바로 입사를 결정했다.
회사 생활에 대해 아무런 개념과 지식이 없었던 나는, 심지어 어떤 업무에 지원하는지도 잘 몰랐다.
결국 대학원 입학이랑 비슷하게, 대학원 생활이 싫은 나머지, 회피 동기로 회사에 입사하게 되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참 다행인 건, 내가 처음 맡았던 직무가 나에게 잘 맞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같이 입사한 동기들과도 끈끈한 유대감으로, 참 재미나게 같이 일하고 놀며 회사와 문화를 공유하고 참가할 수 있었다.
자존심이 바닥을 쳤던 대학원 생활과는 다르게, 회사에서는 칭찬도 받고 일의 재미도 찾아내면서 나를 서서히 회복해 나갔다.
사실 회사 자체는 그다지 좋은 환경이 아니었다.
사장님의 경영 방침 변화로 직원의 50% 이상이 퇴사하고, 그 인원들을 신입사원으로 뽑으며 대대적인 물갈이를 하는 중이었다.
나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이 한 달에도 몇 명씩 계속 새로 입사했다.
기존 직원들은 사장님과 경영진에 대한 불만이 최고조에 달해 갓 입사한 신입사원에게조차 그 불만을 표현하거나 혹은 그대로, 단체로 퇴사를 해버리기도 했다.
순진하고 아무것도 몰랐던 나는, 그저 동료들과 어울리는 것 자체가 좋았고, 거래처에 나가서 시장조사나 영업을 하는 것조차도 재미있기만 했다.
나를 이 회사에 소개해준 선배는 3개월 만에 퇴사, 새로 오신 팀장님은 2개월 만에 퇴사, 내 옆의 동료는 부서 이동 등 입사 1년도 안 된 시점에서 많은 사람들의 변화가 있었지만, 업에 대한 본질은 나와 잘 맞았던 것 같다.
혼자서 연구를 하고 증명하는 게 아니라, 동료와 함께 우리 회사 제품을 어떻게 더 고객에게 어필할 수 있을까를 논의하면서 실행 방안을 같이 마련할 수 있어서 좋았다.
나는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계획과 실행을 만들어나가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걸 글을 쓰는 지금 새삼스레 다시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