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마음 먹기에 달려 있다는 말은 오해였다
행복도 연습하면 행복해진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오래 전의 신문기사였다. 기사를 읽고 생각만 했을 뿐 연습은 해보지 않았다. 행복이라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행복심리학자인 서은국 연세대 교수는 행복은 마음 먹기에 달린 일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서 교수는 현대인은 행복과 관련하여 많은 오해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의 저서 <행복의 기원>을 손에 들고 서 교수와 대화를 나눠보고 싶었다.
이 책은 모두 9개의 챕터로 구성돼있다. 챕터 가운데 기존의 생각을 바꾸게 한 내용을 추려보았다.
chapter 1_ 행복은 생각인가
행복은 본질적으로 '생각'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생각을 고치라고 조언하고 있다. 이런 식의 행복 지침서를 읽고 행복해지기란 불가능하다.
왜 생각을 바꾸는 것만으로는 행복해지기 어려운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렇다. 행복은 사람 안에서 만들어지는 복잡한 경험이고, 생각은 그의 특성 중 아주 작은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뜻대로 쉽게 바뀌지도 않지만, 변한다고 해도 그것은 여전히 전체의 작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_ 16쪽
행복을 소리라고 한다면, 이 소리를 만드는 악기는 인간의 뇌다. 이 악기가 언제, 왜, 무슨 목적으로 소리를 만들어내는지를 알아야 행복에 대한 감을 잡을 수 있다._ 28쪽
chapter 2_ 인간은 100% 동물이다
논문과 책들을 읽어볼수록 인간은 지능이 높을 뿐 타조나 숭어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은, 100% 동물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인간도 동물인데, 이 동물은 왜 행복을 느끼는 것일까?'
진화론은 현재 심리학에 막대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그런데 이 새로운 물결에 이상할 정도로 반응을 보이지 않는 연구자들이 한 부류 있다. 행복을 연구하는 사람들이다. 대부분의 서양학자들은 진화론과 대조적 시각을 가졌단 한 철학자의 영향력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다._ 41쪽
chapter 3_ 다윈과 아리스토텔레스, 그리고 행복
아리스토텔레스는 일찍이, 행복은 삶의 궁극적인 목적이라고 단언했다. 행복을 뭔가를 위한 수단이나 도구가 아니라, 모든 인생사가 향하는 최종 종착지로 보았다. 이 철학적 관점이 빚어낸 행복의 모습이 2천 년간 큰 흔들림 없이 유지돼왔고, 이것은 여전히 많은 사람이 행복에 대해 갖고 있는 시각이다.
그러나 이 오랜 관점과 진화론은 정면 대립된다. 앞서 보았듯 진화론적인 관점에서 인간의 모든 특성은 생존을 위해 최적화된 도구다. 밀러에 의하면, 신체적 특성뿐아니라 고차원의 정신적은 특성도 이 '생존 도구'의 역할을 한다._ 58쪽
chapter 4_ 동전탐지기로 찾는 행복
인간은 행복해지지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만들어진 동물이다. 조금 더 냉정하게 표현하자면 인간은 생존 확률을 최대화하도록 설계된 '생물학적 기계'고, 행복은 이 청사진 안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_ 64쪽
우리 뇌도 동전탐지기처럼 뭔가를 찾도록 해주는 역할을 한다. 무엇인가 손에 쥐기 위해서는 그것을 찾으려는 의욕이 필요하고, 또 그 목표물에 얼마나 접근했는지를 알려주는 신호가 필요하다. 우리 뇌가 발생시키는 쾌감이 바로 그 두 가지 기능을 한다. 행복한 사람은 쉽게 말해 이 쾌감 신호가 자주 울리는 뇌를 가진 자다. 동전탐지기의 신호가 아무 때나 울리지 않듯 행복전구도 선별적으로 켜진다._ 77쪽
chapter 5_ 결국은 사람이다
사람이라는 동물은 극도로 사회적이며, 이 사회성 덕분에 놀라운 생존력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그의 뇌는 온통 사람 생각뿐이다. 희로애락의 원천은 대부분 사람이다. 또 일상의 대화를 엿들어보면 70%가 다른 사람에 대한 이야기라고 한다._ 96쪽
지난 30년간 과학적인 연구를 통해 행복에 대해 많은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중 가장 중요하고도 확실한 결론은 무엇일까? 긴 시간 행복을 연구한 사람으로서 고민을 해보았다. 내 생각에는 두 가지다.
