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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풀림 Dec 09. 2024

멋진 일을 하고 싶으신가요?

어쩌면 그건 '멋져 보이는' 일일지도 몰라요

'나도 멋진 일을 해보고 싶다'

이런 생각을 가슴에 품어 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멋진 일의 정의는 저마다 다르겠지만,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을 떠올리시는 분들은 많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예를 들어, 소설을 좋아하는 평범한 회사원 A의 경우 그가 생각하는 멋진 일이란,  회사 일이 아닌 '소설을 쓰는 것'일 수 있다. 회사일은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일로 인식되고, 아직 가보지 않은 소설가의 길은 동경의 대상이 되어 버린다. 회사원이나 소설가 모두 하루종일 책상에 앉아 있는 직업이지만, 왠지 소설가의 시간은 예술적 밀도로 가득 차 있을 것 같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대학 졸업반인 B는 SNS에서 자주 접한 대기업 C에 가고 싶다. C 기업에 입사만 하면 내가 꿈꾸던 멋진 직장 생활이 펼쳐질 것 같다. 아메리카노 한 잔을 사들고, C 사원증을 목에 걸고 종종걸음으로 출근하는 상상을 한다. 회사에서는 중요한 의사결정 회의에 참석하고, 클라이언트 앞에서 척척 발표도 해낸다. 어떤가, 생각만 해도 멋짐이 뿜어 나오지 않는가.


누구나 꿈꾸던 멋진 일 뒤에는, 반드시 세트처럼 귀찮고 어려운 일이 공존한다.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종종 간과되기 일쑤다. 얼마 전 커피챗을 하는데, 상대방이 나에게 이런 말을 건넸다.

"제가 늘 해보고 싶은 일을 실제로 하시는 분을 만났어요. 너무 부러워요."

내가 보기에는 자신의 적성에 맞는 일을 잘 해내고 있는 그녀가, 이런 말을 한다는 게 놀라웠다. 내가 하고 있는 업무는 마케팅인데, 누군가에게는 동경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뿐만 아니라 팀원 중 한 명도, 자신이 졸업한 대학생들에게 취업 관련 강의를 갈 때마다 부러움 섞인 시선을 받는다고 했다. 그런 얘기를 나눌 때마다, 우리는 푸하핫 웃음을 터뜨리곤 했다. 현재 그 일을 하는 나는, 팀원은, 일에서 멋져 보임을 느끼는 순간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 일로 가는 과정이 너무 고되, 계속 이렇게 사는 게 맞나라는 고민을 더 많이 하는 사람이기에.


내가 가진 직업은, 제삼자의 시선으로 보기에 썩 그럴듯하다.

외국계 기업, 한참 뜨는 바이오 분야, 문과생들이 한 번쯤 꿈꾼다는 마케팅까지 다 어우러져 더 그렇게 보일지도 모른다. 러나 환상을 가지고 우리 팀에 왔던 팀원들은, 불과 한두 달 사이에 실상을 알고 괴로워했던 적이 많다. 그들은 하고 싶은 일 위주로 마케팅을 바라봤던 것이고, 현실에서는 그 하나의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한 수많은 해야 할 일들이 있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들 사이의 괴리랄까.

지난 10월에는 마케팅팀 주관으로 100명이 넘는 고객을 초청해서 콘퍼런스를 진행했다. 신입사원들이 이 업무에 매력을 느끼는 지점이기도 하다. 화려한 무대와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 고객들의 반응과 찬사가 바로바로 보이기에. 내가 한 일이 여러 사람들에게 인정과 평가로 돌아오는 지점이다. 하지만 그 하루를 위해, 우리 팀은 무려 세 달 동안 끊임없이 이것저것 준비해야 했다. 그 준비란 사실 하기 싫은 일들의 연속이다. 우선 글로벌팀과 어젠다를 조율하는데 하세월이 걸렸다. 오늘 메일을 보내면, 3일쯤 후에 답이 오고, 그다음에는 또 감감무소식. 어렵게 발표 주제를 확정하면, 가족사 때문에 갑자기 못 오겠다는 연락이 온다.  어렵게 초청장을 만들어 놨는데, 연자를 바꿀 수도 없고 난감하기 짝이 없다. 게다가 하루 동안의 멋진 무대를 만들기 위해서는 에이전시와 끊임없이 소통해야 한다. 사소한 디자인 하나라도 틀어지면 서로 맘 상하기 일쑤다. 의뢰하는 우리 팀도, 의뢰를 이행하는 에이전시도 예민해지고 가끔 감정이 튀어나올 때도 있다. 힘겹게 잡은 콘퍼런스에 고객이 안 올까 봐 조마조마한 경우는 또 어떻고. 매일, 아니, 매 시간마다 참여 현황을 확인하고 대책회의를 하고, 여러 마케팅 채널을 들쑤셔보는 행위도 필수다.


