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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살롱 Mar 27. 2020

1인 가구에게 좋은 집이란

나만의 쉘터를 만드는 일, 내 집 찾기


코로나 19로 전 세계 사람들이 자가 감방생활 중인 따뜻한 봄날이다. 이런 투정 섞인 말조차 조심스러운 심각한 상황이지만 동시에 흥미로운 뉴스도 들린다. 쿠팡 등 온라인쇼핑몰은 물론이고 동네 마트도 일 매출이 예년 대비 2배를 찍고 있단다. 온라인교육이나 넷플릭스도 매출 상승 중이고, 실내용 페인트며 인테리어 용품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한다. 다들 삼시 세 끼를 집에서 먹고 홈트를 하고 모임도 집에서 하고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집단장 욕구가 뿜뿜하는 것이다.

가만히 나의 집을 둘러보았다. 나의 집으로 말할 것 같으면 지천명 그러니까 50살쯤 먹은, 그 이름도 거창한 '세계의 중심 용산'구 이태원의 투룸 주택이다(용산구의 현재 캐치프레이즈가 저러함). 대학 입학때부터 살아온 서울의 9번째 집이며 전셋집이다. 이전까지는 잠깐 용두동 한옥도 살아봤고 옛 잠실 주공 아파트도 살아봤고 대체로는 합정동 원룸에 살았고 30대 초반부터는 망원동 투룸 빌라에 살았다. 한마디로 1인 가구가 사는 전형적인 동네와 집들을 거쳐왔다. 지금 사는 집에 이사를 오면서 인테리어를 한 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불량주택을 환경미화하고 세가 더 잘 나가게 하는 도시의 익충인가, 헌집줄게 새집다오 도시의 두꺼비인가.'

내가 환경미화를 해놓고 나면 그 집은 다음 세입자가 잘 구해졌다. 집주인을 도와주는 익충이 맞는 것 같다.


조금 다른 집 쇼핑을 한 친구들

요근래 나처럼 공허하게 2년마다 집주인을 돕는 셈이 되거나 전세의 한계에 지친 주변의 싱글 친구들이 내 집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소위 말하는 내 집 마련 상식에는 하나 같이 맞지 않는 집들이다.


빌라는 사는 게 아니다.
한 동 짜리 아파트는 사는 게 아니다.
집은 새 동네의 새 집을 사는 거다.
집은 공기 맑고 조용한 곳에 사는 게 아니다.
부동산을 공동소유로 사면 팔 때 골치 아프다.


아침저녁으로 서로 다른 새소리가 들리는 동네의 복층 빌라를 산 친구, 전철역도 마트도 좀 떨어진 한 동 짜리 나홀로 아파트를 산 친구, 1기 신도시였던 일산의 옛 아파트를 산 친구, 서울과 경기도의 경계쯤에 있는 오피스텔을 산 친구.

왜 이런 선택이 나왔냐 하면 일반적인 내 집 마련의 기준과 싱글이 살기 좋은 집의 기준은 다르기 때문이다. 저 속설들은 집 내지는 아파트를 투자 대상으로 봤을 때 통하는 원칙이다. 한국에서 아파트란 화폐 버금가는 규격화된 재화의 가치 척도고 그 기준으로 따지면 친구들이 선택한 집은 분명 가치가 떨어지는 집들이다. 하지만 서울의 아파트 한 채가 일단 7, 8억은 하는 세상에 열심히 산 회사원이 월급을 모아 서울 안에 자기 명의의 새 아파트를 소유라... 요원한 이야기다. 포기할 건 포기하고 털어버려야 한다. 자신에게 좋은 집의 기준을 세우고 거기에 따라야 한다. 혼자 살 집이니 학군도 필요없고 시세차익이 중요하지도 않다. 지친 도시 생활에서 삶의 여유와 안정감을 줄 집. 그게 집이 가져야할 가장 중요한 가치다.

똑똑한 친구일수록 일찍 깨닫고 실행에 옮겼다. 쏟아지는 전문가들의 조언과 부동산 유튜버들의 알짜배기 정보, 세상의 진리인 듯하는 말말말에 흔들리지 않는 친구일수록. 가까운 곳에 동네 친구들이 살고 있으며 좋은 공연장이나 미술관, 카페가 가까운 곳, 여행 갔을 때 내 고양이를 돌봐줄 친구가 있는 곳, 야근을 마치고 늦게 귀가해도 안전한 곳. 이런 이유로 저런 선택을 했다.


