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다이어리 쓰기로 하루를 시작해 보세요

글씨를 못 써도 괜찮아요

by 수풀림

이 글을 읽고 계신 직장인 분들께 질문을 드려 봅니다.

여러분들은 아침에 회사로 출근하자마자 가장 먼저 어떤 것부터 하시나요?

일단 가방부터 내려놓고, 주섬주섬 짐을 풀고, 아마도 옆 자리 동료들과 인사를 하시겠죠? 맨 정신으로 하루를 버티기 힘드니, 오자마자 잠이 확 달아나는 아아를 들이켤 테고요. 간신히 책상에 앉아, 어제 뭐 급한 거 없었나~~ 하며 쌓여 있는 이메일을 뒤적거립니다. 어랏, 이메일 몇 개 확인했더니 30분이 훌쩍 갔네요. 정신 차리고 일 좀 하려고 하니, 팀장님이 긴급 호출을 하시네요. 매번 긴급이라고 하는데, 도대체 뭐가 긴급인지는 모르겠지만요. 내 황금 같은 오전은 이렇듯 커피, 이메일, 회의의 반복으로, 눈떠보면 사라지고 없더라고요.


언제였는지 기억은 가물가물하지만, 어제 같은 오늘을 또 회사에서 보내며 갑자기 허무함이 찾아왔어요. 해뜨기 전에 출근해서 일하다 보면, 이미 해가 진 저녁 시간이 되더라고요. 뭘 했는지 기억은 하나도 안 나는데, 하루는 이미 지나가 있었어요. 정해진 과제를 완수했을 때 오는 뿌듯함은 그때뿐이었고, 나머지 시간에는 공허한 감정이 지배했죠. 이렇게 살다가 우연한 기회로, 다이어리라는 세계를 알게 되었어요. 물론 그전에도 경험은 있었죠. 다이어리는 누구나 한 번씩은 써보잖아요. 한 번 쓰다가 책상 너머로 처박아놔서 그렇지. 그런데 이번에 알게 된 다이어리는 너무 다른 거예요. 글쎄, 내 인생을 변화시켜 준다잖아요!!!

프랭클린 플래너는 그렇게 저에게 찾아왔어요. 아마 직장인 분들은 한 번쯤은 들어보셨거나, 지금도 잘 쓰고 계신 분들이 있을 것 같아요. 벤자민 프랭클린이라는 사람의 기록 철학이 녹여진, 다이어리 노노, 플래너입니다. 플래너라는 이름을 듣고 멋지다 생각했어요. 인생을 내가 원하는 대로 계획할 수 있구나라는 설렘도 들었고요. 게다가 이 플래너는 다양한 사이즈가 있는데, 저는 그중에서 CEO라는 네이밍에 끌려, 손바닥에 쏙 들어가는 버전을 사용하게 되었어요. 남들에게 자랑하기 딱 좋은, 직장인의 잇템이었죠.


그거 아세요? 플래너의 가격은 대부분 사악한 거. 10년도 훨씬 넘은 시절 처음 샀던 프랭클린 플래너의 가격은, 속지만 4만 원, 명품 브랜드와 콜라보를 했던 커버는 10만 원을 넘기기도 했죠. 하지만, 직장인의 멋이란 무엇입니까. 내가 피땀 흘려 번 돈으로 뭐든지 살 수 있다 믿는 패기!(지금은 없어졌지만요 ㅎㅎ) 저는 당시 회사를 다니며 느꼈던 공허함을, 플래너가 바꿔줄 수 있을 거라 믿었어요. 우연히 친한 선배 집에 갔다가 발견한, 프랭클린 플래너 작성법에 대한 책을 보고 더욱 확신했죠. 나를 바꾸기 위해, 아침 출근 시간을 30분 더 당겼어요. 그 시간에 플래너를 쓰고 싶었거든요. 조용한 사무실에 앉아, 종이를 바라봤어요. 오늘 해야 할 것들을 쓰고, 우선순위를 A, B, C로 표시했죠. 속지는 매일 두 장이 있었는데, 한 면은 To-Do List, 한 면은 메모지였어요. 그리고 맨 위에는 작은 글씨로 오늘의 명언이 적혀 있었어요. 마치 포춘쿠키처럼, 그 명언들은 나를 감동시키기도 하고 정신 차리게도 했죠. 아침에 오자마자 플래너에 계획을 적으면, 오늘의 할 일이 머릿속에 그려지면서 다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가득 찼죠.


