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에게 아이를 맡기면 일어나는 일'이라는 말이 있다. 특별할 것 없는 문장이지만 전 세계인의 공감을 얻어 하나의 밈이 됐다. 이 밈 속의 아빠들은 아이를 거칠게 다루고, 장난감처럼 대하기도 하고, 지저분한 상태로 두기도 한다. 물론 개그 코드가 더해지다 보니 현실보다 과하게 설정됐지만 어느 정도 공감해 고개를 끄덕거리는 사람이 많기에 밈이 됐을 것이다.
그런데 발상을 전환시켜보면 이런 생각에 다다른다. 사실 이 정제되지 않고 장난스러운 아빠들을 아이들이 맡아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 말이다. 또 한편으론, 아이들이라고 해서 꼭 아빠를 곱게 둔다고 볼 수만도 없다.
아이들에게 남편을 맡겼을 때 남편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아빠가 앉아있는 꼴을 못 보지"와 "잠시도 가만두질 않네"다. 그렇다. 아이들은 절대로 아빠를 가만두지 않는다. 타의에 의해 가만히 있을 수 없게 된 아빠. 그는 결국 갖가지 '안 하던 짓'을 하게 된다.
첫째, 미라클 모닝 챌린지에 참여당한다. 새벽에 일어나 기적의 하루를 여는 미라클 모닝 챌린지. 여기서 우리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아빠에겐 기적을 일으킬 생각도 여력도 없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아이들의 기상에 자비란 없다. 응가를 한 기저귀를 이불 위로 벗어던진 채 온 방을 돌아다니거나, 몰래 부엌에 들어가 서랍장이란 서랍장은 다 열어서 식기구들을 꺼낸다거나. 일어나지 않고 배길 수 없는 다양한 기상 미션을 제공하며 동도 트기 전에 아빠를 거실 소파에 앉혀놓으니 말이다.
둘째, 요리를 한다. 우리 남편은 요리에 일가견이 없는 사람이라 일 년에 단 한번, 아내의 생일에 끓이는 미역국이 할 줄 아는 음식의 전부인 사람이다. 그런 그가 갖은 재료를 배합해 '뭔가'를 만들어내는 데에 이르렀다. 지금껏 그가 선보인 메뉴들은 전부 아빠 요리의 대명사 '볶음밥'이었는데 분명 처음엔 "대충 배만 채우게 해 주면 되지"로 시작해놓곤 시간이 갈수록 진심을 다하기 시작했다.
남자의 승부욕은 이런 곳에서까지 발휘되는가 싶다. 그러나 아이들의 평가는 언제나 단호하다. 그래서일까? 요즘 남편은 달걀을 맛있게 삶는 법이라든가 고기를 맛있게 굽는 법과 같은 조리에 진심을 다하고 있다. 어찌 보면 긍정의 힘으로 요리조리 잘 만들어 나가고 있는 셈이다.
마지막으로, 운동을 한다. 헬스장에 나가거나 축구를 하는 게 아니다. 아이를 좀 더 스릴 넘치게 던질 수 있도록 팔 운동을 하고, 생동감 있는 비행기를 태워주기 위해 코어 운동을 하는 식이다.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엄마, 아빠의 힘에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아는 듯하다. 때문에 엄마에겐 요구하지 않는 것들을 아빠에겐 아주 당연하게 요구한다. 아이들의 이런 '스파르타식 놀이' 요구는 아빠들이 가진 희소가치에 기인하기도 한다.
사실 우리 아이들에게 아빠란 하루에 몇 시간 못 보는 사람이다. 잠들기 전까지 퇴근을 하지 않는 날도 많고, 아침에 일어나면 사라져 있을 때도 많다. 주말에도 아빠가 집에 있을지 없을지 모르기 때문에 아빠가 집에 있을 때, 말 그대로 바짝 당겨 놀아야 한다.
이런 여러 이유로 아이들에게 아빠를 맡기면 아빠는 부지런해진다. 아빠가 부지런해진 만큼 아이들은 행복하다. 물론 엄마와 있을 때보다는 좀 더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갖게 되지만 뭐 어떤가. 살다 보면 한 번쯤 기저귀를 거꾸로 입을 수도 있고, 뒤에서 잠가야 하는 단추를 앞에서 잠글 수도 있는 것이다. 오히려 그런 서투름이 예뻐 보이기도 한다.
남편은 손가락이 두껍고 손톱이 짧아 아이의 머리 고무줄과 마주할 때마다 예민해진다. 그래서 목욕하러 들어갈 때 아이의 묶인 머리를 풀어주는 일은 언제나 나의 몫이다. 그런 그가, 어느 날 딸의 머리를 묶어 놓았다. 빗으로 빗은 것 같긴 한데 방향도 좀 비뚤고, 한 올 한 올 삐져나온 잔 머리카락도 많았다. 그럼에도 그 모습이 참 예뻤다. 남편이 아이의 머리카락을 묶어 주었을 그 장면이 떠오른 덕분이었다.
아빠와 아이가 한 방향을 보고 나란히 앉아 있다. 아빠는 자기 손가락보다 작은 고무줄을 손가락에 끼운 채 고군분투하고, 아이는 아빠가 머리를 묶어주니 좋다는 둥, 엘사처럼 묶어달라는 둥 조잘거린다. 서툰 손길로 겨우 완성한 머리에 아빠는 뿌듯하고 아이는 거울을 보며 만족한다. 우리 아이의 성향 상 아빠에게 칭찬도 많이 해줬을 것이다.
남편이 그렇게 조금은 서툰 모습으로 계속 남아 있으면 좋겠다. 완벽하지 않은 채로, 조금은 허술한 채로. 그래서 내가 "역시 내가 없으면 집이 제대로 돌아가질 않는다니까!' 하며 잔소리할 수 있게. 그러면 남편은 "그러니까 어디 가지 말고 같이 있어!"라고 징징거릴 수 있게 말이다.
아이들은 클수록 엄마, 아빠의 서투름을 눈치채는지 하루가 다르게 최종 보스로 진화한다. 부디 남편과 내가 앞으로 펼쳐질 험난한 퀘스트들을 클리어할 수 있기를 바란다. 결국 육아는 팀플이니까. 내 옆을 지키는 파티원에게 누가 되지 않도록 엄마는 엄마의 역할을, 아빠는 아빠의 역할을 잘 수행해 나가야겠다. 정성이 갸륵하면 아이들도 우릴 좀 봐주지 않을까? 더불어 내일 아침은 제발 미라클 모닝이 아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