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과 두려움이 있다면 조명의 빛을 쏘아주자...
노래를 제법 했다. ‘제법’이 ‘잘’ 불렀다는 의미보다는 ‘많이’ 불렀다는 것을 뜻한다. 회사생활을 할 때 술자리를 마치고는 노래방에 가는 것이 당연코스였던 시기가 있었다. 수년 전 일이다. 봄비가 내리는 어느 날, 우리 일행은 조직의 최고 보스와 술자리를 마치고 노래방에 갔더랬다.
보스의 “선곡을 하라”는 재촉에 마지못한 척을 하며 평소 좋아하는 노래 한 곡을 골라 도우미 역할을 하던 후배한테 번호를 불러주었다. 잠시 후 반주가 나오고 좁은 공간이 이내 어두워지면서 울긋불긋 조명들이 명멸하기 시작했다. 이어 오렌지 빛깔의 핀 조명이 노래방 기계 앞쪽을 비췄다.
노래가 시작되자 구성지게 1절을 불러제꼈다. 간주곡이 흘러나오는 순간이 됐다. 사운드가 식지않아 여전히 시끄러운 상황에서 보스가 마치 방백처럼 한 마디를 했다. 그의 말은 이내 나의 귓속으로 빨려 들어왔다.
“노래를 잘 하는 사람이 일도 잘 하는 법이야!”
우리 조직에 이런 법이 있었나? 나는 2절을 준비하면서 보스가 했던 말을 머리 속에서 계속 분석했다. 혹시나, 노래를 잘하면 지속가능한 직장생활을 영위할 수 있겠다 싶었다.
2절을 부르면서도 ‘나는 노래를 못해서 일도 못하는 사람일까?’ 아니면 ‘노래를 잘 해 일도 잘하는 사람일까?’라는 생각에서 헤어나지를 못했다. 이런저런 혼란함 속에서 무사히 노래를 마쳤다. 자리에 돌아온 나는 좋은 게 좋은 거라고, 후자라고 여기기로 했다.
나는 지금도 그 당시의 보스를 가끔 만나 소주잔을 기울인다. 어느 날에는 노래방까지 가곤한다. 여전히 노래를 부르라는 것으로 봐선 내가 내린 결론이 맞는 것 같다.
남들은 전혀 관심을 두지 않을 이야기를 뜬금없이 소환한 것은 조명, 바로 빛의 힘 때문이다. 노래방의 작은 공간에서 사이키델릭한 조명에 고무돼 노래했던 기억 가운데 오렌지빛은 노래의 풍미를 올려주는 MSG였다.
그래서 그 때의 일이 ‘반짝 스타’의 느낌으로 여전히 남아있다. 노래 후 바로 좋은 평가를 받는 오디션 프로그램처럼 말이다. 모두가 나를 바라보고 있는, 관객은 없어도 무대는 있는, 그런 곳에서 노래를 불렀던 그 5분 동안 조명이 나를 비췄고, 관객들은 나를 바라보았고, 보스는 나를 평가했다. 이런 생각의 되새김은 나이가 주는 모자람일지도 모르겠다.
나이가 들어감은 확실히 맞다. 누구나 나이를 거스를 수 없으니까. 그래서 나이를 먹는 것이 익어가는 것이라고 했나. 노사연의 노랫말처럼 말이다.
어느 순간부터 트로트가 좋아지고 국악에 끌렸다. 지금은 프로그램이 종료됐지만 MBN의 현역가왕이나 TV조선의 미스트롯3가 인기를 얻은 것은 그만큼 우리나라가 늙어가고 있다는 사회현상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시청률이 꽤 높았던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에 관심을 갖고 본방을 사수했고, 트로트 위주로 플레이리스트를 정리했다.
두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한 가수들은 오랜 연륜의 무명가수였건 무대 경험이 없는 일반인이었건 환한 조명이 비추는 무대에서 떨고 있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다. 관객 앞에서 대낮보다 더 밝은 조명이 비추어지니 누구든 긴장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실력보다는 조명이나 카메라를 두려워하지 않는 초강심장을 갖고 있으면 좋은 결과를 내기도 한다.
조명발 무대와 관객들의 시선에 익숙한 가수가 그럴진대,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은 조명을 받아볼 일이 없으니 더하면 더할 것이다. 밝은 빛이 자신에게 집중되면 두려울 정도일 것이다.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은 언제 조명 아래 서 있게 될까? 아마 결혼식장에서 혼주로서, 회갑이나 고희연, 팔순 잔치의 주인공 자리에서가 아닐까 싶다. 아니면 노래방의 조명발 아래에서나. 사람들은 자신을 비추는 빛을 경험해본 적이 거의 없다.
그간 빛을 받을 일이 없었던 사람들이 매일 쏟아지는 햇빛을 자신의 조명으로 여기면서 살았으면 좋겠다. 인공조명만큼 화려하지는 않아도 자연스러운 빛을 조명으로 받아 삶의 주인공이 되어 자기 자신에게 조명처럼 비추었으면 한다. 행여 조명을 받을 일이 생기어도 자신을 비추어주는 빛이 어색해하지 않도록 말이다.
이제부터라도 ‘나는 조명을 받는 주인공’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아가면 어떨까. 조연으로만 살다 보면 어느 순간 후회가 엄습하는 때를 만나게 된다. 그러한 날이 오면 주연으로 만들어주었던 그들도 후회라는 번뇌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조명은 박수를 부른다. 조명은 주목을 받게 만드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조명이 자신에게 비추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당신의 삶이, 당신의 노력이, 당신의 희생이, 모두 조명의 값으로 지불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윤슬이라는 단어를 참 좋아한다. 윤슬은 햇빛이나 달빛에 비치어 반짝이는 잔물결을 의미한다. 일렁이는 물결이 빛에 의하여 반짝이는 것이다. 우리의 삶 역시 윤슬처럼 반짝이어야 한다. 그러려면 빛이 필요하다. 빛과 멀리 떨어져 있으면 윤슬은 일어나지 않는다.
조명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늘상 우리는 태양이라는 세상에서 가장 큰 조명을 받고 있다. 햇볕이라는 조명이 무대 아래에 있는 자신들에게 빛의 은혜를 내려주고 있다고 믿기로 하자. 우리가 조명을 받는 것에 익숙해야 나중에라도 빛을 나눠줄 수 있다.
보통 사람은 조명을 생각하지 않고 살아온다. 지금 이 순간에도 태양이라는 조명이 우리를 비추고 있다. 그 멋진 조명 아래 우리는 빛을 내고 있다. 그 빛이 조명인지 모르고 있을 뿐이다. 이제, 우리 인생에 빛을 비추어보자. 걱정과 두려움이 있다면 조명의 빛을 쏘아주자. 인생도, 불편한 생각들도 조명 빛으로 환해질 것이다. 자신에게 조명이 비추어지면 씨익 하고 웃어주자. 조명발을 잘 받아야 우리 인생이 윤슬처럼 빛이 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