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노르웨이에서 중국으로 출장을 가게 되었다.
매년 10월 경 열리는 중국 광저우의 캔톤 페어를 방문하는 것이 나의 주 업무였고, 캔톤 페어가 열리는 주변 날짜에 홍콩에서 열리는 메가쇼에도 함께 가게 되어 무려 나의 첫 출장 일정은 한 달 정도가 되었다.
프로베이션도 마치고, 이 회사의 업무와 사장의 업무 스타일에 조금은 익숙해 졌었기에 나는 꽤 의욕적으로 출장일정을 잡았다.
캔톤 페어는 거의 한 달에 거쳐 총 3기로 이루어진 거의 이 세상 모든 제품에 대한 박람회였고, 나는 1기와 마지막 3기를 방문하고, 홍콩 메가쇼를 방문하는 일정으로 골자를 잡았다.
당시 노르웨이에서 중국 비자를 받기 좀 까다로웠고, 내가 오슬로까지 가기 여의치 않아 홍콩에서 중국 비자를 받기로 했다.
그렇게 홍콩을 떠나 노르웨이로 간지 약 2년 반만에 다시 홍콩을 찾게 되었다.
내가 박람회에서 하던 업무는 우리 클라이언트 회사에서 찾고 있는 제품군을 소싱할 수 있는 업체를 찾아오거나, 기존의 소싱 업체들이 박람회에 참여할 경우 함께 추후 제품과 사업에 대해 짧게 의논하는 것들이었다.
그뿐 아니라, 워낙 트렌디한 제품들이 빠르게 그리고 다양하게 쏟아져 나오는 박람회였기 때문에, 추후 클라이언트들이 흥미로워할만한 제품들을 찾아보는 것도 업무의 일환이었다.
홍콩 메가쇼는 캔톤 페어에 비하면 규모가 작았지만, 워낙 홍콩에서 비자 등의 업무를 위해 미리 입국하는 나 같은 바이어들이 많아 그들을 위해 제법 알찬 박람회가 진행 중이었다.
그렇게 홍콩 메가쇼를 돌고 나는 첫 회사 동기였던 오빠가 참여한 부스도 방문하게 되는 신기한 인연을 만나기도 했다. (그 후 이 인연이 이어져.....to be continued)
메가쇼에는 한국 회사들이 굉장히 많이 나와있어서 놀랐다.
더구나 제품도 너무 알짜들이 많아, 나의 시선을 사로잡기도 했다.
당장은 연결 할 수 있는 제품과 회사가 없었지만, 부지런히 한국 회사들과 제품을 배웠다.
더구나 이 첫 회사 동기였던 오빠는 어느새 무역 회사의 대표님이 되어있던 터라, 그 오빠의 도움으로 한국과의 무역에 대한 팁도 굉장히 많이 얻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이후의 캔톤페어에서도 나는 끊임없이 한국 회사들과 한국 제품들을 찾아보게 되었다.
약 1주일간의 홍콩 체류 기간이 얼추 마무리 되었고, 광저우 출장을 위한 중국 비자와 캔톤 페어 바이어 출입증 등도 준비가 끝났다.
홍콩에서 머무는 동안 틈틈이 홍콩에서 함께 일했던 동료들을 만나기도 했고, 친구들과 만나 긴 회포를 풀기도 했다.
홍콩에서의 일정은 데일리 리포트나 서플라이어 업체 정리의 압박에서는 조금 느슨할 수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들이다.
본격적으로 광저우로 가면서 쌓였던 일들을 테트리스 했다.
홍콩 메가쇼에서 만난 업체들을 정리하고 노트 테이킹 했던 것들을 따로 갈무리해 회사에 보냈고,
캔톤 페어에서 만나기로 한 혹은 만날 수도 있는 업체들과 다시 컨펌을 하며 본격 박람회 방문 준비를 했다.
내가 머물던 호텔은 거의 캔톤페어를 방문하는 바이어들을 위한 호텔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매일 아침 저녁으로 호텔과 박람회장을 잇는 셔틀버스들이 이어졌고, 온디맨드 통역 서비스까지 제공하고 있었다.
