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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서로 Nov 17. 2021

눈이 녹으면, 다시 봄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눈이 녹으면 어떻게 될까요?"라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문과와 이과의 차이를 소개했다. 이과생들은 당연하게도, 물이라 답했다. 좀 더 지독한 이과생은 H2O라고 답하기도 했다. 반면 문과생들은 새싹이 돋아요, 봄이 와요 라고 답했다. 그 극명한 차이를 보다 내심 궁금해져서 주변 사람들에게 같은 질문을 던져봤다.


  가장 먼저, 문과를 졸업해 영상 만드는 일을 하고 있지만 물리학 같은 과학 이야기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남편. 남편은 내 질문을 듣자마자 "물이지~"라고 답했다. 그 답변을 듣고 내가 이 질문을 던진 계기에 대해 설명하자, "근데 진짜로 문과생들이 죄다 봄이 온다고 답할까?"라고 역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다음 타자는 나의 문창과 동창들. 남편에게 물었을 때보다는 좀 더 다양한 답변들이 나왔다. 물이 된다, 지저분하다, 땅에 스며든다... 졸업한 지 오래돼서일까? 봄이 온다거나, 꽃이 핀다거나... 그런 감성적인 답변을 들을 순 없었다. 대신 우리 첫째 딸에게 물어보라고, 뭐라고 답할지 너무너무 궁금하다는 사랑꾼 이모들의 모습만 볼 수 있었다.


  어쩌면, 모든 문과생이 봄이 온다 답하는 게 아니라 봄이 온다고 답한 사람이 문과생인 것뿐일지도 모르겠다.


  대학생 시절의 나였다면 뭐라고 답했을까? 봄이 온다고 답했을까? 뭐라 답하면 좋을지 한참 고민했을지도. 안타깝게도(?) 내 머릿속에 떠오른 답은 '블랙 아이스'였다.


  이모들의 바람에 따라 다섯 살 첫째에게도 물어보았다. 눈이 녹으면 짝눈이 된댄다. 한참 웃다가 얼굴에 있는 눈 말고 내리는 눈을 말한 거라고 얘기해주었다. 그러자 잠시 고민하던 딸은, 이렇게 답을 정정했다.


  "눈이 땅을 만나게 돼. 그리고 다시 봄이 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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