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들의 코칭 대화
갑자기 매니저 워크샵을 한다고 참석하란다.
왜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대상자라고 하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겨 회의실로 향했다. 참석하는 팀장들은 다들 비슷한 마음이었을 거다.
'어휴, 바빠 죽겠는데 무슨 5시간씩이나 워크샵을해~~~~"
언젠가 영어로 쏼라쏼라 안내 메일이 왔던 것 같긴 한데,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주제가 뭔지도 모른 채 일단 자리에 앉아 준비된 도시락을 먹었다. 역시나 한국인은 밥심이다. 잘 튀겨진 바삭한 닭강정과 속재료가 골고루 들어간 김밥을 먹으니 기분이 풀린다.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워크샵에 끌려와 잔뜩 짜증 났던 마음이, 살짝 녹아내린다. 이제야 강사님의 말소리가 조금 들린다.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귀도 닫고 마음도 닫아 놨었는데 말이다.
이번 워크샵 주제는 '책임감 코칭'이라고 한다.
무슨 책임감을 코칭까지 하면서 팀원들한테 가르쳐야 되는가 싶은 생각이 든다. 책임은 조직 구성원으로서 누구나 당연히 있는 기본 역량 아닌가? 다들 나와 비슷한 마음이었는지, 편하게 점심을 먹는 동안 질문과 논의가 이어졌다.
"이거 도대체 왜 하는 거예요?"
강사님은 이런 질문과 반응이 처음이 아니었는지, 미소를 지으며 친절하게 답을 하셨다.
"팀장님들이 팀원들에게 책임감을 가르치거나 강요하는 것이 아닌, 자발적 책임을 느끼고 그에 따른 행동을 스스로 하게 만드는 것이 이번 과정의 목표입니다."
그 말을 듣자마자 한 팀장이 다시 질문했다. 자신의 팀원 중 한 명은 책임감도 없을 뿐 아니라, 성과 달성도 못하고 개선 의지도 없는데 이런 경우 어떻게 하냐고 물었다. 도시락도 거의 다 먹었겠다, 강사님은 지금부터 워크샵을 시작하며 찬찬히 답을 드리겠다고 답했다.
5시간 동안의 워크샵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책임감은 약속, 즉 합의된 기대치와 결과(예-영업 목표)에 대해 책임을 지게 하는 능력을 의미함
적극적 책임감-목표를 달성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고,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는 경우 이에 대한 팀원의 개발이 필요함
개발 수준은 목표나 업무별로 다를 수 있으며, 또한 업무 역량과 의지의 조합임
팀장들은 팀원들의 수준에 맞게 리더십 스타일을 조정해야 함
만약 신입사원과 같이 업무 역량은 낮으나 의욕이 높은 경우에는, 분명한 '지시'가 필요
반대로 역량과 의욕이 높은 경우에는, 알아서 잘할 수 있도록 믿고 맡기는 것이 필요
원하는 결과를 서로 명확히 하고, 이에 따른 보상 및 결과 제시를 하는 것이 책임감 개발의 첫걸음
이후 팀원과의 지속적인 미팅을 통해 진행상황을 파악하고, 스스로 해결 방법을 찾게 하거나 그 과정에서 도움이 필요한 것들을 파악해야 함
강의를 듣다 보니, 내용 하나하나 모두 수긍이 돼서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그러는 한편 의심도 들기 시작했다. 과연 이게 현장에서 실제로 작동할지. 매니지먼트가 힘들었던 팀원 얼굴도 떠올랐고, 그의 역량이나 책임감 개발을 한답시고 뻘짓거리만 하다 실패했던 과거가 떠올라 괴로웠다.
이론 강의가 끝나자 강사님은 '백 마디 말보다 한 번의 행동'이 낫다며, 삼삼오오 짝을 지어 실습을 하라고 했다. 인쇄된 강의안에는 시나리오가 있었고, 옆자리에 앉은 팀장님들과 조를 이뤄 역할극을 하면 되었다. 주어진 이야기는 이렇다.
노련한 영업사원 Sam은 실적도 뛰어나고 고객과 상사들로부터 평판이 좋다. 그러나 그는 종종 CRM 시스템에서 72시간 내 처리해야 할 마케팅 리드를 무시한다. 마케팅 리드 처리도 평가 항목이기 때문에, 아무리 영업 목표를 달성했더라도, 마케팅 리드 처리를 하지 않으면 저평가될 수 있다.
나는 Sam이 되고, 옆자리의 팀장은 Sam의 매니저가 되어 면담을 시작했다.
"Sam,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팀장님은 안부를 물었고, 나는 고객을 만나고 이번달 매출 목표를 채우느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고 대답했다. 그는 이어서 이번달은 얼마의 매출로 마감할 수 있을 것 같냐고 물었는데, Sam은 이때부터 약간 빈정이 상하기 시작했다(결코 내가 아니라 Sam, 그가 그런 것이다). 불러다 놓고 결국 매출로 쪼으려고(?) 그러는 건가 싶어서였다. 감정을 억누르며 대략 80%는 채울 수 있을 것 같은데, 시장상황이 워낙 힘들어 나머지 20%를 채우기 위해 지금도 열심히 발품을 팔고 있다고 대답했다.
