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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라봄 Sep 17. 2023

마흔세 번째 생일

잊지 못할 아들의 생일선물

태어남이 축복이고 기쁨임을 살면서 더욱 느낀다. 20대에는 친구들이 모여 축하파티를 열어줘야 잘 태어난 사람 같았다. 30대에는 결혼하니 다른 모습의 풍경이 그려졌다. 가족이 느니 더 풍성해졌다. 옆에 숨 쉬며 자는 서방에게 매년 미역국 밥상도 받는다. 40대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스스로에게 생일날 편지도 써주었다.


그날은 나의 마흔세 번째 생일날이었다. 유치원 교실 싱크대 쪽을 정리하며 큰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함께 저녁을 먹지 못하는 아들이 마음에 걸려서였다. 편의점에서 대충 때우고 학원 가는 아이가 그려졌다. 뭐라도 사주며 함께하고 싶었다. 신호음이 몇 번 울리지 않고 금세 전화를 받았다.

“엄마, 근데 나 학교에서 마시멜로 먹었다."

"응? 마시멜로를 먹었다고?"

"어. 친구가 학교 갖고 와서 먹었는데 쌤 상담 기다리고 있어.”

상담을 기다린다는 아들의 목소리는 해맑다. 마시멜로 먹은 일이 상담까지 갈 일이었나 싶었지만 간식 가지고 다니지 않기라는 학급 규칙이 기억났다. 왠지 불길했다. 상황이 그런지라 아들과 잠시 저녁을 먹긴 어려울 거 같았다. 선생님과 예의 있게 상담하라는 말로 통화를 마치고 퇴근을 했다.

     

차려진 밥을 먹고 싶었지만 외식하러 나갈 힘도 없었다. 생일이라 뭔가 든든한 게 먹고 싶긴 했다. 소고기가 생각났다. 집에서 먹고 아들 오면 구워주면 될 거 같았다. 아파트 중앙 공원에선 야시장이 열려 사람들로 북쩍이고 분주했다. 소파에 누워 생일을 챙겨준 지인들에게 답장을 보내고 눈을 감았다. 잠시 후 서방이 오고 둘째 아들과 생일파티를 했다.

 

피곤했지만 행복했다. 서방은 생일 선물도 준비했다. 도착한 택배를 작은 아들과 비밀작전으로 서방 서재에 몰래 갔다 두었다고 한다. 작은 가방을 여니 NJ라고 쓰여있는 초록 케이스가 보였다. 앙증맞게 반짝이는 귀걸이였다. NJ는 남주(남대문주얼리), 난 남편의 주얼리로 간직해야겠다. 아이처럼 올해 내 생일이 지나는 게 아쉬웠다. 큰 아들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 나 지금 끝났는데 우리 동네 야시장에서 10시 30분까지 놀고 오면 안 돼?”

전화받기 전 담임에게 받은 문자(오늘 아이 편으로 사실관계확인서를 보내드렸습니다)와 아들의 말이 뒤섞였다. 아들을 향한 나의 마음씀이 무너졌다.


“야, 오늘 엄마 생일인데 너무한 거 아니야.”

“에이 엄마 생일은 이따 집에 가서 케이크나 먹으면 되지.”


아들의 대답에 아들 친구가 보내준 ‘생신 축하드려요’ 일곱 글자가 떠올랐다. 친구보다 못한 아들. 나는 울컥한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야시장이야. 너 학교에서 무슨 일 있었다며! 그걸 먼저 와서 이야기해야지. 그냥 들어와!!”

“아니...”

“됐어. 당장 들어와~!”

날카로운 내 목소리는 집안 가득 퍼졌다. 43살이나 먹고 생일 안 챙겨주는 아들에게 서운하다고 토해내니 부끄럽기도 하여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아들과의 관계는 늘 그듯이 금세 후회로 이어졌다.

일 년에 한 번 있는 야시장,

그것도 우리 동네에서 열린 야시장,

엄마보다 가족보다 친구가 좋은 나이.

