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이가 감사의 여운이 가시기 전에 ‘고맙습니다’라고 말했으면 좋겠다
독일의 작가 안톤 슈낙(Anton Schnack)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라는 수필이 있다. 오래전이지만,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글은 이렇게 시작한다. ‘울고 있는 아이의 모습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사실이다. 아이가 울고 있을 때 보통 사람의 마음은 아이가 애처롭고 안타깝기 마련이다. 그래서 슬프다. 작가를 슬프게 하는 것은 아이 만이 아니었다.
‘정원의 한 모퉁이에서 발견된 작은 새의 시체 위에 초가을의 따사로운 햇빛이 떨어져 있을 때. 대체로 가을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동물원의 우리 안에 갇혀 초조하게 서성이는 한 마리 범의 모습 또한 우리를 슬프게 한다. 달리는 기차 또한 우리를 슬프게 한다. 어스름 황혼이 밤으로 접어드는 즈음에 불을 밝힌 창들이 유령의 무리처럼 요란스레 지나가고, 어떤 어여쁜 여인의 얼굴이 창가에서 은은히 웃고 있을 때.
하지만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이 어찌 이것 뿐이랴. 오뉴월의 장의행렬(葬儀行列). 가난한 노파의 눈물, 거만한 인간. 비이올렛색과 검정색, 그리고 회색의 빛깔들. 둔하게 울려오는 종소리, 징소리. 바이올린의 G현. 가을 밭에서 보이는 연기. 산길에 흩어져 있는 비둘기의 깃. 자동차에 앉아 있는 출세한 부녀자의 좁은 어깨. 유랑가 극단의 여배우들. 세 번째 줄에서 떨어진 어릿광대. 지붕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 휴가의 마지막 날. 사무실에서 때묻은 서류를 뒤적이는 처녀의 가느다란 손. 만원의 밤, 개짓는 소리. 크누트 함순의 두세 구절. 굶주린 어린아이의 모습. 철창 안으로 보이는 죄수의 얼굴. 무성한 나뭇가지 위로 내려앉는 하얀 눈송이 – 이 모든 것 또한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이다.’ _안톤 슈낙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차경아 옮김, 문예출판사.
뜬금없이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에 대한 생각이 솟구친 것은 나의 눈(目)카메라 앵글에 잡힌 한 광경 때문이었다. 그 장면은, 바로 고마움이 슬픔이 되는, 역설이었다.
운동을 마치고 아파트 지하 주차장을 걸어 집에 가고 있었다. 105동 현관 옆에서 1톤 탑차를 세워놓고 짐칸에서 열심히 짐을 내리는 사람의 뒷모습이 보였다. 화물차의 외관 도색으로 금세 택배 차량임을 알 수 있었다.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저녁 9시를 훌쩍 넘기고 있었다. 안타까운 마음이 무엇에 눌린 듯 깊은 한숨이 발끝으로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현관 문 앞에 놓여있는 택배 상자. 누구든 물건은 가져다 놓은 사람보다는 도착한 물건에 집중한다. 무게는 생각 않고 있다가 택배상자를 들어올리면서야 ‘무겁네!’를 느낀다. 현관에서 집 안까지 불과 몇 미터에 불과한데도 그렇다.
그런데 거기까지가 끝이다. 항공기로 치면 추가 비용을 지불해야 할만큼의 무게를 번쩍 드는 택배가 있어도 택배기사의 노고와 고생쯤은 택배비의 대가라고 여기고 만다. 택배를 받는 것이 일상이 된 요즘, 택배의 도착을 우리는 너무 당연시하고 있다.
부캐릭터(부캐)로 택배기사를 하고 있는 정지형 작가. 그가 쓴, 어느 소설가의 택배일지라는 카피가 달린 에세이 <문밖의 사람>을 읽었을 때다. 책은 모두 읽고 한참 동안 소설가와 택배를 떠올렸다. 작가와 택배기사라는 직업의 불균형을 생각했고, 작가의 수입을 생각했고, 택배기사의 고난을 생각했다.