팀장님은 Sam 당신은 너무 잘하고 있지만, 딱 한 가지, 마케팅 리드 처리를 달성하지 못해 이번에 나를 부른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를 어떻게 개선할지 얘기해 보라고 했다.
사실 듣는 Sam의 입장에서 조금 억울했다. 잘한다고 부른 게 아니라 못한다고 질책하는 것 같아서다. 아까부터 기분도 상했겠다, 나는 '삐딱한 Sam'이 돼 보기로 결심했다.
"네, 그런데 팀장님, 저도 힘들어요. 매출을 하기 위해서 이렇게 뛰어다니느냐 정신없는데, 언제 그것까지 하나요? 그게 꼭 필요한 건가요?"
갑자기 팀장님이 뒷목을 잡는다.
관찰자인 다른 팀장은 그를 보며 웃다가, 농담을 건넸다.
"앗, 팀장님,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온 거 아니에요?"
사실 이 팀장님이 뒷목을 잡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내가 연기한 Sam은, 그의 문제 팀원 중 하나와 비슷한 캐릭터이다. 아니, 내가 Sam의 캐릭터를 일부러 그와 비슷하게 흉내 냈다. 그가 팀원과의 실전 면담에서 어떻게 하는지 보고 싶은 호기심이 있기도 했고, 'No'를 외치는 팀원들과는 어떻게 대화해야 할지 나 스스로도 고민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의 팀원은 이 시나리오처럼 실적도 좋고 평판도 좋았지만, 유독 팀장 말을 잘 듣지 않았다. 팀장의 의견에 딴지를 걸고, 왜 해야 되는지 잘 모르겠다고 반박했다.
다시 역할극으로 돌아와, 팀장은 그의 팀원과 비슷한 Sam의 도발을 간신히 참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아니, 아까도 얘기했잖아요. 다른 건 다 잘한다고. 그런데 마케팅 리드 처리도 평가 항목에 들어가기 때문에, 이 부분도 신경 써야 본인 평가를 잘 받을 수 있는 거예요."
나는 건성으로 알겠다고 대답하며, 한 번 더 도발을 이어나갔다.
"팀장님은 매출이 더 중요하세요, 아니면 마케팅 리드 처리가 더 중요하세요?"
팀장님은 화가 솟구쳤는지, 더 이상 못 참겠다고 멱살을 잡는 흉내를 내며 '따라와, 이 자식아'라고 외친다. 물론 웃기려고 하는 것이고, 연기일 뿐이었다. 그러나 관찰자로 참여했던 다른 팀장까지, 우리 셋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이 상황에 깊게 몰입해 깔깔대고 있었다. 그가 예전에 팀원과 했던 실제의 경험이 떠오르게 하는 장면이었기 때문이다. 눈은 웃고 있지만, 속은 웃을 수 없는 슬픈 현실이었달까.
이 대화는 과연 시나리오일 뿐인가, 아니면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대화인가, 헷갈리기 시작했다. 아니, 사실 우리 팀장들은 이미 현실에서 이보다 더한 상황들을 직면하고, 대화를 힘들어하고 있었다. 이런 팀원을 만나면 어떻게 해야 될지 잘 모르겠다고 솔직히 털어놨다.
강사님은 이런 우리를 지켜보다가 말씀하셨다.
"팀원과 대화하실 때는, 먼저 그의 말을 충분히 경청하고, 그의 감정을 이해해주셔야 합니다."
사실 나는 오늘 코칭 대화법보다는, 나와 역할극을 했던 팀장 입장을 글로 쓰고 싶었다. 그의 심정은 마치 '나는 군대에서 엄청 맞으면서 갈굼 당했는데, 내 후임한테는 폭력이 아니라, 험한 말조차도 쓰지 말라고 하네?'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비단 군대뿐만이었으랴. 나와 비슷한 연배의 그는, 꼰대 상사에게 '네, 예, 알겠습니다'로 대답하며 복종하며 회사 생활을 시작했을 것이다. 그런 그가, 자신의 말에 좀처럼 오케이를 하지 않는 팀원을 만났을 때 부딪힌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을 것이다. 우리는 젊은 세대의 팀원과 어떻게 대화해야 하는지 배운 적이 없다. 그러니 한편으로는 억울한 마음도 올라온다.
비록 나는 혼나면서 일을 배웠을지라도, 팀원에게 똑같이 하면 안 된다. 그들은 소중한 인격체이고, 각자의 생각과 책임감, 의지가 있는 개인이다. 지시의 언어로 하는 행동 교화는 잠시 뿐이고, 경청과 공감은 장기적으로는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 나를 잠시 내려놓고 그들과 대화를 해야 한다. 그들이 내 마음에 안 드는 행동을 하거나 말을 할 때마다 속에서는 열불이 터지겠지만, 인격 수양을 한다고 생각하자. 한 번에 한 걸음씩 조금씩 노력하다 보면, 리더십이라는 긴 과정의 시작점에서 조금은 앞으로 가지 않을까 싶다.
그나저나, 늘 느끼는 거지만, 팀장은 '극한직업'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