나는 아들의 마음보다 내 마음이 먼저인 이기적인 엄마다.


사춘기 아들에게 자꾸 서운한 마음다. 엄마 생일이라고 축하한다는 말 한마디 없는 아들에게 서운했다. 자식은 짝사랑이 맞나보다.

내가 뿌린 만큼(키운 만큼) 부메랑처럼 돌아오는 거 같았다. 잠시 후 아들은 번호키를 누르고 집에 들어왔다. 나는 정리되지 않는 생각을 멈추고 거실로 나갔다. 아들을 바라보고 말했다.


“엄마 생일이 뭐라고. 친구가 좋을 때지. 하루종일 학교에 있고 수학도 일찍 끝나서 야시장에서 놀고 싶었겠지. 근데 좀 서운하다 아들.”


아들은 아무 말도 없었다. 마음의 필터로 한번 걸러 말하려니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무 말없는 나를 아들은 힐끗 바라봤다. 나 역시도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이 어리둥절하고 억울한 표정의 아들에게.


아들에게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었다. 사실관계확인서를 가져올래, 이야기할래 물으니 종이를 가져오겠다고 했다. 종이를 읽어갔다. 문제는 친구가 학교에 라이터를 가져와 마시멜로를 구워 먹었다는 데 있었다. 진짜 모르는 걸까, 호기심일까, 장난일까.. 마지막 문장엔 친구에게 마시멜로를 구워달라고 한 것과 친구가 라이터를 가지고 있었는데도 선생님께 말하지 않은 것을 잘못했다고 썼다. 글쓰기를 진짜 싫어하는 아들의 글은 사실관계확인서로 본다. 1학기에도 한번, 잊을만하니 2학기에도 가져왔다. 엄마 나 학교에서 이렇게 지내고 있어요. 존재감을 드러내듯.


왜 그랬냐는 말에 아들은 "마시멜로 먹고 싶어서."

원초적인 본능이라고 봐야 하나. 구워 먹는 마시멜로가 처음이었던 아이는 그 사르르 녹는 달콤함에 매료되어 친구에게 여러 번 구워달라고 하는 걸까. 도덕성보다 친구가 더 좋은 걸까. 학교에서 하면 안 되는 행동이라는 걸 진짜 모르는 걸까. 급기야 교실 사물함에서 구워 먹었다? 친구들이 있는데도?


나는 화를 억누르려 애썼다. 정말 불이라도 났으면 어쨌을까. 다음 주 첫 시험을 앞두고 면학 분위기를 조성하라는 선생님의 알림장 글이 또 떠오른다. 장난으로 시작한 행동들로 아이는 학교에서 불량 학생으로 낙인 될 것이다. 시험이라도 잘 봐야 장난기 가득하지만 공부는 잘하는 친구로 남을 텐데 싶었다.

무엇을 잘못했는지, 앞으로 어떻게 행동할 건지 다시 물었다. 모범 답안을 말했고 나는 아들을 믿고 싶었다. 저녁 먹을 거냐는 물음에 먹는다고 답하는 아들. 먹을 거에 진심인거지.

  

나는 엄한 엄마가 못된다. 아들의 마음에 이리저리 끌려다닌다. 내 마음에도 끌려다니니 자식에게도 끌려다닌다. 자책으로 마무리하고 싶지 않았다. 이제 장난치러 학교 가는 게 아니라 배우러 학교에 가면 좋겠다. 사회화가 덜 되어 아무것이나 빨고 물어뜯는 강아지가 떠오른다. 저 아이의 머릿속엔 무엇이 들었을까. 자식 단속 못한 애미와 아들은 학교에서 진행될 절차를 걸쳐야 한다. 얼마나 더 성장해야 하나. 우리의 앞날은 그래도 밝아야 한다.


생일날, 잊지 못할 아들의 선물이었다.

다음날 사실관계확인서에 이름을 쓰고 서명을 했다. 두 번째 서명은 덤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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