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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지어함박눈 May 09. 2020

남들 다 가는 세계여행 저도 다녀왔습니다.

퇴사부터 출국까지 걸린 시간, 3개월

세계 여행 (世界旅行), 세계 곳곳을 다녀오는 여행.


요즘 여기저기서 흔하게 들리는 세계여행은 온라인 매체에서도 꽤나 뜨겁다. 부부 세계여행, 나 홀로 세계여행 등의 영상 채널도 쉽게 접할 수 있고 서점에 가봐도 지구 한 바퀴 돌다 온 사람들이 꽤나 여기저기서 볼 수 있다. 이렇듯 이제는 흔해져 버린 세계여행을 나도 다녀왔다.

가격과 서비스가 정비례하는 애증의 항공사  RYANAIR

세계여행을 가게 된 계기라고 한다면 2018년, 덥다 못해 녹을 것 같던 한 여름에 45톤 트럭과의 교통사고에서부터 시작됐다. 내가 운전하던 차가 회전목마처럼 360도를 그리며 돌았지만 다행히 경미한 정도의 사고였다. 하지만 20대의 나에겐 적잖은 충격을 주었고 이대론 안 되겠다 싶었다. 사고 난 당일, 6시 칼퇴 후 집 앞 카페에 들어가서 다이어리를 펼쳤고 아주 오랜만에 하고 싶은 것들을 적어나갔다. 퇴사의 위기는 2년 8개월 동안 무수히 많았지만 이번처럼 강렬했던 적이 없었다. 세상 물정따윈 모른다는 듯 이런저런 계획들을 적어나갔고 결론은 온통 여행, 여행 그리고 여행뿐이었다.


그렇게 나는 내 생애 처음으로 사직서를 썼다. 그리고 회사 동료들에게도 차근차근 소식을 전했다. 동료들의 반응은 가지각색이었지만 하나같이 부럽다는 말을 남발했다. 하다못해 서울권역을 총괄하던 담당자마저도 면담 중 나를 부러워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중 나를 끈기가 없다며 '네가 나중에 무슨 직장을 가질지 정~~ 말 궁금하다'라고 비꼬기도 하였다. 비꼬았던 그분은 내가 2년 넘게 모시던(?) 상사로 필터링이 없는 거친 입담으로 유명하신 분이었다. 2년 간 그분 곁에 있으면서 그의 말에 상처를 받을 때도 있었지만 최대한 그려러니하며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려보내려했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그의 직원이 아니였기에 생각만 했던 말을 결국엔 내뱉어버렸다.

선배님! 선배님은 가정과 회사를 책임져야 하는 막중한 역할을 맡고 있으시겠지만 저는 이제 고작 26살입니다. 책임져야 할 가정은 없을뿐더러 다음 주면 출퇴근도 안 해도 되구요. 제가 평생 다닐 직장을 벌써부터 선택했으면 정.말.로 현명한 20대였겠지만 그렇기엔 아직 제게 어린 구석이 있네요. 제가 하고 싶은 게 뭔지 찾아보려고 떠나는 여행이니 그저 '잘 다녀오너라' 한마디만 해주시면 감사할 것 같습니다.

이 말을 들은 상사의 표정이 어땠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저 말을 내뱉은 이후로 어색해져 버린 분위기 속에서 면담이 끝났었다.

'너 나이답지 않게 어른스럽다'라는 소리를 들으며 살아왔던 나로서는 실로 심각하고 중대한 결정이었으나 사실 나는 MBTI 유형 중 ENFP, 즉흥의 끝판왕이다. 하지만 이 놈의 책임감과 성실함이 인생의 전부라고 믿고 살아왔기에 내가 나를 감추며 살았다.(후일담으로 직장 다닐 때 했던 MBTI 검사에는 ISTJ, 정 반대의 성격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인내심이 바닥나버린 나는 그저 철없고 싶었다. 무엇보다 정말 감사하게도 나를 응원해주는 친구들과 가족들이 있었기에 용기를 내기에 충분한 환경이었다. 그렇게 나는 자발적 실업자가 되었고 약 한 달 간은 그간의 독을 빼내겠다는 심산으로 제주도며 충청도며 이곳저곳을 쏘다녔다. 눈 떠보니 출국 2주 전이었고 부랴부랴 필수 예방접종을 맞기 시작했다. 총 2일에 걸쳐 양쪽 팔뚝에 약 10여 개의 주삿바늘 구멍이 생겨났다. 한 여름이었던 터라 내 팔을 보고 누군가가 나를 약쟁이로 오해할까 싶어 더웠지만 7부 티를 입고 다녔다.

황열병 예방접종은 꽤나 비쌌었다...ㅠ

이렇게 퇴사부터 출국까지 3개월의 시간 동안 번갯불에 콩 볶듯 세계여행 준비(?)를 끝마쳤고 정해진 목적 없이, 발길 닿는 대로라는 여행 철학만을 들고 나의 첫 번째 나라인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모든 게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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