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사진의 주인공은 반드시 ‘나’이어야 한다
푹푹 찌는 여름날, 소나기가 간절했다. 그렇게 폭염의 고문에 시달리고 있을 즈음 막내 여동생이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 사진을 열어 확대해보니 사진걸이 줄에 여러 장의 사진들이 집게로 깨물려 걸려있었다. 빨랫줄에 널려진 낡은 옷들처럼 포토 행거에 걸려있는 사진들은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 있었다.
3년 전 가족 곁을 떠난 엄마 사진이 두 장, 37년 전 너무 빨리 하늘나라로 이사해버린 누나 사진이 두 장, 곁을 떠나 독립한 하나뿐인 아들 사진과 직계 가족이 함께 찍은 사진이 몇 장. 동생의 독사진은 없었다. 사진을 보고 있는데 동생으로부터 다시 카톡이 왔다. “예쁘지?”
집안 식탁 옆쪽 벽에 걸어 놓았다는 사진 속 주인공은 동생이 아니었다. 주인공은 동생이 좋아하고 그리워하는 사람들이었다. 50대 중반의 여자 혼자의 몸으로 힘들게 생활하고 있는 동생은 본인보다는 가족사진을 보면서 힘을 얻는구나, 싶었다.
그러고는 드러내놓고 자랑할만한 인생 사진 한 장 없는 동생의 삶이 안쓰러웠다. 사진을 걸어놓고, 그 사진 속에서 삶의 의미와 기쁨을 찾는 동생. 나는 울컥해져 눈을 감았다.
아주 오래전 나왔던 광고 하나가 죽어있던 기억 속에서 살아났다. 시기로는 2000년대 초반이었다. 한 회사의 기업홍보용 텔레비전 광고였다. TV 화면에 오랜 세월에 누렇게 변색한 인물 사진들이 연이어 나온다. 빛이 바랜 것만큼 의상이나 헤어 스타일이 촌스럽게 보이는 사진들이다. 화면 속 사진들은 사라지듯 바뀌고 이내 내레이션이 나온다. 잔잔하게 들려오는 음성으로, 목소리가 전달하는 메시지는 이랬다.
‘외모에 자신이 없거나 카메라 울렁증이 있어서 이 땅의 아버지들이 사진 속에 없는 건 아니다. 가족을 위해 늘 사진 밖에 계셨던 아버지. 아버지, 당신이 행복입니다.’
2009년 광고였는데, 그해 서울대 소비자학과 김난도 교수가 중심이 되어 ‘서울대 소비트렌트분석센터’에서는 <트렌드 코리아 2009>라는 단행본을 발행한다. 그 책 속에는 이런 내용이 들어있다.
‘아빠 같은 엄마, 엄마 같은 아빠(Alpha-Mam,Beta-Dad)가 늘고 작은 행복의 소중함을 되새기고(Simply Humaly Happily) 활력과 웃음을 잃지 않기 위해 취미에 몰두하면서(Hobby-holic) 전반적으로 사람들의 취향이 고급화된다(Casual Classics).’
<트렌드 코리아>는 해마다 대한민국의 소비트렌드 전망을 내놓으면서 매번 베스트셀러가 되는 책이다. 발행 첫 해인 당시, 가족과 엄마, 아빠에 대한 가정 내 포지션의 변화를 예측한 내용을 담았다고 할 수 있다. 고정화된 부모의 역할이 향후 달라질 것이라는 작은 추정이었다.
광고는 시대적 사회현상을 놓치지 않았고, 상당한 홍보 효과와 함께 사람들에게 잔잔한 반향을 일으켰다.
이와 유사한 광고는 일본에서 먼저 나왔다. 1983년 일본의 유명한 카메라 회사의 인쇄 광고는 이랬다. 광고 속에는 엄마가 아가를 안고 있다. 엄마는 환하게 웃으며 어린 아가의 얼굴을 사랑스럽게 바라본다. 모노톤으로 사랑을 표현한, 조금 심플해 보이는 사진 밑에 다음과 같은 광고 카피가 붙어 있다.
