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꼰대가 안 되려면 입은 닫고 지갑은 열어라!’
마치 중년들에게 내려진 행동강령처럼 툭하면 저 소리다.
사실 처음엔 나도 ‘맞네, 맞아!’하며 공감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조금 지나치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저기서 유행어처럼, 야단치듯이 쉽게 툭툭 뱉어내는 걸 듣고 있자니, 온 세상이 중년들의 입을 틀어막는 기분이 들었다. 중년들 스스로도 어느 순간부터 ‘꼰대’라는 주홍글씨를 달지 않기 위해 잔뜩 주눅 들어 살고 있다. 그것도 못마땅하다. 우리가 도대체 뭘 잘못하고 살았나?
며칠 전 친구와 통화를 하다가 걱정스러운 이야기를 들었다. 어린 친구들과 스터디 모임을 하고 있는데 혹시나 자기가 하는 말들이 꼰대로 보일까 봐 말을 아끼게 된다고. 조심스럽다고 걱정을 하는 것이다.
도대체 그럼 우리는 어떤 말을 하며 살아야 하나? 지갑만 열라고? 지갑만 보면 숨이 턱턱 막히는 중년들은 아예 사람을 만나면 안 되는 건가? 뭐 이렇게 세상은 우리에게 요구하는 게 많냐? 억울하다!
난 어릴 때부터 답답할 정도로 입이 무거웠다. 내 생각이나 감정을 잘 표현하지도 못했고 겉으로 드러내는 것도 두려워했다. 거의 다른 사람의 말을 듣기만 했고, 싫은 소리를 들어도 속으로 참으며 삼켰다. 나 스스로 상처를 키우며 살았다. 그게 너무 오래되다 보니 꿈속에서 입 밖으로 소리가 안 나와 숨이 막혀 가위에 눌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생각해보면 40~50대 중년들은 어릴 때부터 대부분 자신을 드러내기보다는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듣는 쪽에 가까운 인생을 살았다.
‘부모님 말씀 잘 들어라, 선생님 말씀 잘 들어라,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하면 그냥 참아라.’
대부분 누구 말을 잘 들으라는 얘기만 했지, 너의 마음과 생각이 어떤지 솔직하게 말해보라거나 어떤 식으로 표현해보라는 말은 잘 듣지 못하고 자랐다. 그렇게 자신의 생각과 감정들을 꾹꾹 눌러가며 살아왔는데 지금까지도 세상은 우리들에게 입을 닫으라고 한다. 휴~ 그럼 도대체 우리는 언제 할 말 하며 살라는 거지? 죽기 직전에? 이 정도면 우리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는 세상이 꼰대다.
산전수전 겪으면서 이제야 조금 나 자신을 알게 되었고, 이제야 내 생각을 좀 더 잘 표현할 수 있게 되었고, 사람들 앞에서 말할 용기도 겨우 생겼는데……. 세상 눈치 보느라 내 의견과 생각을 말하면 어느 순간 ‘꼰대’가 될까 봐 전전긍긍하다니.
나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 적어도 상대방을 배려하고 공감하는 마음으로 하는 말이라면 당당하게 할 말 하고 살겠다. 상대가 불편하거나 혹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상처를 줬다면 진심으로 사과하면 된다. 굳이 입을 닫을 필요는 없다. 말을 꺼내기 전에 한 번쯤 더 생각해보면 된다.
나는 어릴 때도 선배든, 후배든 누구에게나 지갑을 자주 열었는데 앞으로도 계속 지갑만 열라고? 오히려 지금은 아무에게나 지갑을 열고 싶지는 않다. 내가 나누고 싶은 사람들, 응원하고 싶은 사람들에게만 애정을 담아 지갑을 열 것이다. 그게 내가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사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어리다는 이유로, 단지 젊다는 우월감으로 자신들의 생각이나 충고를 함부로 내뱉는 젊은 꼰대들 앞에서 우리 중년은 좀 더 당당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중년들이 조금 더 자유롭게, 신나게 살았으면 좋겠다. 어린 친구들 눈치 보지 말고, 하고 싶은 말 마음껏 하고, 계산대 앞에서 무거운 마음 갖지 않았으면 좋겠다. 열심히 살아온 우리는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