콘퍼런스 2주 전 입사한 신입사원에게 행사가 끝난 후 소감을 물어본 적이 있다.

"우와, 이렇게 큰 행사는 처음이에요. 이런 업무를 우리 팀이 다 해야 하는 줄 몰랐어요."

사실 그의 입사일을 조정할 때, 고민이 많았다. 행사 준비에 너무 빨리 투입되면, 일의 양에 질려 퇴사할까 봐 솔직히 두려웠다. 행사가 적당히 완성될 무렵에 입사를 시키고, 행사 현장에서 이름표를 나눠주고 고객을 대응하는 일 정도밖에 시키지 않았다. 하루의 멋진 행사를 위해, 하기 싫은 수백 가지의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조금 더 늦게 알았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화려한 무대 뒤에서, 행사가 조금이라도 틀어져 망해버릴까 조마조마하는 스태프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물 위에 떠 있는 우아한 백조 그 자체를 보기를 바랐지, 물 밑에서 열심히 발로 노를 저어가며 힘겹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달까.


멋져 보이는 일은 실상, 수많은 보이지 않는 '잡일'의 연속이다.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자잘하지만,  끊임없이 몰려오는, 누군가는 처리하지 않으면 멋진 일이 완성되지 않는, 그런 일 말이다. 반드시 이 과정을 거쳐야만 하나의 멋진 아니, 멋져 보이는 일이 탄생하는 것이다. 그 과정은 겪어보지 않으면 쉽게 알 수 없다. 누군가에게는 환상인 일이, 누군가에게는 현실 그 자체이다. 만약 앞서 예를 들었던 회사원 A가 회사를 그만두고 동경하던 소설가가 된다면 어떨까. 머릿속에 떠오르는 글감을 한두 시간 끄적이다가, 머리를 쥐어 싸매고 좌절할 수도 있겠지. 한 편의 단편소설을 쓰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경험과 생각을 해야 하는지 상상도 못 했겠지. 만약 대학 졸업반 B가 대기업에 입사했다면? 처음엔 설레고 신나겠지만, 그 마음이 채 반년이 가지 않을 수도 있다. 젊꼰(젊은 꼰대) 이 과장은 끊임없이 잔소리를 해대고, 멋지게만 보였던 아이디어 회의가, 실상은 마른걸레를 쥐어짜는 것보다 심하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말이다. 


하기 싫은 수많은 잡일들을 겪어 내고, 내가 원하는 멋진 일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해 본다.

우선 나의 경우에는 내가 왜 이 잡일들을 하고 있는지 계속 떠올려 본다. 결국 해야 하는 여러 가지 잡일들은, 하고 싶은 일을 위한 단계이자 과정이다. 그 과정이 결코 쉽지 않다. 하다가 열받고, 화나고, 극단적이 생각까지 가면 그냥 때려치우고 싶어 진다. 이런 감정이 들 때는, 내가 원하던 멋진 일을 이루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하기 싫은 일을 지금 하는 이유는, 내가 꿈꾸던 일들을 하기 위함이다. 게임에서 마지막 퀘스트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앞의 수많은 미션을 클리어해야 하듯이, 나는 지금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는 중인 거다. 어떤 사람이건, 앞의 미션을 깨지 않고, 마지막에 도달할 수는 없다. 그 사실만 잊지 않으면 된다. 누군가는 뽀록으로(?) 손쉽게 원하는 것을 가진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도 말하지 못한 그만의 노력이 있을 것이다. 


사실 17년간 해온 마케팅과 손절하고, 꿈꾸던 코치가 되기 위한 실습을 계속하고 있는데, 정말 쉽지 않다. 예전에 이런 꿈을 코치님들께 얘기했을 때마다, 왜 자꾸 나를 뜯어말리셨는지 이제는 알 것 같다. 나는 꿈으로 코칭을 바라봤고, 현업 코치님들은 현실로 체감하고 있기에 그 관점이 달랐을 것이다. 그래도 진정으로 원하는 길이기에, 쉽게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코칭의 세계에서도 '잡일'이란 존재할 것이고, 그 과정을 조금씩 해나가다 보면 지금보다는 나아지겠지 뭐. 중요한 건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 방향성을 잃지 않는 것 아닐까. 그리고 꺾이지 않는 마음과 함께 말이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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