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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지어함박눈 May 24. 2020

그리스 음식기행, 인생 메뉴 팔라펠(Falafel)

그리스, 아테네

어느덧 엄마와 함께했던 2주가 훌쩍 지나고 헤어짐의 시간이 다가왔다. 혼자 여행했을 땐 몰랐던 외로움이 한국으로 돌아간 엄마의 빈자리를 채웠고 나는 이런 환경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다. 프랑스에 조금 더 있어볼까 싶었지만 헛헛해진 마음 때문에 파리를 도망치듯 빠져나와 가게 된 7번째 나라는

그리스, 아테네(Athene)였다.

발길 닿는 대로라는 여행 모토에 충실했던 나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구글 맵을 보다가 그리스로 향하는 비행기표를 예매했다. 그리스를 택한 이유는 10일 뒤면 아랍 에미레이트에서 만나게 될 친구 때문이었다. 위치 상 아랍에서 그리 멀지도, 가깝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내가 가본 적 없는 나라여야 한다는 기준에 알맞았다. 그렇게 별 탈 없을 줄 알았던 여정에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겼다.


당시 파리는 시위로 인해 도심 상황이 말도 안 되게 엉망이 되어버렸는데 여기서 가장 큰 문제점은 파업으로 인한 교통편 마비였다. 대중교통은 물론 택시까지도 모두 운행을 중단할 수도 있다니? 그럼 비행기를 못 타는 건가? 싶었고 나의 걱정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결국 비행기 이륙까지 26시간 정도 남았을 즈음 나는 이미 공항 안이었다. 이건 계획에도 없던 나의 첫 번째 공항 노숙이었고 두 번 다신 겪고 싶지 않은 경험으로 기억된다.(하지만 안타깝게 이 날 이후에도 몇 번의 공항 노숙을 경험했다고 한다...)


이러한 우여곡절 탓에 그리스까지 가는 기다긴 여정이 정말 피곤하기도, 지치기도 했다. 하지만 과정이 어쨌든 이 곳, 그리스에 무사히 도착했고 남은 건 이 나라를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길 일만 남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지 아테네에 도착했을 땐 언제 그랬냐는 듯 생기가 돌았다. 무엇보다 공항에서 시내까지 운행하는 버스 편이 많아서 별 수고로움 없이 신타그마 광장(Plateia Syantagmatos)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아크로폴리스의 낯과 밤

개인적으로 여행을 하면서 가장 낯설고 긴장이 많이 되면서도 설레는 타이밍이 지금과 같이 이제 막 타국에 도착했을 때라고 생각한다.


아테네에 도착했을 당시를 떠올려보자면 대략 오후 1~2시쯤이었고 화창한 날씨에 등줄기에 땀이 흐를 정도로 더웠다. 광장에는 여행객들인지, 현지인들인지 모를 다수의 사람들이 뒤엉켜 목적지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고 길거리에는 여느 도시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가판대들이 줄지어 있었다. 가장 눈에 띄는 가판대는 노트와 중고서적을 파는 곳이었는데 2018년의 막바지라서 2019년 다이어리를 구입하려고 한창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던 중이었기에 무거운 배낭을 메고도 그곳에 잠시 서서 둘러봤던 기억이 난다.(TMI로 2019년 다이어리는 터키, 이스탄불에서 구입했다.)


이렇듯 그들에겐 별반 다를 것 없는 일상에 55리터 배낭을 짊어진 낯선 여행객인 내가 자연스레 그 장소에 스며드는 순간의 분위기나 소음, 냄새 등이 가장 진득이 남아있는 기억이 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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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숙소에 도착해 짐을 풀고 난 뒤에야 잊고 있던 허기가 밀려들어왔고 마침 길가다 우연히 본 *팔라펠 가게가 떠올랐다. 그 가게는 여행 중 보기 드물게 사람들이 줄 서서 기다리고 있던 가게였기에 어느 정도 맛은 보장되어 있으리라 믿은 나는 빠르게 배낭을 뒤져서 10유로 한 장을 주머니에 챙기고 숙소를 나섰다. 숙소로부터 도보 5분 거리에 위치한 팔라펠 가게는 개당 3.30유로(한화 약 4,500원)밖에 안 하는 혜자로움을 보여주었고 맛보기도 전에 일단 가격에서부터 합격이었다. 테이블이 없어서 길가에 위치한 의자에 앉아 식사를 해야 했지만 노숙까지 한 나는 의자가 있단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그렇게 음식이 나오기까지 손꼽아 기다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팔라펠을 맛볼 수 있었다.

[*팔라펠(falafel) : 병아리콩이나 잠두를 다진 마늘이나 양파, 파슬리, 커민, 고수씨, 고수잎과 함께 갈아 만든 반죽을 둥근 모양으로 튀긴 음식이다.(출처:네이버 지식백과)]


팔라펠의 후기를 말하자면....!
아테네에 있는 5일 동안 하루에 한 번은 꼭 팔라펠을 사 먹었고 하루는 세끼 다 팔라펠을 먹을 정도로 맛있었다 ㅠㅠ
가게로 가서 돌려주고 온 팔라펠 쇼핑백들 :)

팔라펠이라는 음식의 기원은 이집트였으나 이집트에서도, 터키에서도 팔라펠 먹어본 나로서는 그리스 아테네의 팔라펠이 몇십 배는 더 맛있었다!!


여행을 하면서 타의에 의해(자의 X) 12시부터 최대 35시간 정도 물도 음식도 먹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곤 하는데, 시장이 반찬이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배고픔이 극에 달하면 평소엔 절대 사 먹을 것 같지 않을 음식들도 허기와 함께 씹어 넘긴다. 그런데 이 가게의 팔라펠은 정말 달랐다. 내가 아는 표현이 고작 '맛있다'밖에 없는 게 한탄스러운 지경이었다.


바삭한 병아리콩과 함께 어우러진 소스는 매우 적절했고 한국인을 위한(?) 매운(Spicy) 메뉴도 별도로 있었다. 매운 걸 잘 못 먹는 나였지만 이 곳 팔라펠은 종류, 크기별로 한 번씩은 다 먹어봐야 후회가 안 남을 것 같았기에 정말 매일 갔다. 오전, 오후 가리지 않고 자주 가다 보니 직원들이 나를 알아보는 지경까지 이르렀으며, 그리스에서의 마지막 날엔 나에게 음료를 서비스로 줄 정도였다.

아테네 골목 사이마다 있는 레몬나무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생각과 가치관이 다른 것처럼 입맛 또한 다양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고 굳이 싫다는 그들에게 먹어보라 들이밀고 싶지도 않다. 취향은 모두 다 다르기 마련이고 내가 나의 취향을 존중받고 싶어 하는 만큼 나도 그들의 취향을 존중해주려 하는 편이다.


하지만 적어도, 적어도!(강조) 나에게 아테네의 팔라펠은 최고의 음식이었다.


언젠가 그리스에 다시 가게 된다면 그 이유는 요놈의 팔라펠 때문일 정도로 이 음식의 애정도가 남다르다. 별생각 없이 도착한 나라에서 별 기대 없이 먹었던 음식이 내 인생 메뉴 될 때, 또 다른 행복을 준다는 걸 알게 해 준 나의 인생 메뉴 팔라펠에게 모든 영광을 돌리며

아테네에 가면 팔라펠(Falafel)을 드셔 보는 걸 추천합니다 :)
사진만 봐도 배고파지는 나의 인생 메뉴, 아테네의 팔라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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