홍콩에서 몇 년을 살면서도 광저우는 한 번도 안가봤을 뿐더러 이렇게 큰 규모의 무역 박람회는 당연히 처음이었기 때문에 나는 규모와 크기, 그리고 오랜만에 보는 인산인해에 압도되었다.
내가 방문했던 1기 캔톤페어와 3기 캔톤 페어는 거의 이 세상 모든 제품들이 나와 있었다.
새로운 제품들도 많았고, 친환경 제품들도 많았으며, 클라이언트들이 원하는 제품과 비슷하면서도 더 보완된 좋은 제품들도 많았다.
거의 매일 모든 부스들을 돌면서 제품을 공부하기도 했고, 서플라이어 업체들을 만나기도 했다.
특히 내가 이 회사에 합류하기 전부터 우리 회사와 함께 일하던 업체들을 제법 많이 만나볼 수 있었기 때문에 굉장히 효율적인 자리이기도 했다.
중국 업체들은 굉장히 적극적이라, 내가 원한다면 공장 시찰도 시켜주겠다 했고, 저녁 접대도 하길 원했다.
이런 업체들의 성향을 잘 알고 있던 사장은 내가 출장 가기 전,
내가 공장 시찰까지 요구해도 되는 업체들 리스트를 알려줬고, 그 외의 업체들이 오퍼할 경우에는 정중하게 거절할 것을 원했다. 당연히 저녁 접대는 업체를 막론하고 받아서는 안된다고 일러줬다.
(중국의 꽌시 무역에 꽤 관록이 깊었던 사장으로서의 통찰력이었다. 이후 업무를 하다 보니, 공장 시찰이나 저녁 접대 등이 서플라이어들로 하여금 우리에게 어떤 기대를 지니게 하는지 알게되었다. 전에 홍콩에서 일할 때는 이렇게 무역적 업무를 관여한 적이 없었기에 주로 접대는 근황 청취나, 한 해의 감사 인사 등 정도의 일반적인 접대에만 참여했었기에, 이는 내게 큰 도움이 되었다.)
혼자 가는 장기 출장은 꽤 여유로울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는 나의 큰 오산이었다.
호텔에서 조식을 마치고 셔틀에 몸을 싣고 박람회장에서 하루를 돌고 돌아오면 결국 호텔에서 룸 서비스나 겨우 먹으면서 그날 그날의 리포트들을 노르웨이에 있는 사장과 팀에 보고하고 있었다.
혼자 낭만에 젖어 광저우 시내나 한 번 돌아볼까 했던 상상은 현실로 이뤄지지 못했다.
그렇게 약 한달 여에 걸쳐 박람회장을 도는 와중에도 나는 끊임없이 한국 업체들을 만났다.
당장 관련 될 사업은 없었지만, 어쩐지 자꾸 눈이 거기로 갔다. 한국인이라 피가 끌렸기 때문일까?
그렇게 감정적으로 치부하기엔 한국 제품들이 모두 질적으로 좋았기 때문에 더 파고들게 되었다.
한국 업체는 Kotra나 지자체의 단체 부스들에 포함되어 같이 참여하는 경우들이 많았다. 중소기업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질적으로나 가격적으로 어디 하나 흠잡을 데가 없는 제품들 뿐이었다.
얘기를 나누는 업체 관계자분들은 노르웨이에서 여기까지 왔냐며 더욱 친절하게, 상세하게 설명해주기도 했고, 당장 엮일 일이 없다는 걸 말씀드렸음에도 제품과 해당 산업의 한국 현황까지도 너무 친절하게 설명해주셔서 나에게는 큰 배움의 장이 되었다.
하루에 2-3만보 씩 걷고 업체와 제품들을 만나며 지쳐있었던 나지만, 어쩐지 매일 나는 한국 업체들을 찾았다.
이때의 첫 출장이 2017년이었고, 지금 2022년에 돌아보니 당시의 나는 지금은 중국 제품들을 노르웨이에 소싱하고 있지만, 언젠가 한국 제품들을 소개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작게 나마 꿈꾸며 살펴봤던 것 같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그때의 그 마음이 지금의 나를 있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