남의 말만 듣던 나의 부동산 경험치

"30대 중반이 되면 남편이든 집이든 둘 중 하나는 있어야 해."라던 어느 선배의 말 때문이었을까? 나는 그 즈음에 회사 점심시간에 나가서 영등포의 어느 오피스텔을 덜컥 계약하고 들어왔다. 공부도 전혀 없이 귀가 얇아 저지른 충동구매였는데 일찍 결혼해 집을 계속 넓혀온 이 선배는 잘했다며 두고두고 칭찬했다. 그 집을 세 놓고 나니 참으로 희한했다. 미주 OO일보의 지사장인 50대 교포의 집에 30대 잡지사 기자인 내가 전세로 살고 있었고 내가 산 집엔 종편채널 교양 프로그램의 20대 막내 작가가 월세로 살고 있었다. 마치 한국의 미디어 종사자 세대별 주거현황 3단 구조 같은 그림이었다.   

스물아홉 살 때였다. 어느 동갑내기 소개팅남이 내가 주택청약저축을 안 들었다고 하자 한심스럽게 바라보며 "저기요. 월요일날 5만 원을 들고 국민은행이나 아무 은행을 가서요. 주택청약저축 들으러 왔다고 하세요."라고 가르쳤다. 그는 정말 그게 충격이었던 모양이다. 훗날 주선자가 "다 좋은데 청약도 안 들었더라며 절레절레했대."라고 전해줬을 정도면. 상대가 소개팅 날짜 정할 때부터 '진짜 결혼하려고 하는 소개팅'이라고 했던 진지한 모드였던 데다 헤어진 전 남친과 비교돼 어느 것 하나 내눈에 들어오지 않던 상대였던지라 그 후기를 듣고 기분도 안 나빴다. 별놈 다 있구나. 별난 분 덕에 주택청약저축을 들긴 들었다. 그러나 1인 가구에게 청약이 무슨 소용이랴. 가점 기준이니 뭐니 따져보면 당첨은 언감생심이고 불리한 면을 따져보면 실상 이런 게 간접적 싱글세가 아닌가 싶다.   

이런 부동산 경험치를 쌓은 뒤의 내 결론은 '남의 말을 너무 듣지 말자'다. 누가 이 동네가 좋다, 저 동네가 뜬다고 한들 그건 그 사람의 기준이고 꼭 아파트여야할 것도 아니고 아파트도 브랜드 따지고 SH공사는 자재가 날림이고 어쩌고도 귀담아들을 우선 조건은 아닌 것 같다.


1인 가구에게 좋은 집이란 어떤 것일까. 가끔은 물건도 힘을 준다. 힘들 때는 내 취향의 총합 같은 집에만 있어도 기운이 난다. 험한 바깥세상에서 돌아와 온전히 휴식할 수 있는 나만의 쉘터. 막연한 내일을 살아갈 에너지를 충전하는 주유소. 작은 공간이어도 스스로가 좋아하는 것을 갖춰 놓고, 화려하지 않아도 좋아하는 것을 즐기며 편안하게 사는 곳. 그렇게 하루의 마침표를 찍고 일상의 쉼표를 찍어줄 공간이 1인 가구에게 좋은 집의 정의다.


동네는 슬리퍼를 신고 다닐 수 있는 범위, 슬세권이 내 스타일에 맞는 동네가 좋다. 공원이 됐든 맛집이 됐든. 그리고 이집 저집에 살아보면서 이미 나는 좋은 집의 정답은 알고 있는 것 같다. 오래전 처음으로 원룸에서 투룸 주택으로 이사했을 때 그때의 내가 SNS에 이렇게 적어놓았다.

'이사 온 집. 공동주택이지만 이 집만 분리되어 큰 대문을 쓰고 집 앞 공터는 마치 마당 같고 남향이라 집도 따뜻하고, 새벽까지 음악도 크게 들을 수 있어 단독주택에 사는 느낌이다.'

맞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와 "아주 꽃향기가 나네. 너 언제까지 이렇게 혼자 살 거냐."라고 혼내거나 청하지 않았는데 죽은 바질 화분을 가져가 무성하게 살려 돌려주던 오지라퍼 집주인 아주머니만 안 계시면 그 집은 좋은 집이었다.

이제 서울에서의 10번째 집은 이런 나의 기준에 부합하는 내 집이었으면 좋겠다. 아니, 내가 사랑하는 도시지만 서울이 아니어도 괜찮을 것 같다. 매일 새로운 여행을 떠나는 좋은 출발점이자 종착지가 되어줄 곳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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