그렇게 플래너를 10년을 썼어요. 물론 매일 열심히 쓰지는 않았지만요. 백수 시절에는 그 비싼 속지를 사놓고, 달랑 두 페이지를 썼을 때도 있고요. 그래도 저는 플래너가 있으면 참 든든하더라고요. 시간을 엄청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고, 자기 효능감도 올라갔어요. 친한 친구들이 생일선물 뭐 받고 싶냐 물어봤을 때, 커스텀으로 만든 프랭클린 플래너 가죽 커버를 갖고 싶다 답한 적도 있어요. 플래너는 어디를 가나 저와 함께했죠. 손때가 타서 멋지게 색이 변한 커버를 보면 뿌듯한 감정이 들었어요.

이쯤 되면 누군가는 궁금해하실 것 같네요. 그래서, 직장인의 허무는, 공허함은, 플래너로 과연 해결이 되었는지 말이에요. 당시에는 그렇다 믿었지만, 지금 쓰는 다이어리를 만나고는, 그게 아니라는 걸 느끼게 되었네요. 내가 플래너를 그동안 잘못 써왔다는 것도요. 최근 '김미경의 딥마인드'라는 책을 출간하시고 관련된 강의를 하시는 김미경 님에 따르면, 그동안 저는 '노동자 계획'을 써왔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회사에서 할 일을 빼곡히 적고 완료 표시를 하며 뿌듯함을 느끼는 것이, 바로 노동자 마인 드래요. 소름 끼치더라고요. 원래 다이어리는 그런 목적으로 쓰는 거 아니냐 반발심이 들었지만, 다이어리를 잘 쓰시는 분들을 보면 꼭 그렇지는 않더라고요.


그래서 지금은 어떤 걸 쓰냐고요? 빨리 알려 달라고요?

저의 추천이 다른 분들께는 불편할 수도 있어 조심스럽지만, 사실 제가 써보고 굉장히 좋아서 꼭 소개해 드리고 싶은 다이어리가 있어요. 2022년 회사생활 바닥을 쳤을 때 (물론 자주 칩니다만 ㅎㅎ), 회사에서 코칭을 받은 적이 있어요. 코치님을 통해 저는 많이 변화돼서 지금 이렇게 글까지 쓰고 있는데요, 코칭이 아니었다면 진작 퇴사하고 방에 숨어서 살았을지도 몰라요. 아무튼, 그 코치님께서 갑자기 선물이라며 무언가를 보내셨어요. 회사 사람도 아니고 코칭 5회의 인연뿐인데 이렇게 받아도 되나 부담스러웠죠. 코치님은 진심을 전하셨는데, '이 다이어리는 수풀림님께 꼭 필요한 인생 도구가 될 거라 생각합니다'라는 메시지였어요.

다이어리의 이름은 하나하루 다이어리예요. 작년부터 김미경 님이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인생 다이어리로 소개하신 후, 폭발적인 인기를 끌어 품절된 적도 있어요. 저는 그전부터 사용해 오던, 찐 유저라고 우기고 싶어 지는데요. 하하하. 써보니 왜 코치님이 저한테 소개해 주셨는지 알게 되었어요. 잠시 안내 말씀을 드리자면, 처음 이 다이어리를 열어보시면 엄청 당황할 수도 있어요. 기존의 다이어리와 구성이 다르거든요. 주간 플래너, 월간 플래너, 로그북(메모장)이 있고, 이 세 개를 도대체 어떻게 쓰라는 건지 저는 참 모르겠더라고요.


