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아 / 스리체어스
누구나 자신이 꿈꾸는 여행이 있다. 사람들은 여행에 대한 로망을 하나씩 갖고 있는 듯하다.
내가 생각하는 여행의 로망은 '여유'다.
2012년, 캄보디아로 해외봉사 활동을 다녀왔다. 해외봉사 일정을 모두 소화하고, 남은 이틀을 짧고 굵게 보내고자 관광 스케줄을 잡았다. 뒤로 꺾이지도 않던(90도로 고정된) 의자에서 고된 시간을 버티며 6시간 동안 비포장도로를 달린 끝에 도착한 왕코르 와트는 너무 황홀했다. 웅장한 자태를 뽐내는 유적지와 유서 깊은 역사 스토리라니... 그러나 팍팍한 일정 탓에 쫓기듯 돌아다니며 포인트마다 사진을 찍기 바빴다. 딱 반나절 걸린 관광 코스로 앙코르 와트를 돌아보기엔 너무 아쉬웠다. 일정이 마무리될 때쯤, 가이드에 안내(또는 강요)에 따라 코코넛 음료를 마시면서 잠시 숨을 돌리던 그 상황에 한 커플이 눈에 띄었다. 나무에 기대어 샌드위치를 먹으며 책을 읽는 커플의 모습. 그 모습은 생생하고 강렬하게 남아있다.
그 여유가 부러웠다. 무슨 책을 읽는지, 어떤 상황인지는 모른다. 그러나 앙코르 와트라는 관광지와 거대한 유적 앞에서, 나무가 제공해주는 그늘에 앉아 책을 읽는 여유로움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 여유는 나의 로망이 되었다.
내 여행의 로망이 여유라면,
이 책 『서점 여행자의 노트』를 쓴 김윤아 작가는 전 세계의 특색 있는 서점을 방문하고 그곳의 이야기를 기록하며 여행을 풀어낸다.
각기 다른 이야기를 품고 있는 서점들은 고유의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좋은 서점은 스쳐 지나가는 곳이 아니라 평생의 흥미로 이어질 수 있는 분야를 발견하는 관문이다. 여행도 비슷하다. 좋은 여행은 삶의 태도까지 바꾸어 놓는다. 낯선 경험을 기대하며 떠나는 여행처럼, 열린 마음으로 서점의 문을 열어 보자. 새로운 세계를 만나는 여행의 가치를 서점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4p-
여행을 즐기는 수만 가지 방법 중 하나로 각 도시의 서점을 방문하는 작가의 방식은 매우 매력적이다. 교보문고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베스트셀러를 기웃거리고, 그다음으로는 내가 좋아하는 인문학 평대에 깔린 책을 훑고, 혹시나 평소에 자주 읽던 작가의 신작이 나왔나 검색하는 것이 전부인 나로서는 생각지도 못한 여행 방법이다.
반면, 작가가 경험한 서점은 내 방식과는 사뭇 다르다. 자신만의 특색을 나타내는 독립서점, 또는 작은 동네 서점을 방문하여 그곳의 이야기와 그곳의 다양한 가치를 찾는다. 작은 서점을 방문하는 것은 마치 그곳을 꾸민 사람들의 프라이빗한 서재를 엿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 것 같다. 어쩌면 나는 서점을 관광하듯 돌아본 것 같다.
(링크를 걸어뒀습니다. 조금 더 자세하게 각 서점을 여행할 수 있도록)
작가가 방문한 파리, 뉴욕, 런던 등 각 도시의 서점들은 각기 자신만의 목소리를 낸다. 그 목소리를 듣고, 보고, 읽기 위해 작가는 그곳을 찾는다. 시스템으로 잘 정돈된 편의성을 뒤로하고 직접 부딪히고 탐험하며 자신만의 독자적인 경험을 쌓는 여행이다. 조금 불편한 방식이지만 다양한 가치를 발견할 수 있는 정통적인 여행 방법이다. 그곳에서 소수자들의 이야기,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갖는 법, 오랜 고서부터 몇 명을 거쳐 왔는지 모를(다양한 역사를 가지고 있을) 보물 같은 책을 찾는 방법, 사회의 풍파 속에서도 굳건히 지켜나가는 서점들의 역사를 발견한다. 그리고 그렇게 새로운 세계를 만난다. 여유롭게 서점을 즐기고 새로운 세계를 만나 자신의 세계를 넓히는 것이 작가가 여행하는 방식이자 로망인 것이다.
누구나 자신이 꿈꾸는 여행이 있다.
현실의 팍팍함 속에 쉽게 여행을 떠나기 힘들다면, 나를 또 다른 세계와 조우시켜 줄 책 한 권을 집어 읽는 잠깐의 여유로움을 가져보면 어떨까? 그 잠깐의 여행이 나에게 새로운 세상을 선물해줄 수도 있으니까.
진정한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닌 새로운 눈을 가지는 것이다.
-마르셀 푸르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