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혹시 최근에 시도 때도 없이 마음이 말랑말랑, 울컥울컥 하신가요? * 사람들의 모습이 지쳐 보이고 우울해 보이나요? * 나만 빼고 다른 사람들은 너무 잘 살고 있는 것만 같나요? * 최근에 오랜 친구나 지인에게 갑자기 연락하고 싶어진 적 있나요? * 평소에 하지도 않던 독서나 글쓰기를 시작하셨나요?
그렇다면 당신은 “환절기증후군”입니다.
“난 가을이 오는 게 너무 두려워”
“왜?”
“네가 가을만 되면 너무 우울해하니까 어쩔 줄 모르겠어. 벌써부터 겁이 나.”
20대 초반에 만났던 남자 친구는 매년 여름의 끝이 다가오면 안절부절 못했다.
가을이 시작되면 감정이 곤두박질쳐서 땅굴이라도 파고 숨어버릴 것만 같은 오춘기 여자 친구 때문이었다.
그 시절 나는 툭하면 울고, 툭하면 혼자만의 시간을 달라고 연락을 끊고, 툭하면 이유 없이 심각해졌다.
툭하면, 툭하면,
어쩌면 하늘에서 실수로 ‘툭’ 떨어뜨린 존재라 그런 걸까?
이 아이를 다시 주워야 할지, 그냥 버려야 할지 몰라 신들이 갈팡질팡 하는 사이에 나는 어디론가 숨어버리고 싶었는지도.
그런 나의 성향을 남자 친구는 잘 알고 있었다. 내가 몰래 숨지 못하도록 항상 내 손을 꼬옥 붙잡고 다녔다. 절대 혼자 있게 내버려 두지 않았다. 가을이 되면 더 자주 꽃을 사서 안겨주었고 더 자주 편지와 음악을 전해주었다. 내 표정이 안 좋으면 바다에 데려가 주었다. 맛있는 것을 잔뜩 사주고 신나게 먹는 나를 보며 안도했다.
그는 정말 좋은 사람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도 겨우 22살의 어린 나이였는데 어떻게 사람의 속을 그렇게 잘 들여다볼 수 있었을까.
하지만 나의 우울은 가을에만 잠시 찾아왔다 사라지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아무도 없는 어디론가 숨어버리고 싶은 마음은 계절과 상관없이 점점 더 자주 찾아왔다.
처음엔 가을에 좀 심했다가 점점 다른 계절까지 전염이 되었다. 30대 중반 이후에는 가을보다 봄이 시작될 무렵, 햇살 좋은 날에 더 심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단순하게 그냥 다른 사람보다 우울감이 더 크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 나의 병명을 알아냈기 때문이다.
나의 병명은 ‘만성 환절기증후군’입니다.
환절기만 되면 비염도 걸리고, 감기도 걸리고, 식곤증과 온갖 질병들을 앓는 사람처럼 나는 잠시 마음을 앓는 것이었다.
생각해보면 계절이 바뀌는 일은 엄청 거대하고 무시무시한 일이다.
환절기는 모든 생명체들이 아우성대고 발버둥 치며 전쟁 같은 시간을 견디고 있는 계절이다.
견뎌내야만 살아남을 수 있고, 변화할 수 있다. 그런 어마어마한 시간 속에서 인간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바람의 온도가 달라지고, 얼굴에 닿는 햇살의 무게가 다르게 느껴지고, 온갖 소리들이 새로워지고,
세상의 빛깔들이 순식간에 어지럽게 변하는데 어떻게 나만 아무렇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나 같은 환절기증후군을 앓는 사람들은 단지 그런 변화에 조금 더 예민한 사람일 뿐이다.
구름이 흘러가는 곳으로 마음이 따라가고, 바람의 온도에 따라 마음의 온도가 변하는 것뿐이다.
빗소리에 심장이 덜컹거리고, 따뜻한 햇살에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뿐이다.
꽃잎이 피고 지는 모습을 보며 시간의 무게를 온전히 느끼고 있을 뿐이다.
다른 사람보다 좀 더 예민하고 섬세하게.
그래서 나는 환절기만 되면 유독 더 심해지는 나의 우울함을 ‘환절기증후군’으로 부르기로 했다.
이유 없는 막막한 우울증보다 얼마나 명쾌하고 가벼운가!
환절기가 지나면 나는 다른 생명체들처럼 더 단단해지거나 뿌리가 깊어질 수 있을 것이다.
9월이 시작되었다. 며칠 동안 내린 비로 지독했던 여름이 도망치고 있다. 이때를 조심해야 한다.
여름과 가을이 싸우면서 휘몰아치는 바람이 누군가의 마음을 할퀴고 다닐지도 모른다.
잠깐 방심한 사이에 감기가 온몸을 지배해버리는 것처럼 환절기증후군에도 미리 대처하고 예방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