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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라봄 Aug 28. 2023

14살 엄마

뒷모습에 마음을 보낸다

“엄마 뱃속. 태어나서. 한 살. 두 살. 세 살. 네 살. 다섯 살...”

둘째 아이랑 가끔 하는 놀이 중에 <엄마 뱃속>이라는 놀이가 있다. 손바닥을 세워서 상대방 얼굴 앞에 댄다. ‘엄마 뱃속’에서 ‘속’이라고 말할 때 (단어의 끝음절을 말할 때) 손바닥을 상하좌우로 움직일 수 있다. 상대가 같은 방향으로 얼굴을 움직이면 그 나이가 되는 거다. <참참참> 놀이처럼 말이다.

아이는 이 단순함이 뭐가 그리 재밌는지 종종 하자고 한다. 나와 이 놀이를 할 때 아이가 엄마 뱃속(처음에) 걸릴 때가 있다. 그러면 “나 엄마 뱃속에 진짜 들어가야지.” 하며 내 뱃속에 얼굴을 파묻는다.

“난 엄마 뱃속으로 들어가서 다시 기 하고 싶어.”

“왜?”

“난 뱃속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 물도 있다는데 내가 어떻게 떠 있는지 느껴보고 싶어. 그리고 엄마 몸에 아기 나오는 길로 내가 어떻게 나오는지도 궁금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다시 아기 때로 돌아가면 엄마가 화도 안 내고 예뻐해 줄 거잖아.”

“엄마가 그렇게 화만 내는 것 같진 않은 거 같은데.. 그렇게 느껴졌어?”

“아까도 정리 안 한다고 화냈잖아.”

“날만 하니까 냈지.”

아이의 말이 귀여우면서도 매번 화만 내는 엄마로 기억하는 거 같아 내심 서운했다.

둘째 아이는 가끔 귓속말로 이렇게도 묻는다.

“엄마 솔직히 말해봐. 아빠가 좋아? 내가 좋아?”

“엄마는 아빠가 좋지.”

“흥! 그럼 형아가 좋아? 내가 좋아?”

“그건 둘 다지!”

“쪼금. 아니 아주 쪼금이라도 누가 좋냐고?”

“둘 다 쪼금의 차이도 없이 똑같이 좋지.”

“에이~”

“준영아, 넌 태어났을 때부터 사랑스러웠어. 엄마가 너무 배가 아프게 널 낳았는데 의사 선생님이 널 딱 보여주는 순간 엄마가 이렇게 말했잖아. 너무 이쁘다고.”

아이는 흡족한 듯 질문을 멈춘다.   


큰 아이는 외출 후 집에 들어오면 “엄마~!”하고 부른다. 가끔 신랑이 집에 있을 때 엄마만 부른다며 나무라자 “엄빠~!”며 들어온다.

바라보기만 해도 듬직한 큰아이는 올해 12살이다. 뽀얀 피부와 터질듯한 볼살, 웃을 때가 사랑스러운 초등학교 5학년. 샤워하고 옷도 입지 않은 채 울퉁불퉁 포즈 잡으며 “엄마, 나 좀 봐봐.”하면 미쉐린 타이어의 캐릭터가 연상된다.  아직도 안아달라며 큰 몸을 내게 기댄다. 아이를 안아주면서 내가 위로받을 때가 있다. 언제 이렇게 컸을까? 2년 전만 해도 아이를 뒤에서 안아주면 내 가슴에 아이의 머리가 닿다. ‘엄마표 안마 의자’라며 목을 비비며 장난치곤 했는데 이제 앞으로 안으면 가슴과 가슴이 맞닿을 정도다. 큰아이는 안으면 포근하다. 따뜻한 느낌이다. 이 느낌처럼 우리 아이가 마음이 따스한 아이로 자라면 좋겠다.




 

글을 읽으니 아침부터 미소가 지어졌다. 지금 우리 집 두 아들은 중1, 초5다. 눈만 마주치면 "배고파. 뭐 해줘."말하는데 그게 귀찮으면서도 기분이 크게 나쁘지 않다.

며칠 전 아침, 서방이 큰 아이에게 귓속말을 했다. 큰 아이는 "아이 그건 쫌...." 하며 멋쩍어했다. 다시 서방은 아이의 귀에 속삭였다. 그러자 (아이는 에라 모르겠다의 심정으로) 내 오른쪽 뺨에 입술이 갖다 대었다.

"엥 뭐야?"

아들은 "됐지?" 하고 서둘러 학교에 갔다. 부자간의 모종의 거래가 오후쯤 궁금해졌다. 서방은 비밀이라며 아들이 뽀뽀해 주니 어땠냐고 물었다.

"아직 아기 같았어."


마냥 아기 같던 미쉐린 타이어의 울퉁불퉁 아들은 볼살이 쏙 빠졌다. 앞머리눈을 가려 작은 눈이 더 안 보인다. 미용실에 머리 자르러 가길 그리도 귀찮아하더니 간 김에 난생처음 파마를 했다. 입학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담임선생님께 단톡방 사건이 있다고 연락이 왔다. 벌점 문자는 마치 엄마 점수인 거 같아 씁쓸했다.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어도 해맑게 "탕후루 먹고 싶다~" 말하는 아들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얌체공 같다.

이렇게 자라고 있는 큰 아이를 바라보면 많이 컸다 싶다가도 애잔해진다. 처음이라 모든 게 서툴렀다는 말로 대신할 수 있을까? 엄마로서 더 지혜롭지 못 미안다고 해야 할까.


나는 자전거 타고 학교로 향하는 아이의 뒷모습을 자주 바라본다. 그 뒷모습에 늘 마음을 보낸다. 오늘도 좋은 하루가 되길, 사랑한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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