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비야 Oct 18. 2021

두려움의 삼십 대

20대가 불안함이었다면 30대는 두려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지금 서 있는 곳에서 조금만 엇나가도 내가 가진 어떤 것을 잃어버릴 것만 같은 두려움에 휩싸이곤 했다. 딱히 내세울 만한 것도, 가진 것도 없으면서 말이다.


넘치던 체력이 꽤나 달라진 게 느껴진다. 

줄어든 체력을 체감하는 것만큼이나 감정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먹고 싶은 것이 많았다. 많이 먹는 편은 아니었지만 어찌나 이것저것 먹고 싶은 게 많은지 참 넘치는 식욕이었다. 

가고 싶은 곳도 많았다. “우리 어디 놀러 갈까?” 누군가 물으면 한치의 망설임 없이 어디 가자! 라며 입에서 바로 튀어나오곤 했다. 이곳저곳 돌아다니는 걸 좋아했던 탓에 휴대폰 속 메모장엔 가고 싶은 곳들로 가득 차 있었다.

하고 싶은 것도 많았다. 배낭여행도 하고 싶었고 글도 쓰고 싶었다. 가게를 차려 사장님이 되고 싶기도 했고 한 달쯤 세상에서 떨어져 나온 것 마냥 숨어 지내보고도 싶었다. 

참 웃음도 많았다. 떨어지는 낙엽만 봐도 웃는다는 말처럼 별거 아닌 일에도 웃음이 넘쳤다. 기계적으로 내비치는 웃음이 아닌 온몸에 힘이 빠질 정도로 웃는 일. 그땐 그게 소중한 건지 몰랐는데 지금 와서 보니 그때처럼 순수하게 웃을 수 있는 날은 별로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먹고 싶은 것도, 가고 싶은 곳도, 하고 싶은 것도 많던 웃음기 가득한, 모든 것에 솔직했던 그때의 나는 도대체 어디로 사라져 버린 걸까.


친구와 저녁 약속을 한 날이었다. 사실 퇴근 직후라 딱히 먹고 싶은 것도 없었을뿐더러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마음속으론 ‘약속이고 뭐고 그냥 집에 가서 눕고 싶다.’라는 마음뿐이었지만 당일날 약속을 취소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 꾸역꾸역 약속 장소로 향했다.

“우리 뭐 먹을래?” 친구가 물었다.

“글쎄, 아무거나..?”

먹고 싶은 게 없냐며 이것저것 메뉴를 말하며 묻는 친구였지만 미안하게도 그럴수록 내 식욕은 점차 떨어져 갔다. “난 아무거나 괜찮아, 너 먹고 싶은 거로 먹자.”

그렇게 친구의 선택으로 결정된 최종 메뉴는 파스타.

저녁시간이라 음식이 나오기까지 시간이 좀 걸린다는 종업원의 말에 우리는 기다릴 겸 맥주를 시켜 먼저 먹고 있기로 했다. 

“저녁 먹고 뭐할래? 하고 싶은 거 없어?”

맥주의 시원함이 채 느껴지기도 전에 친구가 물어온다.

숨이 턱 막혀온다. 당장이라도 이 무거운 몸뚱이를 침대에 눕히고 싶다는 마음이 가득했지만 최대한 머리를 굴려봤다. 뭐하지? 뭘 해야 하지? 생각해봐도 도통 떠오르는 게 없다. “나? 글쎄 모르겠어, 넌 뭐하고 싶은데?” 결국 친구에게 질문을 돌렸다.

친구는 잠시 창밖을 바라보더니 “왜 이렇게 기운이 없어 보여? 먹고 싶은 것도 없는 거 같고, 하고 싶은 거도 없는 것 같아 보이고, 무슨 일 있어?” 라며 물어온다.

“그냥.... 별거 아니야.”

우리 둘 사이에 잠시 적막이 흘렀고 그 적막을 깬 건 나였다.

“모르겠어, 그냥.... 딱히 기운이 없는 것도 아닌데, 한 거라곤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하고 퇴근한 게 전분데.. 정말 딱 그것만이 내 전부가 돼버린 것 같은 느낌이야.

일을 하다 보면 언젠가는 내가 만족할 정도의 수준이 되겠지 싶어서 크게 한번 쉬지도 않고 일도 했어. 그렇게 몇 년이 지났는데도 오히려 나는 남들보다 뒤처져 있었어. 그 사실을 알게 됬을 땐 정말 나조차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 스트레스랑 회의감은 어디 하나 풀 곳이 없었고 술이나 먹는 걸로 풀어내는 것도 한계는 오더라고. 그 이후부터였어. 의욕이 점차 사라지기 시작한 게. 언젠가부터 먹고 싶은 것도 없고 어딘가 가고 싶지도 뭘 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더라고."


"그냥, 그런 거 있잖아. 내 인생은 이렇게 반복만 하다 끝나겠지 싶은 거.

너무 과장해서 생각하는 거 아니냐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정말 그럴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 열정이 넘치던 나는 어느새 사라지고 빈껍데기만 남아 흐물흐물 거리는 상태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느낌이야, 나이를 먹는 게 이런 건가 싶기도 해. 서른이 되고 나면 뭐든 쉬워질 줄 알았는데 더 어렵기만 한 것 같아 "


언제부턴가 무언갈 먹을 때에도 새로운 음식에 도전하기보다는 매일 먹던 것만 먹었다.

옷을 살 때에도 늘 입는 스타일의 옷만 고집했다. 새로운 것보다는 익숙한 것이 편해졌다. 적어도 익숙한 것은 내게 실패나 손해를 보게 만들지는 않았으니까.

새로운 것들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생긴 것 같았다. 새로운 음식을 먹었을 때, 맛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먼저 했고, 새로운 스타일의 옷을 고르고 싶었을 때도, 그런 옷은 내게 어울리지 않을 거라 미리 단정 지었다. 실패하면 안 된다는 생각 때문에 나는 모든 것들에 거리를 둔 채 언제든지 피할 곳을 만들어 놓고는 보통만 하기도 어렵다는 말로 위안을 삼은채 나를 속이고 있었다.


두렵다는 이유로 더 이상 실패하면 안 된다는 이유로 온갖 갖은 핑계를 대며 내 삶은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져 버려서 더 이상 새로운 것이 주는 기쁨이 무엇이었는지 생각나지 않을 지경까지 이르렀다.

그것은 더이상 음식이나 옷에 그치는 정도가 아니었다. 나와 사랑하는 사람에게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이쯤이면 됐어’라는 온도가 느껴지지 않는 말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