첫째, 행복은 객관적인 삶의 조건들에 의해 크게 좌우되지 않는다. 둘째, 행복의 개인차를 결정적으로 좌우하는 것은 그가 물려받은 유전적 특성,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외향성이라는 성격 특질이다._ 98쪽
chapter 6_ 행복은 아이스크림이다
스칸디나비아 행복의 원동력은 넘치는 자유, 타인에 대한 신뢰, 그리고 다양한 재능과 관심에 대한 존중이다. 그들 사회는 돈이나 지위 같은 삶의 외형보다 자신에게 중요한 일상의 즐거움과 의미에 더 관심을 두고 사는 곳이다._108쪽
그렇기 때문에 복권 당첨 같은 일확천금의 경험은 장기적인 행복의 관점에서 보면 저주가 될 수 있다. 실제로 위로 복권 연구에서 보면, 복권에 당첨된 자들의 행복더듬이는 둔해진다. 복권 당첨 후 그들은 TV 시청, 쇼핑, 친구들과의 식사 같은 일상의 작은 즐거움에서 이전 같은 기쁨을 더 이상 느끼지 못했다. 큰 자극의 후유증이다._ 110쪽
결국 행복은 아이스크림과 비슷하다는 과학적 결론이 나온다. 아이스크림은 입을 잠시 즐겁게 하지만 반드시 녹는다. 내 손 안의 아이스크림만큼은 녹지 않을 것이라는 환상, 행복해지기 위해 인생의 거창한 것들을 좇는 이유다.
하지만 행복 공화국에는 냉장고라는 것이 없다. 남는 옵션은 하나다. 모든 것은 녹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자주 여러 번 아이스크림을 맛보는 것이다._ 125쪽
chapter 7_ '사람쟁이' 성격
구체적인 이유야 무엇이든 외향성은 한마디로 ‘사람쟁이’ 성격이다. 외향성이 높을수록 타인과 같이 있는 시간을 좋아하고, 또 그들(특히 이성)이 자기를 좋아하도록 만드는 데 타고난 재주가 있다. 그래서 그들은 첫경험 시기도 빠르고, 경험 상대도 많다._ 139쪽
외향성은 지난 30년간의 연구에서 행복과 가장 관련 깊은 특성임이 밝혀졌다. 외향성은 도시의 기온을 좌우하는 위도와 비슷하다. 적도에 가까운 홍콩이 베를린보다 연간 일조량이 많고, 이 때문에 연평균 기온이 높다. 외향성은 일종의 ‘사회성 위도’다. 이 값이 높을수록 사회적 관계의 양과 질이 높고, 바로 이 점이 행복에 절대적 기여를 한다._
햇빛이 모든 도시의 기온을 높이듯, 사회적 경험은 개인이 가진 선천적 기질과 무관하게 행복과 관련 있다는 점도 중요하다. 이것이 지금까지 행복 연구의 큰 결론이다._ 150쪽
레바논 속담에 “사람이 없다면 천국조차 갈 곳이 못 된다.”고 필자는 말한다. 결국 행복은 사람을 통하야 느낄 수 있다는 것을 말함일거다.
