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쏘쓰 Jun 01. 2022

14. 한 방울의 모유도 모유 수유다.

나를 울게 한 한 마디

나의 출산은 병원에 입성해서 5시간도 되지 않아 이뤄졌다. 초산 치고는 꽤 빠른 진행이었다고 한다.

https://brunch.co.kr/@chungsauce/27


그렇게 혼돈의 카오스(?) 속에 아기를 낳자마자 아기가 내 가슴에 얹혔다.


내가 출산을 한 병원은 모유 수유를 권장하는 병원이었기에, 이렇게 아기를 낳으면 바로 엄마의 가슴에 얹어 아기가 모유 냄새를 찾으러 갈 수 있도록 해준다.


눈도 못 뜬 아기는 너무나 신기하게도 내 가슴을 찾아와 모유를 먹으려 했다.

물론 출산 직후에 가슴에 모유가 돌지는 않지만, 이렇게 함으로써 모유가 원활하게 돌 수 있는 역할을 한다고도 한다.


나는 첫 출산이었고, 빠른 진행으로 인해 회음부 손상도 많았기에 몸이 많이 좋지 않았다.

더구나 아기는 작았고, 빠는 힘이 없는지, 영 가슴에서 모유를 빨지 못했다.


출산하자마자 우리는 사흘간 병원의 호텔 객실에 머물렀다.

노르웨이에서는 출산 후 약 사흘간 병원과 연계된 병실 형 호텔(?)에 머물며 출산 후 처치와 아기를 어떻게 돌봐야 하는지를 배우고, 아기의 자잘한 출생 후 검사 등을 받게 된다. 아기는 태어나자마자 제대로 된 모유를 먹지 못한 것 같았는데, 병원에서는 분유는 주지 않고, 계속 내 가슴에 아기를 물리도록 했다.


퇴원해 집으로 온 첫 날.

퇴원하는 사흘 째가 되던 날, 아기는 몸무게가 빠진 만큼(아기들은 출생 직후부터 하루 사이에 몸무게가 조금 빠졌다가, 이틀째부터 무게가 늘어난다고 한다.) 몸무게가 회복되지 않았다. 병원에서는 퇴원을 하되 다음날부터 내게 배정된 헬스 스테이션(우리나라로 치면 보건소나 소아과의 개념)에 방문해 아기 담당 간호사를 만나 체크업을 받으라 했다.


한국처럼 조리원으로 가 몸을 추스르는 것도 아니고, 갑자기 사흘 만에 아기와 집으로 온 우리는 멘붕이었다.

말 그대로 핏덩이인 아기와 초보 엄마 아빠의 좌충우돌이 시작되었다.

사흘 만에 둘이 나갔다가 셋이 돌아온(?) 집에선 멘붕의 향연이 이어졌다.


젖을 물지 못하는 아기를 위해 나는 한두 시간에 한 번씩 유축을 했고, 가슴은 너무 아팠고, 호르몬의 영향인지 계속 눈물이 났다. 모유도 제대로 못 주는 어미 따위(?)라는 자책을 하면서.


다음날 방문한 헬스 스테이션에서는 아기가 몸무게가 평균대로 늘지 않는 것 같다며 분유를 혼합해서 줄 것을 권했다. 그러면서도 계속 모유를 주기 위해 직수(가슴에 물려 직접 모유를 먹게 하는 것)를 시도할 것을 권했다. 이 한 마디를 덧붙이면서.


너도 알다시피, 모유가 최고니까.


그때 그 간호사가 덧붙인 한마디는 나를 모유 수유의 부담감에 짓눌리게 했다.


혼합 수유를 한 덕에 아기는 몸무게가 금방 오르기 시작했다. 퇴원 후 매일같이 방문하던 헬스 스테이션에서도 이제 정기 검진에만 오면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혼합 수유를 줄여보고 다시 모유만 줘 보라고 독려했다.


아기가 계속 직수를 하지 못하는데 모유를 주라니.

그 와중에도 지난번 간호사가 했던 "모유 최고" 발언은 나에게 엄청난 중압감을 주어 당시의 나는 모유 수유에 엄청난 압박에 시달렸다.


심지어 사설 모유 수유 전문가까지 출장 컨설팅을 받고 두 시간 넘게 직수 교육을 받았다.

직수 교육을 받으면 무엇을 하나. 아기가 안 물면 그만인 것을? 아기는 계속 제대로 내 가슴을 물지 못하고, 나는 모유'만' 줘야 된다는 중압감에 시달리니 그때부터는 유축 지옥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너무나 힘들었던 초기. 정신이 없어 남은 사진이라고는 아기 사진 뿐이다.

