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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RA Jun 03. 2023

약간 이른 상반기 회고 -1

돈을 주지 않으면 글을 쓰지 않는다. 이게 원래 내 철칙이었다. 나에게 글쓰기는 너무 노동이라, 자신을 위해 하는 일까지 노동이 되는 게 싫었다. 나를 위한 일이라면 적어도 애쓰지 않아야 하고, 불편하지 않아야 하고, 재미 위주로 흘러갈 수 있어야지. 글 쓰는 건 재밌을 때도 많지만 동시에 고된 일이잖아. 마냥 마음 편히 할 수 없으니 쉴 때도 나를 괴로움으로 밀어 넣진 말자. 남을 위한 기록엔 열심이었지만, 나를 위한 기록은 미뤄온 셈이다.



5월 독서모임. 사고의 본질을 읽었다.


5월에 독서 모임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을 기록가 같았다. 남을 위한 글도, 나를 위한 글도 모두 잘 쓰는 사람들. 기록은 계획과도 연이 깊다. 뭔가를 이루고 싶은 사람은 결국 쓴다. 목표에 다다르려면 그저 열렬한 마음으로는 부족하다. 목표와 관련된 것만 감지하는 레이더로 온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고, 자신을 돌아보면서 부족한 부분을 인정하고 견해를 바꾸는 언짢음을 감수해야 한다. 기록을 잘하는 사람은 씀으로써 열정과 실행을 구분하고, 할 수 있는 것들과 할 수 없는 것들을 솎아내는 것에 능한 사람이다.


목표를 향한 맹렬함에 더해, 나를 냉정하게 돌아볼 수 있는 균형감각. 성찰하는 고달픔을 이겨내고서라도 자신을 똑바로 마주하는 용기. 몇 년 치의 기록을 차곡차곡 모아오면서 자신과 싸웠을 그 담대한 시간이 단단해 보였다.


반면 나는 뜨거운 마음은 있었지만, 목표를 구체적으로 실행시킬 차가운 이성은 부족했다. 하고 싶은 게 생기면 쉴 새 없이 생각하는 타입이기에 20대는 그렇게 버텼다. (물론 엄청난 목표를 세우지 않아서 그런 듯^^) 누구를 만나고, 무엇을 진행하고, 어떻게 문제에 접근하고, 어느 정도의 노력을 투입할 것인지 끊임없이 생각하다 보면 결국 하게 되니까.


30대에는 한계에 다다른 것 같다. 올해 초에도 ‘다양한 사람을 만나야지’, ‘새로운 운동에 도전해야지’, ‘얼마짜리 계약을 성사시켜야지’ 이런 큰 그림만 생각하고 그걸 실행시킬 세세한 계획은 순간순간 딥 다이브한 고민으로 끝냈다. 어찌저찌해 냈지만 머리 속이 늘 생각으로 가득 차서 잘 비워지지 않았다. 시작과 끝맺음이 다소 충동적일 때도 많았다.


‘어떻게든 하겠지’라고 생각하며 일 벌이면 벌이는 대로 쫓아가는, 미래의 나에게 중요한 결정을 미루는 태도로 일관했다. 삶을 잘 정리하지 않은 것이 어떻게 보면 나에게 배려가 없었던 게 아닌가. 달려 나가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았나.


하반기부터는 기록을 좀 더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실행 자체에 의의를 두는 것도 좋지만, 그 과정의 밀도를 높이는 건 내 몫이니까. 목표는 목표대로 배짱으로 밀고 나가고, 경험은 더 풍부해질 수 있도록 행복할 거리를 자주 발견하고.


좋았던 지점은 단물 쏙 빠질 때까지 곱씹고, 부족했던 점은 수치스러워도 똑바로 마주하고. 기록으로 그런 걸 해내는 단단한 사람이 되고 싶다. 어제의 나, 한 달 전의 나, 1년 전의 나를 돌아봤을 때 어떤 길을 택한 사람이었는지 분명히 알 수 있게. 그래서 내 선택에 후회가 없고 스스로 당당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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