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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mmer Jul 14. 2024

캠핑카 한라봉과 첫 장박 일기

[6월 셋째 주 일기] 캠핑카로 장박하기


  


우리 집 캠핑카 라봉이      


2021년부터 본격적으로 가족 캠핑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남편은 틈만 나면 캠핑카를 사고 싶다고 노래를 불러댔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캠핑카를 사서 얼마나 자주 쓰겠냐, 일단 렌트해 보고 결정하자, 차라리 그 돈으로 여행을 더 자주 다니는 게 낫지 않겠냐’고 응수했고, 남편도 별다른 대꾸를 하지 못했다. 그 이후로도 남편은 나를 설득하려고 끈질기게 노력했지만, 내 마음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진심으로 캠핑카를 살 돈으로 호텔을 백 번 가는 게 낫겠다는 마음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덜컥 주황색의 작은 트레일러를 끌고 나타났다. 허락보다는 용서가 빠를 것이란 판단으로 질러버린 것이다. 다시 생각해 봐도 어이가 없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한편으로는 얼마나 사고 싶었으면 마누라의 반대도 무릅쓰고 그랬을까 싶어서 짠하기도 했다. 아이들은 캠핑카의 등장에 엄청나게 기뻐하며 한라봉이라는 이름도 붙여줬다. 나도 기왕 이렇게 된 거 열심히 다녀보자며 마음을 고쳐먹었지만, 갑자기 남편의 일이 바빠지면서 라봉이 개시일은 차일피일 미뤄졌다.      


라봉이가 우리 집에 온 이후로도 두 달 넘게 지하주차장에 방치되자, 나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잔소리를 퍼붓기 시작했고 (내가 이럴 줄 알았다! 가만히 세워놓을 거면 캠핑카를 왜 산 거냐, 이 돈이면...), 위기감을 느낀 남편이 근처 캠핑장을 예약하면서 우리 가족은 드디어 라봉이와 첫 캠핑을 갈 수 있게 됐다. 캠핑 첫날, 차 뒤에 커다란 트레일러를 달고 운전하는 건 생각보다 힘든 일이었지만, 남편의 표정은 매우 행복해 보였다.    


캠핑카와 함께하는 첫 캠핑은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캠핑장에 도착한 다음, 캠핑카를 사이트에 주차하고, 어닝 펼치고, 테이블과 의자만 놓으니 준비가 끝났다. 텐트 칠 필요가 없으니 시간이 획기적(?)으로 단축되는 느낌이었다. 바로 밥 먹을 준비에 돌입하면서 ‘이런 점은 좋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일종의 차박이다 보니 텐트에서 자는 것보다 잠자리도 편안했다. 하지만 여전히 캠핑카를 꼭 사야만 했는가에 대한 의문과 나의 동의 없이 캠핑카를 지른 남편에 대한 불만이 마음속 한 구석에 남아 있었다.      


미묘하게 불편한 마음이 완전히 해소된 건, 다음날 새벽에 내린 비 덕분이었다. 나는 우중 캠핑을 즐길 정도의 고수가 아니라(나는 사실 캠핑보다는 호캉스를 선호한다) 캠핑 도중에 비가 오면 안절부절못하는 편인데, 그날 새벽에는 아주 편안하게 푹 잤다. 빗소리를 듣고 깼다가 캠핑카 안이 매우 안전(?)하고, 아늑하게 느껴져서 다시 잠든 거다. 그날 아침, 나는 남편에게 처음으로 캠핑카 사길 잘했다고 말했다.   




     

라봉이와 함께 하는 캠핑  

    

그 이후로 우리는 여름휴가를 라봉이와 함께하기로 하고, 겁도 없이 라봉이를 끌고 속초까지 간다는 계획을 세웠다. 출발할 때는 다들 신났지만, 속초까지 가는 길은 매우 험난했다. 휴가철이라 서울에서 강원도로 빠져나가는 데까지 차가 엄청나게 막혔고, 트레일러를 끌고 속도를 낼 수 없어서 빨리 달릴 수도 없었다.  

    

결국 아침에 출발해서 해 질 녘에야 속초에 도착했다. 장장 7시간에 걸쳐서 혼자 운전한 남편은 캠핑장에 도착하고 나서 녹초가 됐다. 그래도 바닷가 근처, 소나무가 가득한 숲 속 캠핑장은 정말 좋았다. 트레일러는 캠핑장에 두고, 차 타고 속초 여기저기 다니면서 여행한 것도 기억에 남는다.      


하지만 한라봉과 장거리 여행을 다녀온 건 이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 이후로는 암묵적 합의 하에 가까운 곳 위주로 캠핑을 다녔다. 라봉이와 함께라면 더운 여름과 추운 겨울에도 캠핑이 고행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남편에게 라봉이랑 50박에 성공하면 더 이상 구박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지난 2년간 10박 정도는 채운 것 같다.      




장박이 최고    

  

캠핑카가 있으면 매주 캠핑을 갈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캠핑카 뽕을 뽑으려면(?) 장박이 필수다. 지난달부터 두 달 동안, 우리 집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캠핑장에서 라봉이와 첫 장박을 시작했다. 장박을 해보니, 어느 때보다 몸과 마음이 편안하다. 아무리 캠핑카라도 하루 이틀 만에 짐을 풀었다가 쌌다가 해야 하는데 (텐트 치는 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 장박을 하면 그냥 그대로, 잘 정리해 놓고 집에 가면 된다. 그리고 다음 주말에 다시 몸만 오면 된다. 말 그대로 여름 별장이 생긴 기분이다.       


이번에 장박하는 곳은 집에서 5분 거리라 멀리 갈 필요가 없다는 점이 제일 좋다. 가까우니 주말마다 가는 게 부담스럽지 않다. 사이트 간 거리가 좁다는 게 단점으로 꼽히지만, 우리는 카라반 자리라 크게 상관없고, 2주 전부터 커다란 수영장도 개장해서 아이들이랑 돈 들여서 수영장 다닐 필요가 없으니 그것도 매우 만족스럽다.  

    


장박을 하면서 캠핑카에 대한 만족도가 더 높아진 듯하다. 아이들도 금요일 밤만 되면, 캠핑장 갈 생각에 신나고, 나도 주말마다 어딜 가야 하나 고민하지 않아도 되니 편하다. 캠핑장에서는 아이들이랑 배드민턴도 치고, 맛있는 고기도 굽고, 밤에는 불 피워놓고, 도란도란 모여 앉아서 마시멜로우를 구워 먹는다. 나는 여전히 캠핑보다는 호캉스를 선호하는 인간이지만, 가족과 함께 캠핑장에서 보내는 시간이 참 좋다.     

 

어릴 때, 가족과 함께 캠핑 다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냄비밥 지어먹고, 좁은 텐트 안에서 다 같이 게임하며 깔깔대던 장면이 사진처럼 머릿속에 남아 있다. 그 당시엔 몰랐지만, 나의 장기기억 어딘가에 저장될 만큼 좋았나 보다. 지금 우리 가족이 함께 하는 시간들이 어린이들의 기억 속에도 즐거운 추억으로 오랫동안 남으면 좋겠다. 50박 채우는 날까지 파이팅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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