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기 위한 글을 쓸 것인지, 읽히기 위한 글을 쓸 것인지에 대해 고민한다. '누군가 읽어주지 않아도 좋으니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쓰겠다' 다짐했다가도 어느새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을까? 나만 아는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은 건 아닌가' 걱정이다.
다년간의 방송작가 생활을 통해 얻은 것 중 하나는, 글이란 누구나 알아볼 수 있도록 쉽게 써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쉽게 쓴다는 게 말이 쉽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건 너만 알아듣는 말이야."
갓 입봉 했을 당시 선배 작가로부터 혼이 나며 들은 대사다. 뒤이어 이런 말들도 따라왔다.
"너는 네가 생각해서 쓴 거니까 무슨 말인지 다 알겠지. 게다가 멋있게 잘 썼다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대중은 네 대본을 텍스트로 읽을 수 없어. 내레이터 목소리로 듣고 지나가는 말을 이렇게 쓰면 누가 이해해."
나 나름대로는 회심의 문장이었는데, 알고 보니 실패한 문장이었다. 방송대본은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쉬운 말로 재미있게 써야 한다. 어렵고 재미없다면 바로 채널이 돌아갈 테니 말이다. 그렇기에 실제 팩트가 어렵게 설명이 돼있더라도 그것을 최대한 쉽게 풀어써야 한다.
생각해보면 대학생 시절 소설 수업에서도 교수님으로부터 비슷한 말을 들었다.
"문장 길게 쓰지 마라. 어려운 단어 쓰지 마라. 네가 진짜로 다 이해해서 설명할 수 있는 말만 써라."
구구절절 맞지만 의외로 지키기 힘든 말이다. 물론 모든 글을 쉽게 써야만 하는 건 아니다. 대체할 수 없어 그 단어를 써야 하는 경우도 있고 좀 어렵더라도 필요한 내용일 수 있다. 하지만 어려운 단어가 섞인 긴 글은 아무리 좋은 글이라 해도 읽다 보면 피곤해진다.
작가라면 누구나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문장, 이미 쓰인 적이 없는 글을 쓰고 싶어 한다. 때문에 남들이 쓰 지 않은 단어와 쓴 적 없는 표현들을 계속해서 발굴하고 연구한다. 우리는 그것을 창작의 고통이라 부른다. 창작의 고통을 견디며 새롭고 신선한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 그중에 간혹 큰 오류를 범하는 사람들이 있다. '쉬운 글'을 무시하는 오류. 하지만 우리는 알아야 한다. 남들이 잘 쓰지 않는 단어엔 선택받지 못한 응당의 이유가 있다는 것을.
사실 우리는 어렵고 생소한 단어로 묶인 문장을 발견했을 때보다, 쉬운 단어들을 새롭게 엮은 문장에 감탄한다. '어떻게 이 단어들로 이런 문장을 썼지?' 하고 말이다. 누구나 아는 쉬운 단어 하나를 어떻게 요리했는가에 따라 적힌 문장의 맛이 달라지고, 새로운 메뉴가 탄생한다. 때때로 우리의 가슴속에 콕 박히는 말들 역시, 사전을 뒤적여야만 그 뜻을 알 수 있는 말이 아니라 읽자마자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말일 확률이 크다.
나는 진부한 것들을 사랑한다. 뻔하고 진부하다는 건 그만큼 보편적이고 당연하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니까. 흔히 쓰이는 단어, 자주 쓰이는 표현들, 특별하지 않지만 익히 들어 이미 알고 있는 말들. 우리는 그 쉬운 글이 얼마나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은 단어와 표현들로 쓰인 것인지 깨달을 필요가 있다.
이제 내가 적은 문장이 생소한 것인지 신선한 것인지 고민한다. 언젠가 익숙한 단어들로 만든 멋진 문장 한 줄을 내놓고 싶다. 진부해도 좋으니 부디 쉽게 읽히기를. 쉬운 글은 힘이 세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