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라봄 Sep 05. 2023

차 한잔, 시 한편

내가 그의 마음 안에 있음이 기쁨이자 슬픔이었다

이성복 의 <서해>라는 시를 읽었다. 찰싹이는 파도와 개펄은 여느 바다와 같지만 그곳에 사랑하는 당신이 있을지 모르기에 가지 못했다는 서해바다.  사랑하는 사람을 행여나 마주칠까 가보지 못하는 시인의 마음은 무얼까. 시를 읽고 사랑에 대해 생각해 본다. 진정한 사랑은 상대를 향한 배려 아닐까. 나는 누군가를 애타게 그리워한 적이 있었을까. 필사를 마치고 나의 이야기를 적기 시작했다.


2주 전 우리 가족은 동해에 다녀왔다. 속초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신랑과 나눴다. 신랑은 역시나 어느 집 음식이 맛있었다, 어느 집은 기대에 못 미쳤다는 식의 ‘맛’이었고, 나는 신랑과 나눈 ‘말’이었다.

바다 근처에 자리한 횟집에서 나는 말했다.

“자기는 몇 살까지 살고 싶어?”

충만함으로 물었다. 커피를 좋아하기 시작한 나를 위해 커피를 좋아하지 않는 당신이 강릉 테라로사에 들러주었다. 온전한 나를 위한 마음에 감동했다. 바닷가에서 한없이 사랑스러운 내 아이들을 보며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는 심정이었다.

“부인보다 오래. 부인 보내주고 가야지.”

동해 소주의 달큰 뜨끈한 무엇이 올라왔다. 한 여자를 만나 사랑하고, 가정을 꾸려 책임지고, 마지막 순간까지 나를 보내주고 간다는 그 마음, 사랑일까? 책임감일까? 죽는 건 그의 말처럼 될까? 그가 나를 사랑하는 방식이자 온전한 마음일 수 있지만 나는 조금 아렸다. 내가 그의 마음 안에 있음이 기쁨이자 슬픔이었다. 내 마음의 바다는 그라는 것을 글을 쓰며 알았다. 먼 훗날 그가 먼저 떠난다면 내 마음 한쪽 바다는 그를 향한 부서지는 그리움으로 파도치고 있겠지. 우린 아직 서로가 없는 세상을 그리지 못한다. 담을 수 없는 그리움으로 사무치기 전에 지금 내 에 있는 그를 맘껏 사랑해 주기로 한다.   

       

이 시를 읽지 않았다면 느낄 수 없었다. 나의 이야기를 적였기에 스쳐 지나갈 말이 가슴에 남았다. 서해에서 시작한 시인의 시가 동해의 내 경험으로 마쳤다. 나는 감수성이 없다고 생각했다. 시를 읽고 필사하며 어쩌면 감수성이란 것은 타고난 것이 아니라 읽으며 감응하는 연습이 아닐까 싶었다.


가볍게  한잔 마시듯, 시 한편 당신에게 건넨다.

매거진의 이전글 혼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