‘아버지가 되면 사진을 잘 찍게 된다(父親になったら、写真はうまくなる。).’
사진을 찍고 있는 사람은 아빠일테고, 사랑하는 가족을 뷰파인더에 담다 보니 사진을 잘 찍게 된다는 서사를 광고는 전달하고 있다. 광고의 핵심 메시지는 피사체(엄마와 아가)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좋은 기술은 없음을 전하고 싶었을 것이다.
나는 지난 6월 초 결혼 30주년을 맞아 괌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 중에 ‘별빛투어’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한 호텔을 통하여 어느 공간으로 올라가니 촬영 무대가 마련되어 있었다. 그 무대 위에서 우리 부부는 밤하늘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었다. 별빛 투어라고 했지만 하늘에서 반짝이는 별들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진행자의 요청에 따라 4가지의 포즈를 취했다. 어두컴컴한 밤이었지만 우리는 꽤 민망하고 부끄러웠다. 여행 블로그에 올라온 글들을 보면, 괌 별빛투어는 인생 사진을 건질 수 있다고 나와 있다. 이윽고 사진 촬영을 마쳤다. 편집하는 시간이 필요했던지 바로 현장에서 사진을 받지 못했다.
어두운 밤 별빛 아래서 찍은 사진의 결과물이 인생 사진이라고 하니 살짝 기대했다. 약속한 날짜까지 사진이 도착하지 않았다. 여행을 주관했던 현지 가이드에게 문의했더니 몇 시간 후 카톡으로 사진이 전송되었다.
사진을 열어보았다. 마치 영화 포스터처럼 CG 작업이 훌륭했다. 없었던 별이 밤하늘에 무수했다. 푸른 빛의 밤 색깔이 네모난 사진에 가득했다. 인물보다는 포즈의 실루엣을 부각하기 위해서인지 인위적인 작업을 꽤나 한 것 같았다.
지금까지 내가 가지고 있었던 추억 사진 속 기억과 달리 전혀 접하지 못한 이국적이고 환상적인 사진이었다. 하지만 사진의 만족도는 거기까지였다. 나만의 인생 사진으로 하기에는 부자연스러웠고 낯설었다. 자연스러운 모습이 없는 사진 속에서 내 인생의 어떠한 구석도 엿볼 수 없었다. 이것은 인생 사진이 아니라 인조(人造) 사진이라고 결론지었다.
영화 ‘퍼펙트 데이즈’에서 주인공 히라야마(야큐쇼 코지)는 잠에서 깨면 이불을 정리하고 화분에 물을 준다. 세수를 하고 자판기에서 캔커피를 뽑아 자동차로 출근한다. 차 안에서 카세트테이프로 오래된 팝송을 듣는다. 도쿄 도심의 화장실 청소부가 직업인 그는 점심시간에는 필름 카메라를 가지고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을 찍는다.
아마 그가 찍고 있는 것은 ‘지금 이 순간’이라는 기록이지 않았을까? 세월은 흐른다. 우리의 인생 역시 나날이 숫자가 더해진다. 인생은 기록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기억의 한계로 ‘그 옛날’은 잊혀지고 사라진다.
소소한 행복을 들여다볼 수 있는 인생 사진이 필요한 이유이다. 그리고 인생 사진의 주인공은 반드시 ‘나’이어야 하고 말이다. 아버지가 없는 가족 사진, 가족을 위한 사진찍기로 훌륭한 사진사가 되는 아빠. 가족사진에 아빠는 없어도 아버지의 삶은 가족들로 인하여 충만해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되어서는 안 된다. 셀카라도 좋으니 자신의 인생 사진을 열심히 찍어두자. 나에게는 아직 인생 사진이라도 내세울 만한 것이 없다. 어느 장면의 기억만이 사진 대신 있을 뿐이다. 기억이 사라지면 장면도 함께 사라지겠지, 싶다.
나 역시 인생 사진을 남기기 위하여 셀카를 열심히 찍을 참이다. 그 사진을 가지고 가족들과 대화도 많이 나눌 것이다. 당신은 인생 사진이 있나요? 당신의 인생 사진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