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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eongrim Amy Kang Feb 04. 2023

굿잡, 저항 그리고 관찰

2023.02.03

Am I going to die soon? 

이라고 동료에게 말했다. 동료는 웃픈 이모지를 보내고는 

No, You are doing a good job.이라고 말해줬다. 


우리 회사는 핀테크 회사라, 이것저것 검열이 많이 들어가는데, 슬랙창도 검열이 된다나 뭐라나. 뭐 걸리든 말든 그냥 있는 그대로 느끼는 그대로 써 날렸는데, 급 Die라고 쓴 걸 후회했다. 괜히 이상한 거에 걸려들어가면 어쩌지....


여쨋든, 그만큼, 기분이 째지는 날이었다.




기분이 더러운 나날들이 있으면 좋은 나날도 있는가 보다. 내 인생에 이렇게 볕 들 날도 있다고 생각하니 뭔가 이 삶을 살기에 좀 더 수월해진 느낌이다. 


인정욕구.

이상하고 변태스러운 성욕이나, 폭식과 거식에 가까운 식욕을 빼면, 인정욕구가 가장 위험한 종류의 욕구 중 하나다. 외국에서는 이걸 Daddy Issue라고 하던데, 줄곧 30년을 엄마라는 위대한 사람에게 인정받고, 칭찬받고, 쓰담쓰담 거침없는 위로와, 비평과 비판을 받고 자랐으니, 아무것도 바랄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아빠가 없던 유년기, 아빠의 도움과 인정과 사랑이 필요했던 청년기와 그리고 지금. 

뭐가 대디이슈냐, 그딴 게 어딨 냐 싶었는데, 이상한 곳에서 발현이 된다. 


아무것이나 상관없었다. 나보다 위의 상사 혹은 선배, 혹은 선생님, 혹은 시아버지... 등등 여자라도 남자라도 상관없었지만, 나의 능력과 나의 재능을 알아보고 인정해 주는 상대가 어르신 남자라면 그 느낌은 배가 된다.


그리고 그제야 나는 생각했다. 이런 것이 대디이슈라고 하는 것이구나...


오늘, 5년과도 같았던, 나의 지난 5달간의 일에 대해서 다른 Stakeholder들에게 내가 이런저런 디자인과 리서처 일을 했으며, 그 결과가 요것이다!라고 발표하는 날이었다. 그와 동시에, 헤드 매니저가 따로 나에게 속닥속닥 요구했던 클라이언트 전용 프로토타입도 따로 선보이는 날이었다. 


프레젠테이션의 왕이다! 스스로 외치지만, 아직도 누군가에게 내가 이런 일을 했고 이런 결과가 나왔으며, 나는 만족하고, 피드백을 이제는 받고 싶다고 그것도 내가 손수 만든 스크립트와, 문장, Deck으로 말하는 건 정말 손발이 떨리고, 후 달리는 일이다. 아무리 몇 번을 연습하고 다시 하고, 또 해도, 쉽지 않다.


그래 그냥 숙제처럼 해치우자, 이게 내 어깨에서 떨어지면, 그것만큼 자유로운 일도 없을 것이다 했다. 


그리고 다다닥, 벽에 붙어 있던 포스트잇을 와장창 한 번에 떼듯이, 나는 프레젠테이션을 해치웠다. 

그리고 나의 자료에 대한 소문은 돌고 돌아, 회사 다른 팀 내 사람들에게 까지 널리 알려졌고, 그 결과 나는 갑자기 우수한 디자이너, 우수한 책략가가 되었다. 약이 과했나, 갑자기 내 안의 또 다른 자아가 눈을 뜬것인가? 


뭔가 일관성이 없다. 니체는 우리 내면은 군단과도 같다고 말했다. 그게 이럴 때를 의미하는 것인가...

내 안에 몇백, 몇천의 어떤 자아들이 살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오늘 나의 몸은 가볍다. 



내가 어떻게 했길래, 이런 운 좋은 힘찬 결과가 나올 수 있었을까? 천천히 비디오를 앞으로 감기 하듯이 자세히 돌려보았다. 지난 6개월 나는 뭘 했나.


멍청하게도, 나는 힘차게 저항한 일밖에 생각이 나질 않는다. 


진짜 온몸을 다해서 의심하고 저항했다. 

이 큰 회사가 설마,라는 생각을 멈추지 않고, 힘차게 저항했다. 항상 조용하고 착하게만 보이던 매니저가 갑자기 나에게 이상한 요구와 말도 안 되는 피드백을 날렸을 때도, 나는 내가 잘못된 것인가 뭐가 잘못된 것인가를 계속 따지고 의심하고, 남들은 나의 멘털에 좋지 않을 것이라며, 그냥 이만 그만두라고 해도, 나는 아메리칸 핏불처럼 물고 늘어졌다. 

고통과 불쾌, 불안, 패닉, 온갖 것을 하루하루 매일매일, 모니터 앞에 내 몸을 놓아놓고는 계속해서 저 감정들을 온몸으로 느끼고, 소회 했다. 몸도 저항을 멈추지 않았다. 

말도 안 되는 팁이랍시고, 임신휴가를 떠나기 전에 Principal디자이너가 나에게, PM의 요구에 다 넘어가서는 안되고 들어줘서도 안된다고 하는 것에 나는 반대했다. 어차피 내가 해야 하는 일이라면, 돼지우리에서 오물 쓸어내는 일부터 하겠다, 네가 안 했으니, 그럼 내가 할 차례라고 심히 생각하며 그렇게 일했다. 


그렇다. 이렇게 까지 저항하며 일하고, 결과를 보여주기 위해서 과정을 오롯이 다 받아들였는데, 안 좋은 결과가 나왔다면, 이 회사를 떴었어야 하는 것이 맞다.


아직은 내가 이 회사에서 있어야 하는 그런 시간이라고 누군가 알려주는 것인가.

뭔가 레고가 하나씩 끼워지는 느낌이다. 


이게 말도 안 되는 레고 뭉텅이 벽이 될지 아니면, 휘황찬란한 스타트렉 스페이스쉽이나, 아이언맨이 될지는 앞으로 더 두고 봐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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