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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Nov 24. 2022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다르다 (2)

밀란 쿤데라 <커튼> &  노아 루크먼 <플롯 강화>

드라마 <공항 가는 길>(2016), <밥 잘 사 주는 예쁜 누나>(2018), <봄밤>(2019)에는 커다란 공통점이 있다. 여자 주인공이 모두 삼십 대 중반(35세 혹은 36세)이며 한창 직장 생활을 열심히 하고 있고 인생의 대혼란기가 새로운 사랑과 함께 찾아온다는 점이다. 이 혼란기에 세 인물 모두 어떤 의미에서든 '용기'를 내게 되고, 그 과정을 겪으며 인물들은 '변화'한다. 변화의 여정은 소위 땅바닥을 친다고 하는 하강, 곧 추락을 동반한다. 인물들은 추락을 겪으며 성장한다.

[참고] 관련된 이전 글
공항 가는 길, 인생의 '두 번째 사춘기'
봄밤, 사랑에 빠진다는 추락
 밥 잘 사 주는 예쁜 누나, 성장과 금기의 위반

앞 글에서 살펴본 밀란 쿤데라의 책을 적용하여 생각해 본다면, 이 나이는 '그럴만한' 나이다. 나는 80년대 초반 여성 인물들의 삼심 대 중반을 포착한 2015년~2020년 사이의 이 드라마들을 아낀다. 인물들은 이제 40대로 접어들었다. 이 드라마들은 그 해에 가장 생생하게 담아낼 수 있는 이야기를 썼다.


나는 노아 루크먼의 책 <플롯 강화>를 나 자신의 케이스 그리고 위 세 드라마의 인물들, 요즘 읽고 있는 소설의 인물들의 경우에 대입해 가며 읽어 내려갔다. 어쩌다 보니 가장 많이 대입한 건 나 자신의 케이스다. 내 삶의 서사를 가장 디테일하게 알고 있기 때문이다.


<플롯 강화>, 노아 루크먼 지음, 신소희 옮김, 복복서가(2021)

이 책이 기대 이상으로 재미있었던 이유는 분명 글쓰기에 대해 도움을 주는 책인데,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력으로 '인간 이해'에 도움을 준다는 점이다. 소설 쓰기(글쓰기 전반에 적용될 수 있는 내용들이지만, 메인은 소설)는 어쩌면 인간 쓰기에 다름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고. 아무튼 '글 쓰는 방법'에 대한 조언은 내게 곧 '나를 이해하는 방법'으로 이어졌다. 나 또한 하나의 인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덕분에 나를 타인처럼 거리를 두고 바라볼 수 있었다.


1장~3장까지는 '인물'의 외면과 내면의 특성에 대해 어디까지 생각해봐야 하는지, 소설에서 인물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인물의 특성이 이야기 내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 등을 알려 준다. 그런데 내가 만든 인물의 특성을 그렇게나 구체적인 것까지 다 파악했더라도 그 인물은 '지금 이 순간의 그 인물'일 뿐임을 잊지 말라는 말은 인상적이었다.


진화
이제는 당신이 만든 인물의 특성을 제법 잘 파악하게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신이 아는 것은 지금 이 순간의 그 인물일 뿐임을 유념하자. 인간은 날이 다르고 해가 다르게 변화하는 존재이며, 실제로 많은 픽션의 핵심은 바로 그런 변화를 보여주는 것이다. (pp. 65-66)


'인간은 날이 다르고 해가 다르게 변화하는 존재'라는 문장에 밑줄을 그어 놓고 곱씹으니 어딘가 마음이 편해졌다. 물음표가 아니라 마침표가 놓인 문장을 보고 있으니 부유하던 생각이 차분히 가라앉고 알맹이만 또렷하게 떠오른다. 나도, 타인도 아무리 구체적인 것까지 파악했다고 생각하더라도(설령 그게 전부 사실일지라도) 그건 지금 이 '순간'의 모습일 뿐인 것이다. 사람은 날마다 해마다 변하는 존재다. 나도 변하고 타인도 변한다. 이 사실을 잊을 때 얼마나 잦은 오해가 발생하는지.


인물도, 인간도 진화한다. 목적지보다는 진화의 '여정'이 중요하며 작가의 임무는 이런 여정을 시작하고 이어갈 수 있는 인물, 즉 성숙해가는 인물을 만드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111면). 만족과 결단은 불만족과 우유부단 이후에만 올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112면). 인생도 크게 다르지 않다. 처음부터 만족하고 처음부터 대단한 결심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여정을 시작하고 이어가며 이를 통해 성숙해갈 때 점차 이를 수 있으니까.


4장의 '여정' 챕터에서는 '심오한 여정'과 '표면적 여정'을 구분한다. '표면적' 여정은 누구나 바로 알아차릴 수 있는 과정으로 관습적이며 사회에서 인정받는 성장과 진보의 표식(120면)인 반면, '심오한' 여정은 내면에서 일어나며 알아보기가 어렵다. 저자는 심오한 여정을 세 가지로 분류하고 있는데 1) 타인에 대한 인식 2) 자기 인식 3) 인식에 근거한 행동이다.


이 챕터를 읽으면서 내가 지난 몇 년간 겪어온 '내면의 변화'가 자기와 타인에 대한 인식, 그리고 인식에 근거한 행동의 변화로 이어지는 종류의 여정이었음을 알게 됐다. 그간 거쳐 온 여러 단계의 특징이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정리되어 있어서 재밌었다.


