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을 십월이라고 하지 않고 시월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아무래도 '시~벌'이라고 발음하는 사람들의 무안함을 덜어주기 위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모든 사람들이 시인이 되는 詩월이라서 그런 걸 수도 있겠다는 아주 나다운 생각이 들기도 한다.
시가 별거냐?
가을바람이 스치고 지나간 볼따구니가 느닷없이 씰룩거리면서
심장이 벌렁거림을 느끼는 것이 바로 詩다.
입으로, 손으로, 눈으로, 머리로 쓰는 그런 시가 아니라
시월은 그렇게 몸으로 詩를 쓰는 달이다.
그냥 몸이 詩가 되는 달이다.
그래서 우리는 분명하고 정확하게 십월이 아니라, 시(詩) 월이라고 해야 한다.
발끝에 와닿는 무뚝뚝함
귀를 질투하는 바람
코 속으로 들어오는 차가운 영혼들
손가락 사이사이에 걸려있는 추억
눈동자를 흐리게 하는 비밀
자꾸 뒤돌아보게 하는 향기
속눈썹이 길어지길 바라는 기도
설렘으로 찰랑거리는 머리카락
조심스럽게 달래주고 싶은 입술
그렇게 온몸으로 가을을 느끼는 10월은 詩월이다.
또, 박, 또, 박, 하게 시월이라고.
시월이 시작됐다고.
시시시시시한 시월이 절대 아니라고.
- 2002년 10월 1일
우연히 10년 전 10월 1일에 썼던 오래된 일기를 발견했다.
십월이 아니라 시월이라고 힘주어 이야기했지만
그때 사실은 ‘시~벌’이라고 세상에 대고 욕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 시절의 나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길냥이처럼 털이 잔뜩 곤두서서 예민해 있었지만
때로는 사람의 손길이 그리웠고 멀리서 보면 귀여웠던 것 같다.
여기저기 어슬렁거리며 야옹~ 야옹~ 시비를 걸고 다니기도 했다.
10년이 지난 지금은 그때보다는 조금 상냥해진 길냥이가 되어 가고 있다.
사람들과 가까이 지내기 위해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 줄 알고,
좋은 사람을 보면 얼굴을 비벼대는 길냥이쯤은 된 것 같다.
아무리 그래도 누군가에게 길들여지는 집고양이는 못 될 것 같지만.
올해도 시시시시한 시월이 되지 않기를 바라며 詩월을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