원래는 오늘 하나하루 다이어리를 낱낱이 분석하고, 어떻게 쓰시면 좋을지 알려드리고 싶었는데. 서론이 너무 길어서 다 알려드릴 시간이 없네요. 우리 같은 직장인들은, 또 일하러 갈 시간이잖아요. 아쉽지만 다이어리 소개는 다음에 자세히 드릴게요. 대신 참고하실 수 있는 유튜브 동영상 링크를 공유해 드려요. 오리지널 하나하루 버전은 조금 예전에 찍은 거라, 좀 더 대중적인 아래의 동영상이 더 보기 편하실 거예요.

https://www.youtube.com/watch?v=rZbqygaSEC8


이 다이어리의 좋은 점을 압축해서 말씀드리자면, To-Do List를 적는 노동자 다이어리가 아니라는 점이에요. 핵심은, 나를 깊게 들여다볼 수 있는 도구랄까요. 특별할 거 없어 보이는 하얀 종이지만, 써보시면 차이를 느낄 거예요. 다이어리에 엄청 진심이신 분이 만든 거라 달라요. 저는 특히 나에게 초점을 맞춰 생각할 수 있는 다이어리의 구성과, 종이의 질감이 가장 좋았어요. 이걸 만드신 분은 목사님이신데, 종교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시다가 만드신 것 같더라고요. 실은 저는 무교라, 처음에는 반감이 들기도 했어요. 하지만 전혀 종교적인 색채는 없으니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아침에 출근하면 저는 다이어리를 펼쳐 듭니다. 그리고 가장 먼저 적는 것은 '오늘의 중요한 것 3가지'에요. 중요한 일도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긴급하고 중요한 일과, 긴급하지는 않지만 중요한 일이에요. 이 다이어리는 바로 '긴급하지는 않지만 중요한 일'에 초점을 맞춰 나를 돌아볼 수 있게 만들어줘요. 예를 들어 브런치 글쓰기는 저에게 이 영역의 일이죠. 사실 써도 그만 안 써도 그만. 글 쓴다고 누가 돈 주는 것도 아니니깐요. 그래도 다들 글이 좋아서, 인생에서 평생 가져가고 싶어서 쓰시는 거잖아요? 다이어리에 이걸 꾸준히 기록하면서, 계속 나에게 상기를 시켜줘요. 내 인생에서 중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매일 쓰는 일할 목록이 아니라, 삶의 우선순위를 말이에요.


저도 프로 게으름뱅이라, 다이어리를 매일 아침마다 쓰지는 못해요. 때로는 급한 일부터 하느냐 뒷전으로 미뤄놓죠. 하지만 아침을 시작할 때 딱 10분만 투자하면, 오늘이 조금 더 달라진다는 건 잘 알게 되었어요. 직접 써보지 않으면 아마 잘 모르시겠죠. 오늘은 제가 쓰는 다이어리를 소개해 드렸지만, 꼭 이걸로 하지는 않으셔도 돼요. 손글씨에 자신 없으시거나, 나는 디지털 툴이 더 맞다 하시는 분들은,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가시면 되죠.

강조드리고 싶은 건 한 가지예요. '아침에 나를 성찰하기'. 내 인생에서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꼭 적어보세요. 이게 너무 거창하다 싶으면, 일 년 뒤 나를 돌아봤을 때, 뭘 하면 뿌듯할까 생각해 보셔도 되고요. 어차피 회사가 망하던 내가 잘리던, 우리는 평생 직장인으로 살아가기는 힘들잖아요. 그러니 제2의 인생을 위해서라도, 회사에서 할 일 말고, 오롯한 나로서 하고 싶은 것 하나는 지금 찾아보면 좋을 것 같아요. 작은 것부터 시작하세요. 옆에서 주식으로 대박 난 이 과장이 부러워서, '주식투자' 이런 거 적으시면 절대 안돼요. 아침 10분만이라도 내 마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찾으신다면 공허함 대신 만족감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을 거라 제가 감히 말씀드려 봅니다.


#몹글 #몹시쓸모있는글쓰기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