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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Sep 17. 2023

환절기 마음 관리

외로움을 고독으로 업사이클하는 방법

환절기에 우울증 환자가 늘어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예전에 우울 장애 치료 때문에 다니던 대학병원 신경정신과 데스크에서 다음번 진료 예약 잡기가 영 쉽지 않아 물어보니 9월~10월에 갑자기 쌀쌀해지면 사람이 많이 몰린다고 했다. 예약일 잡는 데 시간이 소요되고 사람들이 여럿 기다리니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느낌학적으로 적당히 한 얘기였을지도 모르지만, ‘그럴 수 있겠다.. 이해가 되네’라고 속으로 생각했던 기억. 벌써 8년~9년 전쯤의 일이다.


지난밤 새벽 2시에 잠깐 잠에서 깼을 때 문득 가을의 두려움을 느꼈다. 몸이 좀 서늘했고 추웠다. 어제오늘 아침저녁으로 몸에 닿는 기온이 너무 가을 같았다. 그 차가운 바람이 마음을 훅 관통하는 순간, 학창 시절 개학할 때 느꼈던 기분이 순식간에 주변을 어둡게 만드는 먹구름처럼 나를 덮쳤다. 마음 한편이 서걱 베이는 느낌.


방학이 끝나고 등교하는 기분은 대부분 좋지 않았다. 방학이 그만큼 즐거웠어서라기보다는 친구들과 오랜만에 다시 만나고 적응해야 하는 것이 싫었다. 사실 교실에 금방 익숙해지고 물론 힘든 시절도 있었지만 학창 시절의 대부분을 그럭저럭 잘 지낸 편이었다. 다만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대단한 에너지 소모가 필요했다. 개학 후 한동안 교실에 들어갈 때마다 한쪽 배가 싸르르한 느낌. 그 느낌은 아직까지도 잊히지 않는다. 누가 날 보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과 동시에 누가 먼저 말 걸어줬으면 하는 마음. 나만 혼자인 기분.


여름에는 방학이 있고 휴가가 있다. 삶의 속도가 평소보다 느려진다. 여름의 뜨거운 열기에 어떻게든 버텨보자며 하루하루가 지나간다. 환절기의 서늘한 바람은 마음에 난 구멍을 쓸고 지나가며 내게 말하는 것 같다. 이제 정신 차리고 일상을 똑바로 살아야지. 원래의 템포로 ‘돌아가' 일상을 똑바로 살아야지 라며 나를 등 떠미는 느낌. 버티듯 알음알음 더위가 물러가길 기다리며 보내면 안 된다는 게, 날씨 핑계 없이 현실의 여러 일들을 대면하고 마주해야 한다는 게 두려웠던 시절이 있었다. 한 여름에 조금씩 유예되던 어떤 일들을 9월부터 본격적으로 헤쳐나가야 하는.


언제부터인가(아마도 출산 이후) 봄으로 가는 길목이 좋았다. 곧 싱그러운 초여름과 쨍한 여름이 올 테니까. 무엇보다 가벼운 옷차림이 최고의 메리트. 같은 환절기이지만 가을로 가는 길목이 되면 조금 다운이 된다. 이제 기나긴 겨울이 오겠구나. 내가 좋아하는 아침은 늦게, 저녁은 빨리 오겠구나. 어두운 시간이 더 길어지겠구나. 20대 때는 가장 좋아하는 계절로 늘 가을, 겨울을 얘기했었다. 가을 특유의 거리 분위기와 선선한 날씨에 꼭 맞는 스카프, 가디건을 좋아했다. 도시의 코끝 시린 차가운 겨울 공기에 설레었다. 사람이 이렇게 변한다.


좋은 점도 있다. 겨울이 오면 새벽도 길어진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 오롯이 홀로여서 좋은 시간. 어쩌면 겨울은 여름보다 포근하고 따뜻할 것이다. 살이 데일 듯 뜨겁지 않은, 부드럽고 따스한. 언제 이렇게 빨리 왔나 싶어도 매번 결국엔 마음 설레는 성탄절과 연말의 분위기. 10월 말부터는 집에서 재즈 캐럴을 틀어놓으면 되고, 11월에는 아이와 함께 트리를 만들면 되고, 12월에는 성탄예배를 드리고, 세 식구 홈파티를 위한 식사 메뉴를 즐겁게 만들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먹으면 될 것이다. 1월은 연초의 기운이 그래도 좀 지속되고, 문제는 사실 2월 무렵의 겨울인데.. 이때가 고비다. 겨울이 참 길게 느껴지는 시기. 이 어둠에 끝이 있나 싶은 때.


달력을 보니, 명절이 있다. 구정을 보내고 나면 다시 봄기운을 미세하게나마 느낄 수 있는 톤으로 공기가 서서히 바뀔 것이고 다시 완연한 봄이, 이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초여름이, 초록과 소리가 무성해 눈과 귀를 꽉 채우는 여름이 한아름 올 것이다.


환절기에는 마음을 선제적으로 잘 챙기자. 내 몸과 마음을 따뜻하고 포근하게 할 수 있는 시간들로 아기자기하게 가을을 채워보자. 가을도 겨울도 따뜻하게 보내보자. 겨울은 사실 더 춥게 즐기는 방법도 많은데 그런 것들도 안 하겠다는 건 아니지만 본격적으로 뛰어드는 건 아이가 다섯 살이 되는 내년 겨울부터 해볼 생각이다.


어쩌면 ‘글을 쓸 기분’이라는 것도 환절기와 함께 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단단한 마음으로 무언가를 써 내려가기도 하지만 바스락거리는 마음이 '쓸 기분'을 만들기도 한다. 나의 마음 곳간을 채우고 나의 외로움을 고독으로 업사이클하는데 어쩌면 가장 효과적인.


(2023. 09. 01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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