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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닐라맛 교향곡 May 23. 2020

지리의 감옥에서 자유의지를 탐한다-[지리의 힘]을 읽고

인간의 가능성과 책임에 관한 짧은 생각


들어가며

팀 마셜(Tim Marshall)저 [지리의 힘]을 읽었다. 전 세계를 10개의 구역으로 나누어 각 구역에서의 지정학적(geopolitical)상황을 살피고, 그것들이 지리적 배경로부터 어떻게 연유하였는가를 탐구한 책이다. 이는 몇년 전 베스트셀러였던 제레드 다이아몬드 저 [총, 균 쇠]와 그 맥을 같이한다. [총, 균, 쇠]가 대륙간 지리적 특성이 어떻게 현재의 국가간 힘의 차이를 만들어냈는가에 대하여 거시적 담론을 제시하는 반면, [지리의 힘은] 지구 각 구역의 역사문화적 배경을 지리로서 고찰하는 미시적 담론을 제시한다.


이 책은 세계 각 지역별 지정학의 속성 교과서라고 할 수 있다. 장마다 도입부에 수록된 지도는 본문 속에 언급된 지명을 찾아볼 수 있도롭 배치되어 있다. 본문을 읽으며 각 지형을 따라 사람과 물자가 이동하는 상상을 하며 즐겁게, 하지만 가볍지 않게 읽을 수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은(후술할 지리적 결정론의 이론적 흠을 차치하고) 너무 방대한 분량을 한정된 지면에 수록하다 보니 깊게 다루어져야 할 내용들이 수박 겉핥기식으로 지나간다는 것이다. 인도와 파키스탄의 카슈미르 분쟁은 그 자체만으로 설명하는 것에 몇 권의 책이 필요하다. 또한 어느 정도 지정학적 기본지식이 있을 것을 요하는데 그러지 못 한 독자라면 독서 중간중간 멈추어 구글링 해 볼 필요가 있다. 또한 이미 발행된 지 몇년이 되어버려 내용이 업데이트 되어야 할 것들도 종종 보인다.


다만 이 책은 분명 짧은 시간에 오늘날 세계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아는 것에는 매우 효과적이다.






지리적 결정론

"우리의 삶은 언제나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땅>에 의해 형성돼 왔다. 전쟁, 권력, 정치는 물론이고 오늘날 거의 모든 지역에 사는 인간이 거둔 사회적 발전은 지리적 특성에 따라 이뤄졌다." - 서론 중에서.


가령 이런 식이다. 중국은 황허와 양쯔강을 낀 평야를 중심으로 하여 발전하였는데, 서쪽으로는 티벳의 히말라야와 카라코람 산맥이 자연적 경계를 형성하고 있어 외부의 침입을 저지하는 방벽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중국으로서는 중요한 신장과 티베트의 독립을 필수적으로 저지할 것다. 또한 남쪽으로는 빽빽한 밀림 지역이 동남아 국가들과의 자연적 경계를 형성하고 있다. 그러므로 현재 중국의 대외정책은 지리에 의해 결정된 동서남북의 육상경계를 확고히 하면서, 남방으로는 해양 영향력을 확장하여 말라카 해협을 통해 오는 자국의 에너지 안보를 확보하는 전략을 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저자에 따르면 인류는 영문 원제(Prisonors of Geography)의 말마따나 "지리의 포로"인 셈이다.


중국은 서쪽의 높은 산맥, 북쪽의 사막, 남쪽의 밀림지역으로 보호받고 있다.






우리는 과연 지리의 포로인가?

지리적 결정론의 태생적인 한계는 역사로부터 인간의 역할을 지워버린다는 것에 있다. 우리는 과연 지리의 포로인가? 지리적 결정론은 지리에 각 사회의 발전상을 짊어지움으로써 서방인들이 더 발전한 이유가 그들이 인종적으로 뛰어나서가 아니라, 운이 좋게도 적절한 환경에 정착하였기 때문이라고 하여 얼핏 인종주의에 반하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반대로 이는 태평양을 등지고 있었던 일본이, 조선을 지리적 교두보로 하여 대륙으로 확장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하여 식민지주의에 대한 면죄부가 될 수도 있다. 어떠한 문명의 흥망성쇠를 지리에 책임지우는 것은, 인간의 선택으로부터 책임을 유리시키는 것이며 자유의지를 박탈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는 응당 부당하며 납득할 수 없다.


발달심리학에 따르면 태어날때 주어진 유전자는 인간의 모든 것을 결정짓지 아니한다. 또한 인간이 자라난 환경이 모든 것을 결정짓지도 아니한다.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는지는 타고난 유전자, 자라난 환경, 그리고 특정 상황에서의 개인의 선택 모두가 복잡하게 얽혀 총유적 결과로서 한 인간을 형성한다. 만약 인간의 선택을 평가절하하고 지리에 의해 모든 것이 결정된다고 한다면 역사란 헤겔이 주장한바 발전과정과 결과가 이미 결정지어진 선형적 진행에 불과할 것이다. 이러한 세계관 속에서 우리가 매일 필사적으로 내리는 선택들이 어떠한 의미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단언컨대 우리는 지리의 포로가 아닌, 지리의 영향을 받지만 결국 스스로의 책임으로서 이 자리에 있는 것이다.






마치며

내가 학부시절 미숙하게나마 사학을 전공하면 배운 것은 인간의 선택은 상상 이상으로 기상천외하다는 것이다. 단 12척의 배로 10배가 넘는 일본군과 결전에 임한 이순신이 그러했고, 포위되고 굶주린 상황에서 성벽의 안전을 버리고 적진으로의 돌격을 선택한 안티오크에서의 십자군이 그러했다. 저자의 생각만큼 지리는 우리의 미래를 결정짓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환경과 선택 양 극잔의 중간자적 존재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선택에 대하여 "지리 때문에 침략하는 수 뿐이 없었어요"라는 핑계는 댈 수 없을 것이다. 발전은 환경의 영향을 올곧게 직시하고 그것을 극복하려는 의지로부터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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