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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서로 Sep 02. 2021

안녕히 다녀오세요

  모퉁이를 돌자 수술실 앞이었다. 수술실의 커다란 철문 앞에는 간이매점처럼 작은 꽃집이 있었는데, 보자마자 꽃을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내 주머니에 어디에서 났는지 알 수 없는 돈도 들어 있었다. 꽃을 고르기 위해 까치발을 하고 가게 안을 들여다보자 온통 새하얀 꽃만 눈에 들어왔다. 선택지가 하나일 줄은 몰랐기에 꽃을 사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는데, 꽃집 주인아주머니가 말을 걸었다.


  "찾는 게 있니?"

  "네. 빨간 장미꽃 같은 거요."


  꽃다발이라면 꼭 빨간 장미꽃을 사야만 하는 줄 알았던 때였다. 주인아주머니는 내 얼굴을 말없이 바라보다가, 미안하지만 여기 있는 게 전부라고 했다. 어쩔 수 없었다. 나는 흰 꽃 한 다발을 샀다.


  "누구 주려고 사는 거니?"

  "우리 아빠요."

  "아빠께서 정말 좋아하시겠다."


  그때,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돌아보니 아빠가  있었다. 대머리가 됐다고 놀렸던 머리엔 머리카락이 길어 있었고  살이 붙어 통통했다.


  "아빠! 내가 아빠 주려고 꽃 샀어."

  "진짜? 고마워."

  "응. 아빠 수술 잘 받으라고 내가 산 거야."

  "그래. 아빠 수술 잘 받을게."


  아빠가 나를 안았던가? 그건 기억이 날 듯 말 듯하다. 그저 아빠가 아파 보이지 않았다는 것만 또렷하다. 아빠가 꽃다발을 받아 들었다. 헤어질 시간이었다. 오랜만에 본 아빠와 다시 이별해야 하는 게 아쉬웠지만, 하루빨리 수술을 받아야 아빠가 아프지 않을 거란 걸 알았다. 아빠가 수술실의 문을 직접 열었다. 그러자 눈부시게 하얀빛이 왕창 쏟아져 내렸다. 가는 눈을 뜨고 겨우 아빠의 뒷모습을 쳐다보는데, 문득 겁이 났던 것 같다.


  "아빠 갔다 올게."

  "응! 잘 가."


  하지만 나는 씩씩하게 손을 흔들었고, 아빠는 빛 속으로 들어갔다. 좀처럼 발이 떼지지 않는다는 듯 아주 느린 걸음으로. 


  문은, 아주 단호하게 닫혔다.




  나는 마치 정해진 순서를 따르듯 눈을 감았다 떴다. 이번엔 집이었다. 할머니가 현관을 향해 뛰쳐나가고 있었다. 


  "할머니! 어디 가?"


  나의 다급한 부름에도 할머니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뒤의 일들은 드문드문 떠오를 뿐 명확하지 않다. 즉시였는지, 다음 날 아침이 밝았을 때였는지 고모가 집으로 와서 우리에게 처음 보는 옷을 꺼내 입혔다. 언제 사뒀던 것인지 모를, 프릴이 달린 검은 코트였다. 누군가의 차를 타고 아빠가 지내던 병원으로 향했다. 전엔 나이가 어려서 아빠 병실에 들어갈 수 없었는데 어쩐 일인지 그날은 괜찮다고 했다.


  '아빠에게 꿈 얘기를 해줘야지.'


  아빠를 볼 수 있어 마냥 들떴던 것 같다. 병실 문이 열렸고 방 안에 온 가족이 있었다. '오늘 무슨 날인가? ' 늘 바빴던 작은 아빠까지 와 있었다. 그 순간 엄마가 달려 나와 나를 껴안고 울기 시작했다. 그제야 사람들의 표정이 읽혔다. 내가 도착하기 직전까지 울었던 것 같은 사람들이, 나를 발견하고 일제히 다시 울었다.


  아빠는 침대에 누워 자고 있었다. 항암치료 때문에 머리카락이 없었고, 살도 빠져 무척 마른 모습이었다. 그럼에도 더 이상 아파 보이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할머니는 연신 아빠의 손을 주무르고 있었다.


  "손이 너무 차다. 손이 너무 차."


  어른들이 내게 괜찮다며 아빠를 안아주고 인사를 건네라 했다. 나는 온 힘을 다해 고개를 저었다. 대신 당연하게 조금 울었고, 그러다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여느 아침과 다름없는 아침이어야 했다. 뽀뽀뽀 할 시간이니까 TV를 틀어달라고 졸랐다. 


  차마 아빠를 볼 수 없어서 TV 화면만 들여다봤던 날. 그날은 1999년 2월 2일. 아빠 생의 마지막 날이었고, 나에겐 아빠가 없는 첫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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