심오한 여정을 거치는 인물은 자신이 어떤 사람이며 얼마나 가치 있는 존재인지를 깨닫고, 살아오면서 맺은 관계나 겪어온 일들에 대해 뉘우치고 스스로의 책임을 받아들인다. 동시에 자신의 선을 넘는 상대도 더 이상 용납하지 않는다. 이와 같은 ‘인식'에서 비롯되는 ’행동의 변화'는 가장 강력한 여정으로 이 인물은 예전과는 완전히 달라져서 스스로에게 조차 낯선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이들은 살아오면서 맺은 관계들에 대한 자신의 책임을 받아들인다. 이 단계에 이르면 인간관계를 새롭게 규정하고 선을 넘는 상대를 용납하지 않게 된다. 다른 사람들은 그가 원하는 바에 따르거나 아니면 그에게서 떠나야 한다. 그는 자신이 어떤 사람이며 얼마나 가치 있는 존재인지 깨달은 것이다. 인간 사회에서 뉘우침은 왜 그토록 중요할까? (..) 뉘우친다고 무엇이 달라지는가? 많은 사람들이 매우 큰 차이가 생긴다고 믿는다. 뉘우친다는 것은 자기 인식의 여정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114)


가장 강력한 여정은 역시 인식에 근거한 행동이다. 이런 여정을 마친 인물을 예전과는 완전히 달라지며 심지어 스스로에게도 낯선 사람이 된다. 그렇게 때문에 변화의 가능성이 있는 인물을 만드는 일이 중요한 것이다. 신념은 정체성과 함께 온다. 자신의 신념을 바꾸고 새로운 신념에 따라 행동하기만 하면 그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 (..) 이를 통해 우리는 인간이란 얼마나 손쉽게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는지 깨닫게 된다.(116-117)


'표면적 여정'에는 연애, 부의 획득, 우정, 신체의 변화, 지위 등 일곱 가지가 있다. 저자에 따르면 표면적 여정은 심오한 여정과 쉽게 혼동될 수 있지만 사실 전혀 다르다. 표면적 여정은 인식, 정신적 , 정체성, 신념, 결심 등의 심오한 여정보다 훨씬 손쉽게 이해할 수 있다.


"역설적인 점은 내면의 심오한 여정이 오히려 사소하고 부질없어 보이기 쉽다는 것이다. 반면 집을 사는 것과 같은 표면적 여정은 더 영속적이고 확고한 것으로 여겨지곤 한다. 인생의 비극은 우리가 이런 표면적 여정에 현혹되어 그것을 심오한 여정으로 믿어버린다는 것이다. 소유물과 지위는 왔다가 사라지는 것이며, 결국 우리에게 남는 것은 내면의 여정인데도 말이다.(120면)"


표면적 여정이 심오한 여정과 어떻게 결합, 연결될 수 있는지에 대한 내용도 흥미로웠다. 삶에서도 그렇지 않나, 연애 혹은 신체나 지위의 변화 등이 표면적 변화로 그치는 경우도 있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근본적인 변화를 촉발하기도 하니까.


한편에 간직하고 있던 작은 질문 중에 이런 게 있었다. "추락 없는 성장은 없을 것인데, 모든 추락과 변화가 성장을 담보하는가?". 이 책에서는 진정한 여정과 '상황의 희생자'가 되는 것의 차이를 설명한다. 인물은 자신이 부딪힌 상황을 새로운 배움과 성장과 변화의 기회로 삼을 수도 있지만, 그 상황에서 정신적 외상을 입을 수도 있다(97면). 정신적 외상으로 절망에 빠진 인물이 자신이나 타인에 관한 깊은 깨달음에 이르러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되었다면 여정을 통과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가 별생각 없이 시큰둥하게 그 자리를 떠나 계속 예전처럼 살아간다면? 이런 경우 설사 그의 삶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해도 그는 여정을 통과하지 않았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132면)"


좋은 책들은 묻어둔 질문들을 생각나게 해 주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좀 더 깊게 생각해 볼 수 있도록 다시 질문을 던져준다. 밀란 쿤데라의 <커튼>과 노아 크루먼의 <플롯 강화>를 함께 읽게 된 건 상당히 괜찮은 페어링이었다. 두 책 모두 김영하 작가의 <말하다>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다.


저자는 마지막 챕터인 8장 '탁월함'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자만심, 수동성, 통제 욕구, 특정한 견해에 따라 글을 쓰려는 마음을 씻어버리고 모든 것을 숨김없이 드러내야 한다. 목표나 동기가 무엇이든 간에 진실하고 애정 어린 입장에서 글을 쓰려고 노력하자. 단순한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생각보다는 어려울 것이다."(252면)


시월에 다시 읽은 박완서의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세계사, 2020)의 한 구절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잡문 하나를 쓰더라도, 허튼소리 안 하길, 정직하길, 조그만 진실이라도,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진심을 말하길, 매질하듯 다짐하며 쓰고 있지만, 열심히라는 것만으로 재능 부족을 은폐하지는 못할 것 같다"(216면)


어느새 연말이다. 한해 한해 어깨에 숫자를 더해간다. 사람은 날이 다르고 해가 다르게 변화하는 존재다. 깨닫고 뉘우치고 성숙해가며 나에 대해서도 세상에 대해서도 마치 처음 태어난 것처럼 거짓 없이 진실해지길, 한 번쯤은 그렇게 제대로 살아보길. 그런 새해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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