chapter 8_ 한국인의 행복
행복감을 예측하는 가장 중요한 문화적 특성은 개인주의다. 소득 수준이 높은 북미나 유럽 국가들의 행복감이 높은 이유도, 사실은 상당 부분 돈 때문이 아니라 유복한 국가에서 피어나는 개인주의적 문화 덕분이다. 그래서 개인주의적 성향을 통계적으로 제거하면, 국가 소득과 행복의 관계가 거의 소멸된다. 즉, 개인주의는 국가의 경제 수준과 행복을 이어주는 일종의 ‘접착제’ 역할을 한다._ 160쪽
행복은 나를 세상에 증명하는 자격증을 취득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잣대를 가지고 옳고 그름을 판단할 필요도 없고, 누구와 우위를 매길 수도 없는 지극히 사적인 경험이 행복이다._ 170쪽
과도한 물질주의는 행복에 치명적인 결과를 준다. 행복전구를 가장 확실하게 켜지도록 하는 것이 사람이라고 했다. 하지만 행복해지기 위해 돈에 집착할수록, 정작 행복의 원천이 되는 사람으로부터 멀어지는 모순이 발생한다._ 174쪽
그러나 중요한 전제조건이 있다. 친구가 무조건 많은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몇 명의 '진짜 친구'가 있는지가 중요했다. 만남의 양보다 질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자유감의 중요성이 또다시 등장한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만나는 사람들보다 만나고 싶어서 만나는 사람들이 많아야 한다._ 176쪽
여기에 한 가지를 더하면 좋겠다. 각자 자기 인생의 '갑'이 되어 살아보는 것에 좀 더 익숙해지는 것이다. 세상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보다 내 눈에 보이는 세상에 더 가치를 두는 것이다._ 178쪽
알베르 카뮈는 이런 말을 했다. "행복해지려면 다른 사람을 지나치게 신경쓰지 마라."
chapter 9_ 오첨의 날로 행복을 베다
과학자들이 쓰는 용어 중에 '오컴의 면도날Occam's razer'이라는 표현이 있다. 14세기 영국의 논리학자였던 오컴의 이름에서 탄생한 이 용어는 어떤 현상을 설명할 때 필요 이상의 가정과 개념들은 면도날로 베어낼 필요가 있다는 권고로 쓰인다. 사고의 절약을 요구하는 이 원리는 좋은 과학 이론의 기본 지침이다._ 182쪽
행복한 사람들을 오랜 시간 추적한 연구들을 보면 행복한 사람일수록 미래에 더 건강해지고, 직장에서 더 성공하며, 사회적 관계도 윤택해지고, 더 건건강한 시민의식을 갖게 된다.
이런 연구들에서 어떤 사람을 '행복한 사람'으로 정의했을까? 남의 칭송과 칭찬을 받으며 사는 사람이 아니라, 일상에서 긍정적인 정서(기쁨 등)를 남보다 자주 경험하는 사람이다. 즉, 우리가 온갖 오명을 씌우는 쾌락주의자들의 모습이다. 하루를 보면 이들의 삶이 조금 어설퍼 보일지 몰라도, 10년 뒤는 이야기가 다르다._ 188쪽
저자는 행복은 거창한 관념이 아니라 구체적인 경험이라고 강조한다. 행복은 쾌락에 뿌리를 둔, 기쁨과 즐거움 같은 정적 정서들이라는 것이다. 이런 경험은 본질적으로 뇌에서 발생하는 현상이기 때문에, 철학이 아닌 생물학적 논리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한다.
또 저자는 행복에 대한 이해는 곧 인간이라는 동물이 왜 쾌감을 느끼는지를 이해하는 것과 직결된다고 한다. 인간만큼 쾌감을 다양한 곳에서 느끼는 동물은 없다. 쇼팽과 세익스피어도 우리에 즐거움을 준다. 그러나 가장 본질적인 쾌감은 먹을 때와 섹스할 때, 더 넓게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온다. 진화의 여정에서 쾌감이라는 경험이 탄생한 이유 자체가 두 자원(생존과 번식)을 확보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행복의 핵심은 한 장으로 사진으로 담는다면, 저가는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음식을 먹는 장면이라고 했다. 그래서 행복과 불행은 이 장면이 가득한 인생 대 그렇지 않은 인생의 차이라고 한다.
서은국 교수는 "행복하려면 가족, 친구와 산책 나가고 수다 떠는 경험을 매일 하라."고 했다. 저자는 "인생은 쇼가 아니다"라고 한다. 인생이 쇼가 되면 승산이 없다는 것이다.
행복도 불행도 결국 사람을 통한다. 행복은 크지도 작지도 않다. 거창하지도 않다. 그래서 저자는 어느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걸까. "개인적으로는 굳이 먼 곳에서 행복을 찾을 필요가 없다. 뒷사람 들어올 때 웃으며 문을 잡아주는 작은 경험만 쌓아도 서로의 행복도를 높일 수 있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