신생아의 수유 텀은 대략 1-2시간 정도인데, 더구나 모유는 소화가 분유보다 빨리 된다고 한다.

이러니, 아기에게 젖병에 유축해둔 모유를 수유하고 난 후, 아기를 재우기가 무섭게 나는 또 유축을 해 다음 수유를 대비해야 했다. 남편은 이미 짧은 출산 휴가를 마치고 회사로 돌아간 터였기에, 당시 나는 거의 맨 정신이 아닌 채로 유축과 수유에 매달렸다.


혹시라도 아기가 젖을 무는데 도움이 될까 하여 아기를 데리고 혀 근육을 풀어주는 피지오 테라피도 다녔고, 그 와중에 살기 위해(?) 산책도 나갔다.


힘든 수유에도 너는 너무 귀엽다.

그렇게 아기가 태어난 지 만 1개월을 채우자, 갑자기 신기하게 젖을 무는 것이었다.

내 생각엔 이제 몸무게도 좀 올라 빠는 힘이 생긴 모양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유축 지옥에서 직수 천국을 맛보게 되는 줄 알았다.

밤낮없이 젖을 찾는 아기에게 열심히 젖을 물리고 있었는데, 어느 날엔가 아기 몸무게가 느는 것 같지 않았다.


바로 헬스 스테이션에 전화했더니 당장 방문하라고 시간을 비워줬다.

마침 담당 간호사가 휴가여서 당직 간호사가 우리를 맞이했다.


아기가 몸무게 그래프가 원래 있던 그래프보다 한 단계 처져 있다면서 간호사는 수유를 어떻게 하고 있는지 물어봤다. 한동안 혼수를 했고, 유축을 하다가 이제는 직수를 한다고 했고, 수유 텀도 알려주었다.


그녀는 수유 텀도 괜찮은 편인데 아기 몸무게가 늘지 않는 건 아마 내 모유량이 적어서 일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나한테 다시 분유 혼수를 시작하라고 얘기해줬다.


"우니? 나도 울고 싶다."의 연속이던 나날들

그때 갑자기 너무 감정이 복받치면서 눈물이 터져버렸다.

아니 모유가 최고라며.... 내가 여태까지 했던 노력들이 아기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던 것일까? 하는 생각과 대체 나의 모유 수유는 왜 이렇게 험난한가에 대한 생각들이 겹치면서 눈물이 줄줄 흘렀다.


산후에 감정 기복이 많은 엄마들을 많이 만나봐서인지 나를 처음 본 간호사는 굉장히 자연스럽게 나를 다독여줬다.


그러면서 내게 모유 수유에 너무 스트레스받지 말라는 말을 해줬다. 너무 힘들면 분유만 주라고 단호하게 얘기해주는 것이었다.


노르웨이에서 출산 후 내가 만난 의사, 간호사, 피지오 테라피스트, 모유수유 전문가들을 통틀어 내게 이렇게 말해 준 사람은 그녀가 처음이었다.


모유 수유는 아기에게 단 한 방울의 모유만 주어도 모유 수유라고 할 수 있어.
그러니 네가 앞으로 혼합 수유를 한다 한 들, 그게 모유 수유가 아닐 수 있겠니? 그리고 네가 앞으로 분유만 준다 하더라도, 네가 그동안 아기에게 준 모유들이 있는데, 누가 너에게 모유 수유를 안 했다고 하겠니?
가장 중요한 것은 너의 컨디션이야.
모유 수유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지 말고, 네가 그 시간에 단 10분이라도 너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나는 네가 분유만 주어도 된다고 생각해.


그녀의 말이 너무나 큰 위로가 되었다.

생각해보면 나도 분유만 먹고 자랐고, 튼튼하고 건강하게 잘 자랐다.

물론 여건이 된다면 모유수유를 하는 것이 좋겠지만, 분유라고 문제 될 것이 없었는데, 내 마음이 너무 모유에 치중되어 있어서 스스로를 옥죄고 있었던 것이다.


적은 모유량 덕분에(?) 나는 그날을 기점으로 혼합 수유를 했고, 내 모유량에 맞춰 분유를 수유하며 몸과 마음의 여유를 찾게 되었다.

무럭무럭 콩나물 자라듯 자라는 아들





매거진의 이전글 13. 내 아기와 만나던 순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