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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태 May 14. 2019

대항해시대의 탄생

시공사 / 송동훈 지음


어렸을 때를 떠올려보면 항상 지도와 함께였다.


지도

[지리지구 표면의 일부 또는 전체의 상태를 일정한 비율로 줄여서 평면상에 나타낸 그림.


지도와 함께였던 기억의 파편을 모아 보면 몇 가지 기억이 완성된다.


일단 첫 번째는 지구본이다.

지구본을 갖고 싶어서 매년 찾아오는 생일과 어린이날, 크리스마스가 되면 큰 지구본을 사달라고 졸랐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선지 갖고 싶었던 큰 지구본은 결국 갖지 못했다. 하지만 작은 지구본은 가질 수 있었는데, 이는 철없던 시절의 이야기다. 초등학교 4학년 즈음, 공부를 조금 잘했던 나는 어머니에게 백과사전을 구매하지 않으면 공부를 할 수 없다며 엄포(?)를 놓고서 백과사전을 구매했는데, 그 백과사전 구매 시 사은품이 다마고치와 지구본이었다. 정확한 가격은 생각나지 않지만... 백과사전 가격으로 지구본과 다마고치를 구매한 것과 진배없다.


두 번째는 세계지도다.

무슨 이유에선지 세계지도만 보면 가슴이 뛰는 느낌이 있었는데, 백과사전에 부록으로 달려왔던 세계지도를 방 한켠에 붙여두고서 잠들기 직전까지 보다가 잠드는 것을 반복했던 기억이 난다.


세 번째는 사회과부도이다.

사회과부도를 보면 세계 곳곳의 지리 정보가 상세히 나와있다. 특히, 지중해를 중심으로 하는 유럽과 북아프리카 쪽을 좋아했다. 근처 문방구에서 팔던 미농지(aka기름종이)를 사다가 사회과부도 위에 펼쳐두고서 연필을 사용해 지도를 따라 그렸다. 완성된 작품을 펼쳐보며 얼마나 뿌듯했는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이런 기억을 모아 생각해 보면 전생에 나는 모험가였을 것 같다. 미지의 땅을 탐구하고 도전하는 모험가.


그래서 대항해시대(중세 말 ~ 근대 제국주의 전)를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미지의 땅을 탐구하고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개척해나가는 시대. 대항해시대.


세계사의 흐름을 바꾼 위대한 모험 대항해시대의 탄생 (송동훈 지음)

은 잊고 지냈던 그때 그 시절의 기억과 열정, 도전정신, 좋아했던 게임 등을 떠오르게 한 책이다.


대항해시대를 좋아하다 보니 자연스레 같은 이름의 게임 대항해시대 시리즈를 좋아했다. 조잡한 그래픽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스토리와 짜임새 있는 구성에 잠을 설쳐가며 게임을 즐겼던 기억이 난다. 특히 그나마 최근에 나온 대항해시대 온라인을 통해 내가 꿈꿨던 대항해시대의 체험을 간접적으로나마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삼자 무역을 하여 돈을 벌고, 그 돈으로 배를 구입하고, 더 큰 무역을 통해 부를 축적한다. 부를 축적하는 게 재미없으면 탐험해도 좋다. 남들이 발견하지 못했던 유적을 파 해치며 고고학의 길을 걸어도 좋고, 생물에 대한 탐구를 해도 좋다. 탐험에 지친다면 군사 기술을 터득하여 사략 해적을 해도 좋다.

(너무 추억에 젖어 책 이야기가 아닌 다른 이야기로 자꾸만 빠져든다)


대항해시대에서 가장 좋아하는 국가와 인물이 누구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단연코 한 국가와 한 사람이 떠오른다. 포르투갈과 포르투갈 아비스 왕조의 왕자, 항해왕 엔히크.


포르투갈 왕국의 왕자 엔히크가 사그레스에 모습을 드러냈다. 포르투갈의 첫 해외 영토인 세우타에서 3개월을 머물다 귀환한 직후인 1419년이었다. 소규모 수행단이 함께했다. 알가르브라 불리는 포르투갈 왕국 최남단 지역 안에서도 가장 끄트머리에 이치한 곳이다. 사그레스는 웅장함을 뛰어넘어 운명적인 비장미가 감도는 해안가의 절벽 위에 자리 잡고 있다. (중략)로마 제국은 위대했고, 강력했으며, 광활했다. 그들은 바다를 둘러 유럽과 아프리카, 아시아 세 대륙을 지배했다. 자신들의 영토 안에 바다를 가뒀다. 감히 바다를 '로마의 호수'라 불렀다. 호연지기의 스케일이 다른 제국이 로마였다. 그러나 거꾸로 생각하면 '로마의 호수'라는 칭호 자체가 지중해의 한계를 뜻했다. 사그레스 앞에 펼쳐진 바다는 지중해와 격이 달랐다. 지중해처럼 대륙 사이에 갇힌 바다가 아니었다. 반대로 대륙을 가둔 바다, 대서양이었다.『대항해시대의 탄생 85p-86p』


그 누구도 가지 않으려고 했던 저 땅 너머 바다.

항간에는 펄펄 끓는 암흑의 녹색바다에 악마가 살고 있다는 그곳.

보자도르 곶 너머의 미지의 세계

그 누구도 하지 못했던 미지의 세계로의 탐험을 처음으로 이끈 사람이 바로 포르투갈의 항해왕 엔히크다. 엔히크는 사그레스를 둘러싼 바다를 보며 생각했다.


'육지로 이슬람 왕국이 뻗어 있다면, 바다로 내려가지 못할 이유가 없다. 살아 돌아오지 못하는 데는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지극히 도전적이었던 엔히크의 생각을 실현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캐러밴은 인력에 의존했던 기존 방식(지중해에 적합)에서 벗어나 바람의 변화에 따라 돛을 움직여 손쉽게 배를 조종할 수 있는, 북아프리카 해안을 탐사하기 적합한 배였다. 그리고 그 누구도 살아 돌아오지 못했던 보자도르 곶을, 그의 조력자 질 이아네스 선장이 캐러벨을 활용해 무사 생환에 성공한 그 날은, 먼 바다에 대한 무지와 공포를 극복하고 더 큰 세계로의 도전을 시작한 대항해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였다.


엔히크는 포르투갈을 떠난 적이 없다. 그러나 그의 생각과 실행력, 그의 도전정신 덕분에 중세시대가 저물고 근대가 시작할 수 있었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기 위해 수많은 반대와 역경을 이겨내고 첫 발을 내딛는 것. 그것이 대항해시대를 관철하는 '도전'이라는 의식의 핵심이다.


어떤 길을 가던 그 사람이 새로운 길에 도전한다는 것은 무척이나 두렵고 어려운 일이다. 누군가는 남이 증명한 길을 가지 왜 사서 고생하느냐고 질책도 할 것이고, 좀 더 쉬운 길에서 좀 더 쉽게 살자며 회유하기도 할 것이다. 그럼에도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 나간다는 것은 기존의 시대를 닫고, 새로운 시대를 시작한다는 시대적 소명의식의 발현이 아닐까 싶다.



이 시대에서 대항해시대를 열기 위해 도전하는 모든 엔히크들,

그리고 그를 응원하는 사람들,

이사벨 여왕, 무적함대, 엔히케, 지중해, 콜럼버스의 신대륙발견 등 흩어진 단어들로 대항해시대를 알고 있는 사람들,

대항해시대를 플레이하며 밤을 지새운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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