‘택배는 거제도에서 처음 시작했다. 일요일이면 종일 타티아나 리즈코바의 기타 연주를 들었고, 매일 아침 여섯 시에 일어나 일곱 시부터 일을 시작하면, 새벽 두세 시에 들어왔다. 밤을 세우고 일한 후 바로 출근한 적도 많았다. 그렇게 1년을 살았다. 하루 쉬는 일요일도 전날의 물량이 남아 오전에 배송을 하고 집으로 들어오는 날이 흔했다. 매일 매일이, 살아가는 게 아니라 살아내는 기분이었다.’
‘화를 내지 않게 된 계기는 하나 더 있는데 아파트 배송을 하고 나올 때의 일이다. 엘베가 하나인 경우 문 사이에 택배를 놓고 잡아서 배송할 수밖에 없는데 이 경우 1층으로 나올 때 욕을 먹는 일이 많다. 그날도 다르지 않았다. 삼십 대 초반의 남자가 술에 취한 채로 문이 열리자마자 말을 건넸다.
“야, 이 개새끼야.”
‘깜짝이야.’ 싶었지만 멱살을 잡진 않았다. 평소라면 그랬겠지만. 얼핏 본 그 남자의 모습이 그날따라 안쓰러웠기 때문이었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화를 내다 내다 지쳐서겠지. 평소 같으면 ‘야 이자식아, 여기 주민보고 택배를 시키지 말라고 그래. 왜 날 붙잡고 지랄이야?’라고 했겠지만 그날은 대뜸 이렇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피곤하실 텐데 본의 아니게 민폐를 끼쳐드렸습니다.”’
정지형 작가는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소설쓰기와 택배 노동을 병행하면서 비로소 삶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나는 책을 읽은 후 택배기사의 삶은 ‘택배상자 무게의 1g 정도에 해당하는 고마움’의 표현보다 ‘진상’의 손님이 없었으면 바라는 것 같았다.
요즘은 고마운 일들이 기사가 되는 세상이다. 택배기사에게 마실 음료나 간식을 건네는 이야기가 뉴스가 된다. 휴가 군인의 밥값이나 커피값을 대신 내주는 사람의 이야기가 신문의 사설을 장식한다.
우리는 고마운 것들을 잊고 지낸 것은 아닌가 싶다. 군인과 택배기사뿐 아니라 고마운 일들에 대하여 ‘고맙다’고 인사 정도는 나눌 수 있는 세상이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에 서 있을 때 건너가라며 잠깐 멈추어주는 운전자가 고마워 목례하며 지나가는 아저씨. 시내버스 안에서 자신이 앉고 있던 자리를 노약자에게 선뜻 내주는 학생. 함박눈을 맞고 걸을 때 작은 우산 한 켠을 내주는 아가씨. 키오스크에서 안절부절하는 어른의 주문을 해결해주는 청년. 버스카드의 잔액이 부족해 안절부절하는 아주머니의 차비를 내주는 아저씨. 대합실에서 엄마의 뒤를 쫓으며 아장아장 걸어가는 아가에게 눈인사를 보내는 할머니. 이 모두가 우리를 고맙게 하는 것이다.
고마움의 감정이 사그라들지 않고 날숨처럼 불쑥불쑥 내어주는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모든 고마운 일들이 고맙고 고맙다고 말하는 그들이었으면 좋겠다.
여행을 떠난 아내를 대신해 며칠 동안 남은 가족들의 식사를 챙겨야 했다. 음식을 만드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필요한 것을 찾는 것도, 식탁을 차리는 것도 난감했다. 세탁기를 돌리는 것도, 건조기에서 나온 빨래는 개는 것도 난해했다. 끼니 후 바로 다음 끼니를 걱정하고, 설거지를 뒤로 미루고, 음식을 남기지 말라고 애걸하고. 아내의 몫이라고 생각해서 고마움을 전혀 몰랐다. 비로소 아내한테, 어머니한테, 고마움이 벅차오름을 경험했다.
많은 사람이 감사의 여운이 가시기 전에 ‘고맙습니다’라고 자주 말했으면 좋겠다. 이제 나는 ‘고마워’와 ‘고맙습니다’를,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보다 더 자주 입에 올릴 수 있게 됐다. 세상에는 고마운 일들이 가득하다. 고마운 일들을 만들어주는 사람이 고맙고, 그래서 고맙다고 말하는 사람이 고맙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