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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고래시간 Dec 15. 2021

70대 아빠의 크리스마스 선물

며칠 전 아빠가 찾아왔다.

뜬금없이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비했다며 조금 들뜬 목소리로 선물을 꺼냈다.

70대인 아빠가 중년의 딸에게 준 크리스마스 선물은……

멜로디와 함께 눈이 쏟아지는 스노우볼 장식품이었다.

아빠에게 난생처음 받아본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다.

어린 손녀에게나 줄 선물을 다 커버린, 이제는 같이 늙어가고 있는 딸에게 주다니!

당황스러운 마음에, 지난날의 서운함까지 더해져 나는 싫은 소리부터 하고 말았다.


“이걸 왜 이렇게 비싸게 주고 샀어요. 할아버지라고 아주 바가지를 씌웠네. 내가 못살아.”


인터넷으로 알아보니 시중 판매가보다 2배 정도나 비싸게 사 왔다.

아빠는 멋쩍게 웃으며, 혼자 살고 있는 딸이 크리스마스에 쓸쓸할까 봐 샀다고 한다.

음악도 나오고 눈도 내리니 밤에 켜 놓고 있으면 덜 외롭지 않겠냐고 하신다.

나는 괜히 미안해져서 나지막이 한마디 했다.

“이쁘기는 하네.”

아빠의 크리스마스 선물




누군가에게는 사랑이 넘치고 설레는 크리스마스.

누군가에게는 축제 같은 날, 추억하고 싶은 날, 기다려지는 날.


미안하지만, 나에게 크리스마스는 사라졌으면 하는 날이다.

판타지 영화처럼 어느 날 자고 일어났더니 지구 상에서 크리스마스가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다.

아무도 그런 날이 있었다는 것조차 기억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30대까지도 크리스마스는 나에게 그런 날이었다.

미리부터 행복해하고 기대하는 사람들을 모른 척하고 싶었다. 질투했다.


지금이야 중년의 나이가 되어 그냥 빨간 날 중 하나라고 무심히 지나치게 됐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여전히 어디선가 슬픔과 불행이 10배쯤 커질 아이들을 생각하면

그냥 없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어린 시절, 아무리 양말을 머리맡에 놓고 자도 일어나면 언제나 빈 양말이었다.

밥벌이로 바쁜 부모님 대신 동생들과 크리스마스이브를 보내야 하는 날도 많았다.

차라리 크리스마스가 그렇게 화려하고 대단한 날이 아니라고 가르쳐줬다면,

기대 같은 거, 상대적 박탈감 같은 거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크리스마스가 시작되기도 전부터 온 세상이 폭죽을 터트리며 시끌벅적 노래했다.

사람들은 서서히 세뇌당했다.

선물을 주고받는 게 당연한 날, 혼자 있으면 안 되는 날, 파티하는 날, 밤새 노래 부르며 축복을 외치는 날,

사랑을 고백하는 날, 웃음이 넘치는 날……

반대로 가난하거나 외로운 사람들은 자신의 처지를 더 선명하게 마주하는 날이 된다.

자신의 불행이 갑자기 10배쯤 크게 보여서 괴로운 날,

세상에 온전히 나만 혼자인 것 같은 날, 모른 척할수록 원망만 커지는 날.


애인이 있을 때도, 친구들과 파티를 할 때도, 누군가에게 선물을 받을 때도,

더 이상 가난하지 않았을 때도, 나에게 크리스마스는 여전히 우울한 날이었다.

웃는 가면을 쓰고 마음만 가릴 뿐,

무엇으로도 우울했던 유년의 크리스마스가 지워지지 않았다.

유년의 아픈 기억들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다 잊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두통처럼 예고 없이 찾아와 나를 괴롭힌다.  


아빠의 뒤늦은 크리스마스 선물도 그랬다.

간절했던 어린 시절에는 모른 척하더니, 왜 이제 와서 이런 선물로 사람 마음을 흔들어 놓는지.

잊고 싶은 기억들을 꺼내 다시 아프게 하는지.

화가 나고, 서운하고, 억울하고, 서글펐다.

무심하게 지나갈 수 있는 올해 크리스마스가 또다시 특별한 어떤 날이 되어야 할 것만 같아서

두렵기도 했다.


아빠가 가신 후, 선물을 거실 한쪽에 놓아두고 며칠째 모른 척했다.

그러다 오늘 스노우볼에 전원을 켜고 눈 내리는 풍경을 한참 바라보았다.

눈이 쏟아질 때마다 내 안의 원망과 서러움도 같이 쏟아졌다.

수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러다 문득,

아빠도 누군가에게 이런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아본 적이 없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어린 시절의 아빠도 받아보고 싶었던 선물이 아니었을까?

눈 내리는 스노볼을 보며 처음으로 아빠의 크리스마스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혹시 아빠는 크리스마스의 기억을 다시 만들고 싶었던 걸까?

어린 시절 어긋난 우리의 관계를 이제라도 새롭게 쓰고 싶었던 걸까?

꼬리를 무는 질문들 끝에,

나의 아픈 크리스마스는 결국, 아빠에게도 아픈 크리스마스였겠구나 하는 생각에 미치게 됐다.  


“요즘 눈도 잘 안 오는데, 이거 보고 있으면 계속 눈 내리니까 좋잖아.”

아빠가 스노우볼을 켜주며 했던 말이다.

70대가 된 아빠도 여전히 눈 오는 날을 좋아하는구나.

아빠의 마음에도 아직 어린아이가 살고 있구나.


내가 서툴러서 내 인생을 잘 돌보지 못했던 것처럼,

아빠도 아빠로 사는 게 서툴렀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독한 오춘기를 겪고 있는 것처럼,

아빠 역시 이제야 제대로 사춘기가 시작됐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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